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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Dec 21. 2021

양심의 질식

이 세상에는 부정(不正)·불의(不義)를 행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것을 모르고 행하는지, 번번히 알면서도 행하는지, 일률적으로 때려서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러나 남이 보아서 그 하는 짓이 뚜렷한 부정(不正)·불의(不義) 라고 인정할 때에, 그 자신이 그것을 전연 모를 리가 만무하다. 사람이란 누구나 사람인 이상 다소의 양심을 지니고 있는 것이요, 이 양심 또는 양식(良識)이 일말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으면 정(正) 부정(不正), 의(義)·불의(不義) 쯤은  넉넉히 판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세상에는 부정.불의를 몰라서 행하는 사람보다도 알면서 행하는 사람이, 또 행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알면서도 왜 이런 짓을 하느냐하면 그것은 과도한 욕심으로 인하여 일시 양심과 양식이 질식되고 말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심의 질식이 자주 되풀이가 되면 곧 양심이 마비되고 말게 되는 것이요, 양심이 마비된 후에는, 어떠한 부정(不正)·불의(不義)라도 기탄없이 감행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찔리는 바가 있다가도 나중에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어 버리고 만다. 이러한 경지는 실로 위험천만한 것이다. ...욕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비근한 것으로는 식욕·색욕이 있고, 그보다 크다고 할는지 심한 것이라 할는지, 물욕이 있다. 금전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 말이다. 이보다 고도한 것이 명예욕이요, 또 그보다 더욱 큰 것이 권욕이다. 욕심 중의 이 권력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가장 왕성하고 가장 추잡하고, 가장 위험한 것이다. 나는 ‘권력은 불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철없는 불장난을 하다가 화재를 유발(誘發)하게 되면, 그 피해가 자신·자가(自家)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타인들에게까지 미쳐서, 막대한 재해를 불러오게 되나니,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우리 속담에 ‘도둑의 찌끼는 있어도, 불의 찌끼는 없다’는 것과 같이, 화재란 한 번만 일어나게 되면,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다. -이희승(수필 「지조(志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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