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격물치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르헤시아 Apr 14. 2021

공정한 세상 가설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그리고 불행한 것은 만약 인간이 천사의 흉내를 내려고 하면 짐승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유형에는 두 부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죄인이다. -파스칼('팡세)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은, 어떤 사람에게 나쁜 일이나 불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상은 공정하고 공평한 곳이므로 관련 당사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 그릇된 신념'을 말한다.


쉽게 말해, 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가 되겠다. 즉 현재 누군가 나쁘고 불행한 상황을 겪는 것을 관찰자로서 지켜볼 때, 그 사람이 그럴만하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근거로 문제의 본질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 핵심 키워드는 '자업자득', '인과응보', '권선징악' 등이 되겠다. 이러한 프레임 아래서는 피해 당사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때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거나 선악이 뒤바뀌는 기현상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관찰의 결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고질적인 인지적 편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 개념은, 1966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Melvin Lerner)가 최초로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빈 러너는 심리학계에서 '정의( justice) 심리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공정한 세상의 오류(just-world Fallacy), 공정한 세상 현상(just-world Phenomenon), 업보 편향(Karma Bias), 모두 같은 말이다. 멜빈 러너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 하며, 동시에 우리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강할수록 현실의 상황에서 부당한 피해자나 희생자를 대면하게 될 때, 세상의 공정에 대한 자신의 믿음은 곧바로 손상되고 불편해진다. 이때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고 믿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문제의 본질보다는 그 피해 당사자가 뭔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판단함으로써, 기존의 믿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공정한 세상 가설에 해당하는 사람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은, 세상은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믿는 신념, 기대, 희망, 확신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신념, 기대, 희망, 확신과는 다르게, 실제 세상은 반드시 그렇지 않으며, 그러한 믿음과 확신을 뒷받침하는 그 어떠한 사실적 근거도 없다는 데에 있다. 별이 그토록 아름답게 빛나 보이는 것은 어둔 밤하늘에 오롯이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의지와 노력만 가지고는 실현 불가능한 일들이, 또는 불가피하거나 불가항력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이 세상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죄 없는 사람이 부당하게 죄인으로 창조 되기도 하고, 증거가 명백한 사악한 거짓말쟁이, 사기꾼, 범죄자도 오히려 세상에서 천사와 의인의 모습으로 득세하며 큰소리를 치고, 때로는 종교지도자로, 정치지도자로 선출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공정한 세상의 가설은,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공정한 세상 가설이 발생하는 이유를 나름 정리하면,


첫째, 취약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가령 자신이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든지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폭행이나 성범죄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범죄의 여지를 제공한 피해자의 행동 탓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심리는 알려진 바 피해자의 취했던 행동을 거부하고 회피함으로써 자신이 향후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둘째,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불의와 부당함과 불공정함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을 줄이고 싶어 한다. 세상이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믿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불행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만일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오직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기주의자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거나, 또는 사실과 맥락에 근거하여 사람과 상황 전체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이 아예 없거나, 자기 성찰 능력조차 없는 사람이다.


이와 관련하여 1975년 하버드 대학교의 Zick Rubin과 UCLA의 Letitia Anne Peplau는 "어떤 사람 이 공정한 세상을 믿는가?(Who Believes in a Just World?)"라는 제목의 학술연구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그들은 정의로운 세상을 믿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이 더 종교적이고, 더 권위주의적이며, 더 보수적이며, 정치 지도자와 기존 사회 제도를 더 존경하는 경향이 있으며, 소외 계층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다음으로 유의미한 결과는, 공정한 세상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사회적 피해자의 곤경을 완화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할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은 근대 중국인들의 썩어빠진 정신상태를 풍자한 단편 소설로 유명하다. 소설의 주인공 아큐는 일자무식의 건달이다. 하지만 남을 해코지 할만한 위인은 전혀 못된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오직 정신승리뿐이다. 그러나 아큐는 우연한 기회에 흉악한 폭도로 몰려 재판 끝에 자신이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른 채, 사형 집행서에 서명을 그린 후에, 공개 처형당한다. 아큐의 공개처형 소식을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큐는 사형당할 만한 짓을 했으니 마땅히 사형당한 거야." 


이와 비슷한 인식은 구약 성서의 욥의 이야기에도 나온다. 구약성서에서 이 사람은 의인(義人)라고 이름을 지목한 인물은, 오직 노아와 욥 둘 뿐이다. 극심한 고통과 곤경을 겪고 있는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욥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는 법이다”(욥 4:7-8).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다”(욥 8:20).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욥 11:14-15) 


공정한 세상 가설은 인지적 편향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문제의 본질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그 원인을 돌리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사회의 불공정과 부조리가 계속 유지되게 하는데에 동조하거나 묵인 혹은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결과로 한 개인을 무참하게 파괴시킬 수도 있다. 


한편으로 공정한 세상 가설은 나름의 이점도 있다.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현실에서 지각된 위협을 덜 느끼게 해 주고, 안정감을 주며, 이 세상에 대한 관점을 낙관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세상이 공정하다는 강한 신념은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일시적으로 달래줄지언정, 세상이 더 나아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세상을 더 불공정하고 더 부조리한 상황으로 만드는데 조력할 뿐이다. 


오늘날 제기된 악의 문제에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자기인식, 자신의 전체를 가능한 한 최대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얼마나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가차 없이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전자를 '사실'로, 후자를 '착각'이라고 간주하기 않도록 조심해야할 것이다.  가능성으로서 두 가지가 다 진실이다.  -칼 융(C.G. Jung , 융 자서전 '회상 꿈 그리고 사상')


연구자들에 따르면, 인지편향을 극복하는 첫 단계는 이러한 인지편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세상이 반드시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부분이 아닌 문제의 전체와 본질을 눈여겨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지편향의 극복뿐만 아니라 좀 더 성숙하게 인간다워지고, 좀 더 공정한세상을 만드는 데에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1.4.14)


매거진의 이전글 더닝 크루거 효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