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詩 '껍데기는 가라' 부분)-
사실과 의견은 다르다.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말한다. 의견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을 말한다. 의견은 생각, 감정, 느낌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또 누구나 아무런 제약없이 다 가질 수 있고, 또 언제든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직 하나의 실제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실제함을 검증할 수 없는 의견은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의견이 사실이 되려면, 그것이 '유일하게 객관적이고 타당한 사실임을 명백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합리성을 가질지라도 입증 혹은 검증되지 못한 사실은 그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사실과 의견'의 기준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최근 일부 학자, 문인, 기레기 그리고 자칭 지식인들 중에 지난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몇몇 특정 인물 혹은 사회적 계급집단을 특정하고, 누군가의 해석 누군가의 의견들을 두루 짜깁기하여 자신의 의견 혹은 해석에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한다. 교묘한 논리적 말장난으로 그 의견이 마치 사실인냥 대중에게 곡학아세를 시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중에서 가장 저질이고 악성은, 우리 민족 5천여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탱해 온 고유한 민족 정신을 비하하거나 부정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현대의 정치·이념·사회·문화의 관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의 논리를 자기가 가진 가치관의 틀에 끼워 맞춰, 서슴없이 비하하고 비난하고 부정하며 에둘러 조롱한다. 참고로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의 인식과 관점으로 동양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규정하는 모든 담론과 사고방식'을 뜻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에서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않고 희생하고 헌신한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순국선열, 애국 충열지사들의 존재와 그 의미와 그 정신의 뿌리마저 송두리째 부정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결국 순국선열들의 모든 희생과 헌신은 시대의 상황에 맞지 않는 헛된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뿌리 없이 제 홀로 가지를 뻗치고 잎을 내며 열매를 맺는 나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도 그리고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의 논리는, 교묘하게도 뉴라이트 계열의 친일 식민사학자들과 일본 제국주의 역사학자들의 논리와 아주 닮아 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 중의 한 단면에 선택적으로 집중하여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실 전체를 재해석하고, 그렇게 재해석한 의견을 바탕으로 역사 그자체를 부정하거나 조작 또는 왜곡하는 것이다. 오직 왜곡과 기만을 통해서 의견 혹은 주장의 정당성과 대의명분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이들의 전형적인 논리다.
비판, 비평 그리고 비난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남을 씹고 깎아내림으로써 자기를 높이는 사람치고 인성이 제대로 된 인간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런 자들에게서는 일말의 부끄러움 혹은 자기반성 혹은 대안적 성찰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다만 뜬 구름 잡기 식의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뭔가를 마치 앵무새처럼 주절거리며 주장할 뿐이다.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는 그의 소설에서,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 더 사악한 효과를 미치는 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이가 적게는 30, 많게는 40이 넘어 버리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는 현재의 창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고 조언한다. 혹자는 '늑대는 양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사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고통의 깊이를 알 수 없다. 또 그 고통의 끝에 열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의 깊이 또한 알 수 없다.
한때 열렬히 전두환을 찬양하고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를 그토록 숭배하던 한 기레기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소설가로 변신한다. 깔끔하고 수려한 소설의 문채(文彩)로 쓴 역사소설에 자신의 남다른 가치관을 녹여 내었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을 당당하게 멋지게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그런 그를, 나는 지극히 냉소적인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지나 온 과거 삶의 궤적, 그가 남긴 글의 흔적을 선명하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평소의 글과 저술에서 드러낸 신념 혹은 이미지가 삶의 실상과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 상황에 따라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마치 줄타기 곡예를 하듯이, 극과 극의 진영을 수시로 또 은밀하게 넘나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인터넷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종의 거대한 문서 저장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디지털화되어 공표된 글 흔적은 어디에건 남아있기 마련이다. 유명 소설가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한 그 자가, 또 다른 성공적인 변신을 꿈꾸는, 작가보다 더 작가 같은 요즘 기레기들의 롤 모델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개인의 의견과 개인의 삶의 방식 그리고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에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자신의 얼룩에 덧칠하고, 타인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의견 혹은 행위를 합리화 혹은 정당화 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사의 진보에 바치는 예술가의 봉사란, 그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확신하고 어디에 동조하느냐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사회적 현실의 문제와 모순을 얼마나 힘차게 제시하느냐에 있다.'-아르놀트 하우저(『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손홍규산문집, '다정한 편견' 재인용)
"그 당시의 상황과 결과를 기록한 역사 책에 따라 그 성패를 짐작하면 사실과 이치가 그대로 맞는 곳이 많고, 오늘날 목격한 것을 따라 생각하면 10분의 8~9할 쯤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나는 이 때문에 천하의 일은 시대를 잘 만나는 것이 최상이고, 행ㆍ불행(幸不幸)은 다음이며, 시비(是非)는 최하로 여긴다." -이익(성호사설)
나는 꽤 오랜 세월 옛 선조들, 특히 조선시대의 양반계급과 선비들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인식과 선입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선비에 대해서 만큼은 그 부정적인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우리 말 선비와 유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선비는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비는 순 우리 말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선비는 '士(선비 사)'와 '儒(선비 유)' 둘 모두를 우리 말 '선비'로 번역하여 표기하고 있다. 어원적으로 선비는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을 뜻하는 고대 우리 말에서 왔다고 한다. 고구려, 고려시대의 선비는 공통적으로 '문무를 겸비하고 인덕을 고루 갖춘 지식인'을 가리킨다. 신라시대의 '화랑' 또한 전통적인 의미의 '선비'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말 '선비'와 유교적인 관점의 '선비(士, 儒 또는 군자)'는 그 의미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옛 문헌들을 통하여 나름 이해한 선비정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최초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더욱 두텁게 하고 고루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나름 이해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선비란, '홍익인간의 이념을 삶에서 몸소 실천하는 참 지식인' 이다. 선비는 국가와 민족이 위급할 때 어김없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사람이다. 5천년 역사에서 우리 민족은 수없이 많은 외침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선비를 중심으로 민초들은 분연히 일어나 외침을 물리치고 세계사에서 유일하다 할 정도로 단일민족의 정통성을 지금까지 지켜내었다. 그리고 5천 년 역사 동안 단 한 차례도 우리 민족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타민족을 약탈한 사실이 없다. 이는 우리 민족성이 홍익인간의 유구한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비는 조선 성리학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퇴계 이황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을 놓고 보았을 때, 남명 조식 선생 계열이 우리의 전통적인 선비에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의병장들이 대부분 남명 조식 선생의 문하에서 나와서 백의종군하며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의 요구에 따라 미화되고 과포장된 선비 혹은 사이비와 향원은 단지 반면교사로 삼을 뿐,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내 생각을 바꾼 것은, 훌륭한 도덕 군자로 혹은 뛰어난 학문으로 혹은 시대의 스승으로 평가되고, 세간에 널리 높은 존경을 받는 이들이 아니다. 사회 및 정치 제도로서의 양반과 전인적인 인격체로서의 지식인인 선비는 마땅히 구별해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할지라도, 타고난 태생이 그런지라 세상의 평가에 세상의 명성에 세상의 권위에 무턱대고 맹신할 정도로 그리 맹목적이진 않다. 내가 비록 둔한 사람이라할지라도 진짜 선비와 그렇지 않고 과대평가된 선비, 허울만 좋고 실제와 속이 다른 사이비 선비, 학문의 재능과 남다른 도덕의 무늬로만 존경받고 추앙받는 세속적 선비 등을 구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분별력 정도는 내게 있다. 그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무시할 것은 무시할 수 있는, 그래서 무턱대고 치우지거나 섣불리 속단하지 않는 않을 만큼 최소한의 이성(理性) 정도는 다행히 내게 남아 있다. 그래서 내 양심을 자극하고 내게 어떤 형태로든 존경심을 일으키는 인물을 발견하게 되면, 반드시 그들이 남긴 학문과 글과 삶의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습관적으로 낱낱이 살피고 헤아린다.
선비는 순 우리 말이다. 어원적으로 선비는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을 뜻하는 우리 말에서 왔다고 한다. 고구려시대에는, '문무를 겸비한 지식인'을 가리켜 선비라고 하였다. 옛 문헌들을 통하여 나름 이해하기로 선비란, '널리 인간을 두루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참 지식인이다. 5천 년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인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타민족을 약탈한 사실이 단 한차례로도 없다. 이는 우리 민족성이 홍익인간의 유구한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옛 선비들이 남긴 수천 여편의 글을 두고 두고 되씹으며 당신들 각자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보았다. 그 일관된 삶의 기록들을 일일이 필사하고 옮기면서 한결같이 참선비들의 사람다운 삶을 읽었고, 당신들의 숱한 생각과 고민들을 마치 내 일처럼 내 심사처럼 바라 보게 되었다. 때론 폐부를 찌르는 듯한 정문일침에 절로 옷깃을 여미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크게 반성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선비들은 나라가 위태울 때, 하나같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헌신하였다.
내가 '좋은 사람', '정직한 사람', '의로운 사람' 이라는 심각한 자기기만과 착각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것도 이때문이다. 지우고, 비우고, 돌이켜 성찰하고 반성하며, 배움에, 공부에, 끝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한 것도 옛 선조들의 글 덕분이다. 굳이 난해한 서양서적을 뒤지지 않더라도, 역사·철학·심리학·문학·학문·도덕윤리·처세·인간관계 등 사람을 사람다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모든 인문학이, 앞서간 옛 선현들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 삶의 이야기다. 개인의 역사든 세상의 역사든 간에 모든 이야기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는, 칼로 무 자르듯이, 마치 기승전결의 뚜렷한 구성을 갖춘 잘 짜인 소설을 전개해 나가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전혀 예기치 못한 온갖 변수들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실들이 하나의 이야기속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야기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또 다른 이야기들이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서로 얽혀있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역사가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사실을 선택하고, 거기에 역사가의 주관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 것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역사를 기록할 때 역사가의 주관을 철저히 배제한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할 것을 강조하였다.
옛 글에 이르기를, '오늘을 살피기 위해선 마땅히 지난 날의 자취에 비춰보아야 한다. 지난 날이 없으면 오늘이 존재할 수 없다(觀今宜鑒古 無古不成今)'라고 하였다. 이는 역사의식(혹은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역사인식은 책임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디 한번 물어보자. 그토록 확신하며 조선 망국과 일제 강점의 책임을 조선 왕조의 양반 계급제도와 선비정신의 허위와 무능 탓으로만 호도하고 단죄하는, 스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그대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고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일·숭미 기득권 세력과 그들의 꼭두각시 마름들이 득세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법치와 정의가 온통 실종되고 또 다시 망국의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스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여기는 그대들은 지금까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나라가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대들은 과연 나라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가?
성경의 말씀 중에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라고 언제 되새겨도 늘 뼈저린 말이 나온다. 함석헌 선생은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다'라고 정곡을 찌르는 말을 남겼다.
다시 물어보자. 5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을, 양반계급의 위선과 가식의 정수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혐오하고 조롱하는, 스스로 정직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그대들의 형편과 처지는 지금 어떠하신가? 또 그대들의 사회적 권위와 사회적 가면과 정의(正義) 뒤에서 드러나지 않은 그대들의 민낯은 어떠하신가? 잘된 것은 오로지 지금의 그대들 탓이고 잘못된 것은 오롯이 과거의 조상 탓인가? 선조들의 정신을 팔고 씹어서 그대들 처지가 그대들 이름이 그대들 밥그릇 형편이 어찌 좀 나아지셨는가?
역사인식의 차원에서, '이게 과연 나라인가?'라는 탄식과 함께 욕이 절로 나오는 오늘의 정치· 사회의 문제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서 진정 예외가 되고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역사인식(혹은 역사의식)이 실종된 사람에게서 사회적 책임을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죽은 고목에서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옛 글에 "선비가 염치를 모르면 옷 입고 갓 쓴 개· 돼지와 다름없다(士不識廉恥 衣冠狗彘)"라는 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수 천년 전 고대 그리스의 신전에 새겨진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의 귓전을 두드리는 글귀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E.H 카의 말이다. 오늘 대한민국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그 누가 아무리 부정하고 왜곡할지라도, 우리 선조들이 남긴 뿌리 덕분이다. "껍데기는 제발 가라". 반성의 의미에서 무엇보다도 내게 하고픈 말이다. (2019.4.2 쓰고 4.3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