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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Sep 16. 2021

조작된 세계

주민 다수에게는 항상 두 가지의 현실이 존재했다. 당(黨)의 진실, 그리고 사실의 경험에 따른 진실이었다. 그러나 전시재판에서 당(黨)이 ‘첩자’와 ‘적(敵)’을 일방적으로 선별하여 극악무도한 인민숙청으로 들끓던 대숙청 시기에, 소련 언론의 선전·선동으로 조작된 세계의 실상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언론 보도를 안중에 두지 않고 숙청의 본질을 파악하고 숙청의 기본 전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려면, 일반과는 다른 가치 체계와 연결된 비상한 의지력이 있어야만 했다. 일부 사람들은 종교나 민족이 달라서 그 실상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당(黨)과는 다른 신조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판적 관점으로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마도 나이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그들은 '결백하면 체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기에는 소련 사회에서 그와 정반대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세계밖에 모르거나, 당과 언론 및 소련 사회가 주도하는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족들에게서 물려 받지 못한 서른 살 이하의 사람이, 당(黨)이 주도하는 소련 언론의 선전·선동 체계 밖으로 나가 소련 공산주의의 정치적 원리에 대해 의문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올랜도 파이지스, 『 The Whisperers: Private Life in Stalin's Russia (2007), 한국어 번역판 '속삭이는 사회' (교양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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