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벗을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詩文)을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최상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것이라, 일생을 통틀어도 불과 몇 차례에 불과하다. 눈이 오거나 비 오는 호젓한 밤에 다정한 벗이 찾아오지 않으니, 누구와 얘기를 나눌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니, 듣는 것은 나의 귀다. 내 손으로 글씨를 쓰니, 구경하는 것은 나의 눈이다. 오호라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으니, 무슨 원망을 또 하랴? 벗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책을 벗 삼아 함께 노닐면 되고, 책이 없으면 구름과 안개를 벗 삼으면 된다. 그게 없다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의탁할 수도 있고, 갈매기가 없다면 마을 남쪽의 회화나무를 친구 삼아 바라보아도 되며, 더불어 원추리 잎새 사이의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 무릇 내가 사랑해도 상대가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이덕무,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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