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의 탐구의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도달하는 일이며, 그곳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인식하는 일이다. " -T.S 엘리엇-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평소에는 한두 시간 거리면 웬만하면 걷는다. 오늘은 날씨가 워낙 춥고 바람까지 심해서 버스에서 환승했다. 손잡이를 잡고 서서 내 옆에 나란히 선 사람들을 흘깃 보니 중국인들이다. 앳되게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친다. 쳐다보니, 이쁘장하게 생긴 아가씨가 내게 자리를 권한다. 눈매가 선하고 곱다. 나는 짧은 영어로 '괜찮다' 사양하고, '고맙다' 인사했다. 추위로 얼어있던 얼굴은 금세 녹아내렸고,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돌아와 세수를 하며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누구로부터 자리를 양보받을만한 나이 든 얼굴이 아니다. 갑자기 씁쓸했다. 이러한 상황과 느낌은 예전에도 있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의 일이다. 내 등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30대로 보이는 여성이다. 유니폼으로 보아 종업원이다. "아버님, 찾는 것 있으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한다. 이때도 똑같이 '괜찮다'라고, '고맙다'고 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와서 오늘처럼 똑같이 거울을 봤다. 매장에서의 일을 다시 떠올리며, 아무리 봐도 내가 30대의 여성으로부터 아버님이라 불릴만한 얼굴은 아니다.
거울을 보며 생각에 잠긴 일은 또 있다. 한 번은 밤늦게 건물을 찾는 일이 생겼다. 외곽지역이라 밤이면 인적이 드물다. 덕분에 한참을 헤맸다. 마침 젊은 아가씨가 보이길래,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를 보더니 대뜸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한다. 나도 얼결에, '안녕하세요'하고는 웃으며 인사했다. 목적지 건물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나중에 돌아와 세수를 하며, 거울을 봤다. 한참 동안 거울을 보며 웃었다.
한 번은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중에, 내 앞서 한 아가씨가 걷고 있었다. 근데 여자애가 자꾸 힐끗힐끗 나를 쳐다본다. 외진 곳에 이르자, 앞서가던 여자애가 갑자기 뛰어갔다. 그리곤 돌연 땅에 주저앉았다. 아마 급하게 뛰다가 발목을 접질린 듯했다. 뒤따라 걷던 나는 놀란 마음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물으니,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약간 짜증 서린 목소리로 "괜찮아요."한다. 지나쳐 가는데, 뒤에서 "아이, 재수 없어.."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분명 그녀와 나밖에 없다.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지라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걸었다. 돌아와 거울을 봤다. 아무리 봐도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일만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씁쓸했다. 그 아이에게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는 사실에 더욱 씁쓸했다. 게다가 그 아가씨가 은근히 애처롭기까지 했다. 자기 행위의 열매는 결국 자기가 먹게 마련이란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시 거울을 본다. 익숙한 내 얼굴이 거울 속에 있다. 나는 내가 모르는 내 얼굴 때문에 때로는 웃고, 때로는 씁쓸해한다. 오늘 마주친 중국 아가씨나 예전의 마켓 여인은 내 얼굴에서 내 인생 나이를 읽었음에 분명하다. 내가 미처 '읽을 수 없는' 내 삶의 이야기가, 내가 '남에게 드러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마도 내 얼굴에 그려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밤길에 마주친 두 아가씨는 내 얼굴에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기에, 확연히 다른 반응을 각각 보였을까?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내 이야기에 있다기보다는 그녀들만의 이야기에 기인한다. 나는 내 얼굴이라는 나만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현실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들도 내게 그들만의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게 하나의 현실을 되돌려 준 것일 뿐이다. 그 이야기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허구든 가식이든 진짜이건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날 웃게 하고, 때로는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올리브 색스의 책에서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깨어남」은 진짜이다'라고 나는 느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분명 '가짜'일 것이다. 그 환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결여되었다면, 한 단계 떨어진 간접적인 접촉밖에 없었다면, 어떻게 그것이 진짜일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핀터에게 주었던 그만큼 그가 내게 주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하나의 현실을 주었고, 그도 내게 하나의 현실을 되돌려 준 것이었다.』(올리브 색스 지음, 「소생 Awakenings」 최승자 옮김, 대흥, 1991).
올리브 색스의 임상보고서 형태의 독특한 책들은, 요즘의 내게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그것은 아름답거나 혹은 감동적으로 꾸며진 허구가 아니다. 소외된 현실의 적나라한 이야기들이다. 차라리 죽는 게 천만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상황 속에서, 이해조차 하기 힘든 처지 속에서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다. 이들이 내게 되돌려주는 현실은 결코 실망이나 절망이나 좌절도 포기도 아니다. 웃음이나 감동이나 허탄한 감정도 아니다. 어떻게 설명이 안 되는 묘한 위로와 의미를 찾아가는 희망이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곧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질그릇 같은 내 마음을 토닥이는 일이다.(2018.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