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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Mar 02. 2021

공정하다는 착각

운의 윤리는 인간의 이해와 통제력을 벗어나는 삶의 차원을 중시한다. 세상이 반드시 각자의 능력에 맞는 보상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신비, 비극,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음과 같은 〈전도서〉의 내용은 이런 윤리의식을 잘 표현한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았다. 빠른 경주자라고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자라고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자라고 음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명철한 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기능을 갖춘 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이는 때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로다". ...자유(힘써 일함으로써 내 스스로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와 당당한 자격을 한껏 강조한다. 내가 많은 세속적 재화(소득과 재산,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는 데 스스로 책임이 있다면, 그러한 '취득의 자격'이 있을 것이다. 성공은 미덕의 증표다.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힘을 내게 해준다. 스스로가 자기 운명의 책임자이며 통제 불능의 힘에 몰려가는 희생자가 아니라고 여기도록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우리 자신을 자수성가하고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 여길수록, 우리는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 아니겠는가. 이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기능한다. 우리 운명이 개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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