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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Nov 17. 2020

식견(識見)

가슴속은 텅 비어 든 것이 없는데 한갓 겉만 꾸며서 이를 취한다. 번드르하게 바르는 것을 문사(文辭, 글로써 말을 표현하는 것, 즉 글짓기)로 생각하고 아로새겨 꾸미는 것을 글이라고 여긴다. 스스로는 천하의 공교로움을 다하였다고 여겨도 아무 쓸 데 없는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보건대, 식견(識見)이 높은 사람은 글도 높고, 식견이 낮은 사람은 글 또한 낮다. 글이 좋고 나쁨은 문장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식견에서 생겨난다. 식견이라는 것은 뿌리이고, 글이라는 것은 가지와 잎새다. 뿌리가 튼튼한데도 가지와 잎새가 무성하지 않은 것은 없고, 또한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서 가지와 잎새가 무성한 것도 없다. 그렇다면 식견 기르기에 힘쓰지 않고, 문장 잘하기만을 구하는 자는 망녕되다 하겠다. 


-이하곤(李夏坤, '산보고문집성 서문 刪補古文集成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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