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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ul 07. 2021

독서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한다.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독서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효율적인 시간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어떠한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는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마치 무슨 성벽이라도 두르듯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을 동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읽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담을 주지 말고, 읽고 난 책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보태려들지 말아야 한다. 섣부른 가치 판단도, 어휘 설명도, 문장 분석도, 작가에 대한 언급도 접어두어라. 요컨대 책에 관한 그 어떤 말도 삼가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존중해야 할 모든 권리 목록이 그렇듯이, 독서에 관한 권리 목록도 가장 먼저 그것을 행사하지 않을 권리로부터─즉, 책을 읽지 않을 권리─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권리 목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엉큼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에세이집 '소설처럼',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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