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푸는 자는 그 악취를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참는 것이며,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는 자는 그 교만을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익을 바라기 때문에 감수하는 것이다. 지금 신분이 높은 자에게 아첨하는 것을 보고 치욕스러워하지 않는 것을 비루하게 여긴다면, 이는 똥을 푸는 자를 보고 악취를 모르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셔 받드느라 분주한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며, 멀리하고 배척하여 관계를 끊는 것은 미워해서가 아니다. 옳다고 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흠모해서가 아니며, 그르다고 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원망해서가 아니다. 이는 모두 이익이 되는지를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설령(雪嶺)이나 묵지(墨池)는 진경(眞景)이 아니며, 어깨를 곧추세우고 아첨하거나 팔을 내저으며 돌아보지도 않고 가는 것은 실정(實情)이 아니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후한 모습과 깊은 정은 비록 진심에서 나온 것 같아도 그 속마음은 알 수 없다.(......) 저 얼굴빛은 근엄하지만 마음이 나약한 자는 늘 이익에 유혹되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의심하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믿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으니,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덕의 도적)에 비유한 성인의 말씀이 어찌 나를 속인 것이겠는가.
-윤기(尹愭 1741~1826), '利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