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얼굴

by 파르헤시아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렇다, 이제 시작했다. 아직은 잘 안 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할 작정이다. 예컨대 얼굴 수가 몇인지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얼굴 수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모두들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한 얼굴을 몇 년 동안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얼굴은 망가지고, 더럽혀지고, 주름지며, 여행 중에 끼었던 장갑처럼 늘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검소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릴케 ('말테의 수기')


오래 닫아두었던 페북을 다시 시작한 지 거의 두어 달 가까이 된다. 정치·사회의 주요 이슈에 관련하여 기성의 주류 언론 및 사회 전반에 만연한 왜곡, 허위 정보들 덕분이다. 그 덕분에 주류 상업 언론 미디어에 가려져 있지만, 사회 각계 각층에 깨어있는 진짜 전문가들의 식견과 안목, 그리고 그런 이들에 의해 형성된 열려있는 집단지성의 참조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내게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페북 친구 추천란' 에 생면부지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알 수도 있는 친구' 들의 얼굴이 내 페북의 중심 머리맡을 장식하고 있다. 대부분 얼굴과 프로필이 연예인 못지않게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휘황찬란하기까지 하다. 졸한 나는, 생면부지의 낯선 얼굴들과 눈을 마주치며 쳐다보기가 괜히 민망스럽고 부담스럽다. 해서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삭제를 시도한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부활한다. 덕분에 익숙해져 친숙한 얼굴들도 몇 있다. 마치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그런데 그중에도 겉모습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제대로 알고 싶을 경우가 간혹 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용케도 참고할만한 옛 글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 행하는 바를 잘 보고(視),

아울러 그렇게 행하는 까닭이나 의도를 잘 살피며(觀),

무엇을 편안히(安) 여기는 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察),

사람들이 어찌 그 자신을 숨기겠는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시(視), 관(觀), 찰(察)은 한자 사전에 모두 '보다, 살피다'라는 공통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자의 주석을 참고하면, 시(視)는 눈으로 보고 살피는 것, 관(觀)은 생각하며 구체적으로 보고 살피는 것, 찰(察)은 시(視)와 관(觀) 모두를 동원하여 더욱 자세하게 보고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안(安)은 즐거워하는 것이다.


논어 이인편에는 이런 글귀도 보인다. "오직 어진 사람(仁者)이라야 사람을 공정하게 좋아할 수 있고, 또 공정하게 미워할 수 있다."


참 어렵다. 스스로 어진 사람이라 감히 내세울 정도로, 나는 그리 뻔뻔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예컨대, 동물원 우리 속의 오랑우탄이나 인간인 우리나 서로 관찰하고 또 관찰당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cage) 속이냐 밖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 페북의 대문엔, 예외없이 누군가에게 관·찰당하고 있을, 오래 묵은 내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이 왠지 어색하고 마땅찮아 보일 때가 간혹 있다. 설령 갈아치우려고 맘먹는다 해도 대체할 만한 얼굴이 내겐 딱히 없다. 이미 한 번 써 먹은 얼굴을 다시 재탕하기도 그렇다. 더욱이 매일 아침저녁 거울로 보는, 오직 하나뿐인 익숙한 내 얼굴이기에 더욱 그렇다. '페북 친구 알고리즘' 이 궁금해진 김에 한 번 해보는 혼잣말이다.


그나저나 무엇보다 엄연한 사실이 왜곡되거나 호도되지 않는 투명하고 공명정대한 사회, 상식이 통하고 사회든 개인이든 얼마든지 자정(自淨)이 가능한, 그런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2020.5.5 페북, 이른 아침에 쓴 글을 수필로 다듬고 다시 고쳐썼다)

나태주 풀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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