매거진 정문일침

모순

by 파르헤시아

인간은 ‘자신의 인생’ 하나만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곧 ‘자신의 인생을 산다’와 ‘글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산다’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삶 이외에 ‘글 속에서의 삶’을 하나 더 살고 있는 것이다. ‘글을 통해 사는 타인의 인생’은 곧 ‘문자적 경험’을 의미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문자적 경험 (즉 간접경험) 이 실제적 경험 (즉 직접경험) 보다 인간의 인식에 더욱 뚜렷한 인상을 주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적 경험과 문자적 경험의 차이는 크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끔 만성이 되어버렸다. 아니 문자적 경험을 실제적 경험보다 오히려 더 신뢰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기에 글의 모순이 있다. 아니 글 자체에 모순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여지껏 글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인식에 모순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철저하게 믿어왔었다. 거의 모든 작문 교과서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큰 비중을 갖고서 주입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말에 부합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마광수 에세이, '글이 곧 그 사람은 아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의 진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