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울고 있을 때

by 파르헤시아

"울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려/ 눈시울을 눈물로 적신 채 /상대의 농담에 나는 웃었다 //내가 운 이유는 통속 소설의 통속적인 한 줄때문이지만 / 하지만 울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구원받아 /덕분에 웃었을지도 모른다 "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 詩 '운다' 부분)


누구에게나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고, 또 설명할 수도 없는 자기만의 어떤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 의지로는 내 이성으로는 이해조차 할 수 없지만, 부득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도 있다. 심지어 드러내기가 죽기보다 더 싫은 것들도 있다.


며칠 전, 김명인 시인의 시를 읽다가 불현듯 뜬금없이 감정이입이 되었다.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되던 옛 기억이 옛 감정이, 시로 인하여 다시 현재로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가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책을 읽을 때, 아주 드물게 내게 일어난다. 때론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모습, 정경, 심지어 향기, 냄새 등도 마찬가지다.


이와 비슷한 경험으로 꽤 오래전의 기억을 하나 회고해 본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험이라, 산문으로 몇 편 따로 기록하기도 했다. 각설하고, 십수 년 전의 기억이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가톨릭대 상담심리학 교수인 장성숙의 수필집, 『그래도 사람이 좋다』 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구입했던 책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여타의 상담 에세이처럼 섣부른 일반화가 없고, 무엇보다 과장이나 가식이 없고 소박해서 책 제목만큼 내용도 좋았다. 생각난 김에 또 읽어 볼 요량으로 책상 위에 던져 놓았다. 그러다가 다시 읽었다.


글 중에 어느 산장의 집단상담 수련회에 참석한, 어떤 젊은 수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집단 상담 중에는 참석자들이 차례대로 여러 참석자들 앞에서 진솔하게 자기 고백을 하는 필수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은 집단상담의 핵심과정으로 무엇보다 참가자들 각 개인의 각별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예정된 시간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동료들이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산장의 어디에고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고를 직감한 동료들이 애타게 찾아다녔다. 마침내 해 질 무렵에야 우연히 한 장소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곳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장소로, 산장 한구석의 어둡고 그늘진 담벼락이었다. 그녀는 담벼락에 딱 붙어 서서 하루 종일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벼락 부분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울컥 차고 올라왔다. 결국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연신 흐느끼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사태에 내심 크게 당황했다. 결국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다. 그렇게 제법 오랫동안 울었다. 소리가 잦아든 이후에도, 다른 걸 하는 와중에도, 어린아이처럼 계속 입을 실룩거리며, 그렇게 한참을 훌쩍거렸다.


나는 내가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모른다. 어쨌든 비록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지라도, 그녀의 속내를 동일체로 인식한 내 속의 어떤 무의식이 나를 울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 비록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궁상을 떨었을지라도, 그래도 제대로 한번 운 셈이다. 그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주무셨어요?' 목소리를 얼른 가다듬고는 대답했다. '아니...목에 사레가 걸려서...'. 그리곤 헛기침을 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술에 만취하면 어김없이 잠자리를 찾아가 고이 잠든다. 그리곤 술이 깨면서 동시에 잠도 깬다. 한 번은 잠에서 깨니, 배개가 마치 물을 쏟아부은 듯이 흠뻑 젖어 있었다. 주변에 물을 엎지를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세면장에서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내 눈이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선처럼 퉁퉁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겪는 황당한 일이다. 군대 시절 두 번의 블랙아웃 이후 단 한 번도 술 때문에 기억을 잃은 적이 없다. 곱게 먹고 곱게 잠자리에 기어들어왔다. 그리곤 내 18번 노래를 흥얼거리다 잠들었을 뿐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자면서 운 게 분명했다. 그것도 꽤 장시간 눈물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퉁퉁 부은 눈은 찬물에 얼굴을 담그고, 몇 번의 난리 끝에 숙취가 가시면서 거짓말처럼 원래의 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마도 술이 내 이성을 내 의식을 잠깐 마비시킨 틈을 타서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때다' 싶어 마음껏 궁상스레 울어젖혔던 모양이다. 이후 지금껏 이와 비슷한 황당한 일은 두 어번 더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아무리 안 그런 척 무게를 잡아도 내 감정들을 아무리 꽁꽁 틀어막아 감춘들 통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가 의식적으로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나를 속일 수는 있을지라도, 내 무의식만큼은 내가 속일 수 없다. 내가 애써 기억을 안 하거나 테이프가 아주 끊겨 기억을 설사 못한다 해도, 내 안의 이 녀석은 전부 다 기억한다. 내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감춰진 내 감정까지도 낱낱이 기억한다. 내 아무리 선한 도덕군자처럼 애써 위장을 해도, 아무 감정 없는 바위나 나무처럼 요지부동하고 있어도 소용없다. 내가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알아차리려고 아무리 발악을 해도 이 녀석을 도무지 인지할 수 없으니, 내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의지로는 어쩌지도 못하고 나조차도 잘 모르는 내 안에 억압된 속내를, 상한 감정을 지가 알아서 꺼내서는 탁탁 털어내고 시원스레 눈물로 정화시켜준다. 내가 애써 무심할 수록 더욱 그런듯 하다. 정말 기특하고 다행한 일 아닌가. 내 비록 이녀석으로 인하여 혼자서 무안해하고, 홀로 어처구니없어해 할지라도 말이다. 비록 간장 종지만큼 작을지라도, 이렇듯 나는 내가 겪은 딱 그만큼만 나를 이해한다. 또 내가 겪은 딱 그만큼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딱 그만큼만 타인의 심정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또 공감한다. (20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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