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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Aug 12. 2019

더닝 크루거 효과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갖게 한다"(Ignorance more frequently begets confidence than does knowledge.) -찰스 다윈('The Descent of Man', 1871)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 Kruger effect)는 인지편향의 하나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인지 편향 (Cognitive bias)이란, '사람이나 상황· 사건 등에 대해서 비논리적인 추측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패턴'을 말한다.


이와 관련된 중국의 고사(古事)가 하나가 있다. 고사성어 '일엽장목'(一葉障目)의 이야기다.  그 뜻은 '나뭇잎 하나로 눈을 가린다' 라는 뜻으로, '단편적인 것에 집착하여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놓친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한단순(邯鄲淳, 132년 ~ ?)의 『소림(笑林)』에 나온다.  


옛날 초나라 땅에 한 가난한 서생(書生)이 있었다. 그는 『회남자(淮南子)』를 읽고 사마귀가 매미를 잡을 때 나뭇잎에 몸을 숨겨 자신을 눈에 띄지 않도록 위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나무 밑에서 그러한 나뭇잎을 샅샅이 찾았다. 


마침내 사마귀가 한 나뭇잎 뒤에 숨어서 매미를 잡을 기회를 엿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나뭇잎을 땄다. 그러나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바닥에 먼저 떨어져 있던 똑같은 나뭇잎들과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없이 그 근처에 수북이 쌓여 있던 나뭇잎을 모두 쓸어 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나뭇잎을 하나하나 집어 들어 자기 눈을 가리고는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보이는가?" 아내는 처음에는 물을 때마다 "네,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온종일 똑같은 질문을 하자 나중에는 귀찮아져서 되는 대로 "안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아내의 말에 마침내 자신감이 생긴 서생은 장터거리로 나가서 나무 잎사귀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런 다음 장터의 물건을 몰래 훔치다가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관리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나뭇잎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당신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오." 그를 심문하던 관리는 황당해 하였다.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관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죄를 묻지 않고 그냥 풀어주었다. 


수천 년 전 '일엽장목'과 비슷한 사건이 1995년 미국에서도 발생했다.  피츠버그에서 맥아더 휠러(McArthur Wheeler)라는 중년 남성이 은행 두 곳을 털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복면을 쓰지 않았고, CCTV에 그의 행적은 물론 얼굴까지 생생하게 찍혔다. 심지어 CCTV 가까이 다가가 마치 조롱하는듯한 이상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곧바로 CCTV를 근거로 그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를 체포하였다.  경찰이 그를 심문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CCTV에 얼굴이 찍히면 바로 잡힌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했나?" 


그가 대답했다. "레몬주스로 종이에 글을 쓰면, 글이 보이지 않는 건 아시죠? 그래서 제 얼굴에 레몬주스를 발랐기 때문에 얼굴에 뜨거운 것만 가까이 대지 않으면 안 보일 줄 알았지요." 


그의 황당한 대답에 경찰은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여, 정신과 의사를 불러 다각도로 검사하였으나, 사고능력은 물론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황당한 사건은 '더닝 크루거 효과'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정상인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현상을 가리켜, '자신감의 환상'(illusion of confidence)이라고 한다.  자신감의 환상은 간단히 말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토대로 자신을 터무니없이 과신하는 것이다. 


'자신감의 환상'과 관련한 인간의 심리에 주목하던 당시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 더닝(Dunning) 교수는 맥아더 휠러(McArthur Wheeler)의 황당한 사건을 전해 들었다.  동기부여를 받은 코닝은 곧바로 '자신감의 환상'에 대한 심리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 Kruger effect, 1999년)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 말하는, 능력 부족은 IQ나 학력 또는 전문지식과는 무관하다. 쉽게 말해, 관련 지식을 포함한 기술 수준과 기술의 현실적 수행 능력 차원에서의 능력부족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IQ나 학력이나 전문지식이 높다고 해서 기술 적용 및 기술 수행 능력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인 상식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에서 경험으로 체득하는 지식은 전혀 다르다. 기술적 수행 차원에서 고학력자들이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장인 수준에 이르는 무학력자 또는 저학력자들도 세상엔 수두룩하게 많다.


이런 점에서 더닝 크루거 효과는, 학력이나 지력, 사회적 지위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숙련자가 그렇지 못한 숙련자보다 자신의 실력이 더 낫다고 상대를 무시하고 깔보는 상황하고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는 심리 현상이 아닌 인성(人性)의 문제와 직접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더닝 크루거 효과의 개념을 무턱대고 일반화시켜 적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양태로든 기술 수준과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현재 수준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자기를 과대평가하거나, 인성(人性)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더닝 크루거 효과에 해당한다. 정리하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로 다음 세 가지의 경향을 보인다.


①자신의 기술 수준과 수행능력을 과대평가한다.

② 다른 사람들이 보유한 실제 기술과 전문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③자신의 실수와 기술 부족을 인식하지 못한다.


굳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에 적용하자면, 이른바 Arm-chair general(안락의자 장군, 방구석 조조), Monday morning quarterbac(월요일 아침 쿼터백, 뒷북 전문가), 인터넷의 키보드 워리어(인터넷 막말 전문가, 방구석 여포), 등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관련 연구(Belmi & Neale, 2020)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 계층에 속한 사람이 낮은 사회 계층의 사람보다 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Dunning과 Kruger는, 어떤 분야의 실제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자신감이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제안하였다. 다시 말해,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가 없는 한, 일반적인 사람이 관심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경험하게 되면, 현재 자신의 지식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자기인식을 거쳐서 현실적으로 정확한 자기 평가에 도달한다. 


한편으로 일반사람들보다 더 유능하고 잘 숙련된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자기평가가 되지 않았을 경우, 자칫하면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에 빠지기 쉽다. '가면 증후군'이란, 사회적으로 뛰어난 업적이나 높은 성취도를 이룬 유능한 사람들 중에서 때때로 자신의 실제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뛰어난 실력이나 높은 성취도를 단순히 운이 좋았던 탓으로 돌리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주변의 인재들과 경쟁하는 가운데 관련 분야의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관련 지식의 부족이나 한계를 더 자주 더 많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 잘 안다. 그래서 지나친 자신감이나 지나친 신중함, 또는 상대적인 열등감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스스로 부족한 것을 채운다. 그 결과 자신감이 점차 향상된다. 이는 곧 정확한 자기평가의 결과다.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자기평가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둘째,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즉 듣기 싫고 인정하기 싫을지라도 자신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기존 지식을 때때로 점검한다. 

즉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아울러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비논리적인 추론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심리적 성향을 통틀어서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라고 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여러 인지 편향 중의 하나에 속한다. 


인지 편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며,  일상적인 것에서 삶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편향 현상은 다른 사람에게서 쉽게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더닝 크루거 효과와 같은 인지 편향의 개념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곧 인지 편향의 원인 발견과 극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라는 옛 속담의 과학적 근거로 삼아도 무방하다. 만약 이솝우화를 읽어 봤다면, ' 왕을 원하는 개구리'편에 나오는 용감한 개구리가 이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한 블랙 유머가 있다.


학사 : 난 무엇이든 다 안다.

석사 :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

박사 : 난 아무것도 모른다.

교수 : 난 진짜 X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 다들 믿는다.(나무위키)


위의 유머로 나를 돌아 보자면, 둘째와 셋째의 중간에 위치한다. 즉 나는 모르는 게 많다. '모르는 게 많다' 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금도 애써 배운다.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결국 '난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비록 아무것도 모르지만, 때론 내가 진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는 척하기도 한다. 아는 척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더닝 크루거 효과는 그야말로 내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다만 내가 이성적 또는 지적인 면에서 많이 어리석고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이 나이에도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고자, 각자도생의 심정으로 부지런히 배우고 노력할 뿐이다.


마침 위의 유머와 대비될 만한 좋은 글귀를 인터넷에서 하나 찾을 수 있다. 다만 글의 출처 및 작자의 존재 유무를 확인할 길이 나로선 없다. 


"현대인은 세 가지의 정신적 죄악이 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려 하지 않는 것, 둘째는 알면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 셋째는 할 수 있으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 -케리 여사(인도의 교육자)


인지 편향, 인지왜곡, 인지부조화는 사람인 이상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등에서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윌리엄 이안 밀러(W.I Miller)는 "지적 무능력의 핵심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이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지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것을 상당 부분 치료하게 될 것이다."(밀러, 'Humiliation(굴욕)', 1993)라고 통찰한 바 있다.


이미 수 천년 전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르게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제자인 자로에게 가르쳤다. 


이처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혹은 인정하는 것은 모든 인지적 편향과 왜곡과 부조화에서 벗어나는 가장 기본 되는 인식이다. 아울러 배우는 사람의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또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 될 사람이 있으니, 그중 좋은 점은 골라서 따르고, 좋지 않은 것은 거울삼아 고치도록 해야 한다", "부지런히 배우기를 좋아하고 심지어 아랫사람일지라도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라고 가르쳤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배움은 어디에고 있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모르면서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며, '모르는 것을 안다고 진실로 확신하는 것' 이야말로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순자는 말하기를, “천하에는 나라마다 뛰어난 선비가 있고 시대마다 어진 사람이 있다. 길을 잃는 사람은 길을 묻지 않고,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얕은 곳을 묻지 않으며, 망하는 사람은 혼자 하기를 좋아한다.”라고 지적하였다. 


배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념이,  혹은 자신의 믿음이, 혹은 자신의 생각이, 혹은 자신의 의견이 행여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바른 배움은 이러한 각성을 가능케 한다. 오류는 마땅히 바르게 고쳐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내게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심지어 오류가 있을 리가 없다고 확신할진대, 어찌 그 오류를 서둘러 고치고 바로잡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건대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세상엔 진실되고 바르고 좋은 글과 말과 책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스스로 바른 것을 찾아서 읽는 이가 귀할 뿐이다. 


최근의 뉴스를 보면 반면교사(反面敎師) 또한 수두룩하다. 다만 자신과는 상관없이 자기 내면의 도덕적 갈등을 해소하는 투사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질책과 비난과 정죄와 혐오와 분노의 분출구로 삼는 사람이 무수히 많을 뿐이다. 


요즘 자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문이 절로 막히는 경우를 접한다.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진실로 믿으면서도 대체 왜 믿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사람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자신이 믿지 않으면서 무언가 믿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그렇고, 허구를 사실로 믿는 사람이 그렇고, 실체를 가늠키 어려운 모호한 것마저 사실로 믿고 확신하는 사람도 그렇다. 뭘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도통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그렇다. 이런 유의 사람이 다 아는 척하는 것을 보면 더욱더 할 말이 없어진다. 


이런 부류(類)들은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말이 아예 안 통한다. 행여 그릇된 것을 가지고 옳은 것이라고 부득부득 억지를 부릴 때, 역사의 경험과 사실의 논거를 조목조목 갖춰 바른말로 바로잡아주면, X도 모르면서 잘난 척하는 것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상종 못 할 꼰대의 고리타분한 잔소리라 뒤통수에다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행여 말에 실수라도 하면 배운 값, 나잇값도 못 한다고 비아냥하며 조롱한다. 표정과 눈빛과 태도로 자기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래도 욕 먹이고 저래도 욕 먹인다. 


그래서 상대가 말이 안 통하는 부류로 일단 파악이 되면, 가능하면 말을 섞는 것을 피한다. 혹 어쩌다 엮이게 되면 능청스레 '오호, 그러세요' 하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속으론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버린다.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도리어 해가 될 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말투를 헤아려 보아도 마음 씀씀이나 태도를 살펴보아도 가방끈의 길이나 먹물의 양으로 따져보아도 나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는 사람이 달관의 고매한 훈장질하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앞뒤 좌우도 분간치 못할 것 같은 자식뻘의 사람이 가만히 있는 나를 가르치려 덤비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갖은 오만을 부리며 설쳐대는 이가 또 그렇고, 이런 부류가 권력을 잡고 세력을 이루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이런 부류가 대단한 권위를 앞세워 억지로 자기가 옳다고 밀어붙일 때면, 뭐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은, 실력 있고 잘나고 재능 많은 뭔가 알만한 사람들 중에, 인성에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될 무서운 사람들이다.


허홍구 시인의 詩, '무섭다'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실력 있고 잘난 사람들 중에/ 사람이 아닌 사람은 더 무섭다/ 무섭다/ 언제나 웃고 있는/ 너그러워 보이는 탈을 벗기면/ 흉악한 얼굴들이 보인다/ 언뜻 언뜻 나의 얼굴도 보인다/ 몸서리치게 무섭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문학과 예술과 음악과 철학과 사랑과 역사와 자유와 정의와 애국과 진실을 진지한 얼굴로 논하며, 사람 좋아 보이는 이런 사람의 탈을 벗기면, 섬뜩하게 흉악한 얼굴들이 간혹 보인다. 이런 부류들에 한 번이라도 아프게 데어본 사람은 그 고통의 깊이를 안다. 


그래도 행여 진짜인가 싶어 아킬레스를 슬쩍 한 번 툭 건드려 보면 지킬과 하이드가 따로 없다. 자기밖에 모르는 '나뿐 놈', 연암 박지원 선생의 풍자 소설 '호질'에 나오는 북곽 선생과 동리자같은 '향원' 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들 속에 언뜻 내 얼굴이 겹치는 듯하다. 왠지 익숙한 느낌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감추고 싶은 내 그림자일 것이다. 아주아주 가끔  X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그 속에 숨어있는 내 안의 그림자 말이다. 이를 인지할 때마다 또한 말문이 그만 막힌다. 그 그림자를 내 안의 것이라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몸서리칠 정도로 양심이 아려오기 때문이다. (2019.8.12 쓰고 2021.3.30 다시 추가하고 고쳐쓰다) 


#더닝크루거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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