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얼굴

by 파르헤시아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얼굴 수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모두들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한 얼굴을 몇 년 동안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얼굴은 망가지고, 더럽혀지고, 주름지며, 여행 중에 끼었던 장갑처럼 늘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검소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그 나머지 다른 얼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잘 보관한다. 그들의 아이들이 그것을 달고 다녀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기르는 개가 그것을 달고 나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안 될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러고는 조금씩 조금씩 밑바닥이 드러나서 얼굴이라 할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른다. 결국 그들은 그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게 된다.

-릴케(Rainer M. Rilke, '말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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