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국에 공의를 중시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이 살았다. 왕이 공의로우니, 왕을 도와 국정을 다스리는 대신들과 관리들도 모두 다 한결같이 공정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느 날 왕은,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이 더 이상 복잡다난한 국정의 책임을 모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병들고 허약하게 늙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후계자를 세워서 나라의 앞날을 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에겐 건강하고 똑똑한 자식들이 있었지만, 그는 왕국 전체에 왕의 후계자를 찾는 공고를 내었다. 이에 왕의 자식들과 왕족들, 대신들, 관리들, 그리고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스스로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자신할 정도로, 남다른 야망을 가진 똑똑한 백성들은 너도 나도 모두 왕의 뜰앞에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런데 왕은 이들을 개별적으로 면접하지 않았다. 왕은 모인 사람들 전체에게 말했다. "내 후계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다른 것은 보지 않는다. 지금 씨앗을 공평하게 한 개씩 나눠줄 것이다. 그 씨앗을 화분에 심고 정성껏 잘 키워 1년 후 다시 이 자리에 모여라. 나는, 각자가 나눠받은 그 씨앗이 이뤄낸 결과에서 오직 한 사람을 가려내어 내 후계자로 삼을 것이다"
1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왕의 뜰에는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키운 온갖 아름답고 훌륭한 식물들과 그 향기로 가득찼다. 심지어 탐스런 열매까지 맺은 것들도 많았다. 그 향기와 자태는 가히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큼 훌륭했다. 왕은 직접 그 식물들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왕의 입에선 연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넘쳤다. 그런데 왕이 맨 마지막에 한 청년을 보니, 식물은 온데간데 없고 흙만 덩그라니 들어 있는 화분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그 사람의 화분만이 씨앗의 결과물이 전혀 없었다. 그의 표정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두웠고, 실망과 두려움의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비웃음과 멸시가 가득한 눈초리로, 혹은 염려의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앞에 발걸음을 멈춘 왕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흙만 담긴 화분을 들고 감히 이 자리에 참여할 생각을 했느냐?"
청년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농부입니다. 농사짓고 가축과 작물을 키우고 돌보는 일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왕께서 주신 소중한 씨앗을 화분에 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껏 살피고 돌봤습니다. 그러나 몇 달 며칠이 지나도록 싹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히 여겨서 흙을 갈고 다시 심어보려고 씨앗을 살피니, 씨앗은 이미 썩어 버렸습니다. 저는 비록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절망하여 제 운명을 한탄하고, 제 무력함에 절망하였습니다. 아무런 결과물없이 화분에 담긴 흙만 바라보며 지낸 1년이란 시간은, 제가 후회와 절망과 좌절과 고통을 감당하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후계자 씨앗 시험이 비록 제 스스로 선택한 일일지라도 지엄하신 왕과 약속이라 생각하여 끝내 버텼습니다. 그래서 약속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참여하였습니다. 왕께서 주신 씨앗이 제게 남긴 결과물은 실패와 절망과 무기력과 부끄러움입니다. 씨앗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작은 거름으로 미미하게 남아 있을 뿐 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화분에 담긴 흙입니다. 그러니 왕이시어, 부디 용서해 주십시요. "
왕은 아무런 반응도 대꾸도 하지 않고 청년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갔다. 마침내 왕은 모인 사람들에게 선포하였다. "이번 시험을 끝으로 드디어 내 후계자는 결정되었다." 오직 한 사람만 빼고, 모든 사람들은 설렘과 희망에 가득찬 눈으로 왕의 입을 일제히 주시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왕은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분들에게 나눠 준 씨앗을 훌륭하게 키우느라 참 수고가 많았다. 여러분들이 맺은 결실과 그것을 위해 애쓴 땀과 수고와 정성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과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내 뒤를 이을 후계자는 씨앗 키우기에 실패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에게 나눠 준 씨앗은 살아있는 씨앗이 아니라, 이미 삶아서 죽어버린 씨앗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내 시험을 통과했다. 유일하게 흙만 담은 화분을 들고 온 청년이다. 그가 바로 내 후계자가 될 것이다."
공의롭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은, 현명하고 지혜롭고 똑똑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정직한 한 사람을 가려내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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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다. 출처미상·작자 미상의 짧은 글의 내용을 그대로 표절하여 나름의 글로 각색하고 윤색했다. 성서의 시편 기자는 "주는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신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지혜를 가르치소서."(시편 51: 6)라고 말한다. 이처럼 정직은 마음 바탕에서 '거짓이 없이 곧고 바른 진실함'으로부터 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논어에서 정직에 대해 가르친 글들을 읽다가, 문득 반성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정직'에 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쓰려고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비롯하여 꽤 많은 자료들을 뒤졌다. 포집한 자료들을 요약하고 정리하여 거기에 내 숟가락을 슬쩍 얹어서 글을 쓰던 중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위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이야기를 정리하다가 결국 내 어쭙잖은 생각쓰기를 접기로 하였다. 대신에 주워들은 이야기의 주요 내용을 표절하고 각색한 것으로 퉁치기로 했다.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과 익원이우(匿怨而友) 이 두 가지를 부끄러워한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교언영색은 '자기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말을 그럴듯하게 교묘하게 꾸미고, 표정과 태도를 공손하게 좋게 가장하는 것'이고, 익원이우는 '마음속에 원망하는 감정을 숨기고서 벗을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감추고 '교언영색하는 사람 치고 어진 이가 드물다'라고 공자는 간파했다. "절실(切實)이란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眞率)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수필가 윤오영 선생의 말이다.
이로써 내가 무엇보다 자신있게 또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결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잘 '내가 정직한 사람', 심지어 '좋은 사람' 이라고 스스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당신은 어떠신가?" (2019.2.6 쓰고 2.8일 다시 정리하고 고쳐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