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문일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르헤시아 Jun 20. 2021

개소리(bullshit)

'개소리'(bullshit)는, 거짓말이 그런 것처럼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도 않고, 그것이 '참이라는 믿음'에도 근거하지도 않는다. 개소리의 요체는 바로 진실에 대한 관심의 결여,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해서 일체 무관심한 상태다. 나는 이것을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진실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소리를 늘어놓는데에는, '진실을 안다'라는 그런 확신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개소리꾼은 진실의 요구 자체를 아예 모두 무시한다. 개소리꾼이 거짓말쟁이와 다른 점은, 진실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 데에 있다. 개소리꾼은 진실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실의 적이다. 어떤 진술이 진실이고, 다른 진술이 거짓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은 오직 두 가지 대안만을 가질 수 있다. 첫째는 진실을 말하려는 노력과 속이기 위한 노력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해 그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사물이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기를 의도하지만, 개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는 허황된 주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은 특별하게 견고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의심에 의해 한순간에 해체되고 쉽게 무너지는 것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비실재적이다. 다른 사물들보다 덜 안정적이고 덜 내재된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이런 경우라면, '진정성'(sincerity)이라는 건 그 자체가 '개소리'다.


– 해리 G. 프랭크퍼트 (Harry G. Frankfurt, 'On Bullshit' 1986)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