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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허튼소리

후레자식들~!

by 파르헤시아

살다 보면, 비록 내 맨정신으로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이지만, 분통이 터지는 답답한 상황에서 나 아닌 누군가가 그런 욕을 할 때 시원스레 들릴 때가 있다. 과거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기레기들을 향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욕이 그랬고, 특검 사무실의 어느 청소 아줌마의 욕이 그랬고,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내지르는 원색적인 욕이 그렇다.


최근의 언론 기업 종업원들, 특히 언론사 사주의 뜻과 이익에 절대 헌신하는 부류들을 가리켜 대중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 '기더기'(기자+구더기), '기발놈'(기자+XX놈)라는 별명을 사용하여 에둘러서 부른다. 왜 언론사 종업원들에게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굳이 설명 안해도 깨인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른바 '기더기'들에게 '후레기(후레자식+기자)' 라는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후레기'라는 별명은, 고(故) 박원순 시장의 조문 현장을 방문한, 여당 대표에게 기더기들이 날파리떼처럼 달려들어 도의적 상황에 어긋난 질문 공세를 퍼붓자, 여당 대표가 혼잣말로 '후레자식들~!' 이라고 일갈한 데서 비롯하였다.


'후레자식'의 뜻을 표준국어 대사전에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자식(子息)의 사전적 뜻은, "① 어떤 사람이 이성(異性)의 사람과 육체관계를 가져 낳은 사람. ②미움의 대상이 되는 남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 `놈'보다 심하고 `새끼'보다는 덜 심한 욕설"이다. 따라서 '후레기'가 의미하는 바는 사전의 뜻을 참조한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점잖고 근엄한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후레자식'이라 말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후레자식'은 소위 '쌍욕'은 아니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때 욕처럼 들리는 기분 나쁜 말이다. 때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후레자식 짓을 하며 그 범주에 직접 해당하는 부류들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란 게 있다면, 정말로 뼈를 때릴 정도로 심한 욕이 되겠다. 양심마저 없는 그러한 후레자식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두말할 가치조차 없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라는 옛 속담은 빈말이 아니다. 후레자식에 해당되는 부류들이 유독 발끈해 하는 이유다. "후레자식들아~!"


여담이다. 다소 부정적 의미로 '자식'(子息)의 의미와 비슷한 순우리말 중에 '놈'이 있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남자를 낮잡아 부르거나 적대관계의 사람 또는 그 무리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런데 우리 말 '놈'의 원래 의미는, 자식(子息)의 원래 의미와 마찬가지로,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훈민정음언해>에 이런 글이 나온다.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 이 말을 현대어로 풀어 옮기면 "(자기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여 전달하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가 된다. 다시 말해 순우리말의 이 '놈'이라는 단어는 원래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사람(인간)'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겠다. 영어의 'men'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남자를 'men'이라고 하지만, 남녀 구분 없이 통틀어 '인간'을 표현할 때. 'men'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이나 '놈'이란 단어는, '인간'이란 단어처럼, 남녀의 구분이 없는 참으로 평등한 단어다.


어쨌든 남녀 물론하고 이 '놈'이나 '자식' 앞에 어떤 형용사적 수식어를 덧붙여서 또 어떤 심정으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친근함의 표시가 되기도 하고, 때론 아주 기분 나쁜 욕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우라질 놈', '썩을 놈'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썩을 놈'은 말 그대로, '언젠가는 죽어 썩어서 없어질 놈'이란 의미다. '우라질'은 '오랏줄' 즉 수갑의 용도로 사용하는 밧줄로, 죄를 지은 죄인을 붙잡아 감옥 또는 법정으로 이송 시에 손과 몸을 묶는 포승줄의 용도로 사용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녀 무론하고 오랏줄에 묶여 고개를 푹 숙인 죄수들의 모습은 과거 법원 앞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따라서 '우라질 놈'의 뜻은 굳이 개념 설명을 안 해도 상상만으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가르친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 (마태복음 15:18-20 개역한글). 맹자는 '사단'(四端), 즉 '남의 불행과 아픔을 측은히 여기는 측은지심, 부정하고 잘못된 것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 겸손히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양지심,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요즘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한 듯한, 양심불량에 사악하고 후안무치한 '썩을 놈들', 즉 '후레자식들', 우라질 놈들'이, 사회의 공적영역에서 한 통속이 되어 안하무인으로 천방지축 날뛰고 있다. 비록 원래 욕은 아니지만, 욕으로 자리 잡은 표현 중에 내가 글에서 간혹 들먹이는 어휘가 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 역의 한석규가 웃으며 내지른 대사다. 졸(拙)한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더 보태고 싶다. "에이 후레자식들~!" (2020.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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