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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May 17. 2022

마음비우기

대개 마음을 쉬면 마음이 텅 비게 되고, 텅 비게 되면 외물(外物)이 개입하여 누를 끼칠 수가 없게 되는 법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천하의 어떤 물건도 그대를 해칠 수가 없을 것이다. 옛날에 야인(野人)이 갈매기를 상대로 장난을 쳤는데도, 갈매기들은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놀았다. 이는 그가 갈매기를 향하여 일말의 사심조차 전혀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빈 배가 다가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마음이 좁고 옹졸한 사람도 화를 내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모두 텅 비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대가 마음을 텅 비워 투명하고 널찍하게 해서, 외물과 자아의 분별을 잊고 영광과 치욕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면, 장차 그대가 종일토록 말을 해도 사람들이 떠든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요, 종일토록 술을 마셔도 사람들이 술독에 빠졌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요, 종일토록 교제를 해도 사람들이 번거로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맹자(孟子)가 송구천(宋句踐)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유세하기(遊說, 자기 의견 또는 자기 소속 정당의 주장을 설파하며 돌아다니는 것)를 좋아하는가? 내가 그대에게 유세하는 법을 말해 주겠다. 사람이 그대를 알아주어도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고, 사람이 그대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또한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이것은 바로 그 마음을 텅 비우고서 이 세상을 헤쳐 나아가는 지혜에 대해 말한 것이다.


-조익(趙翼, 1579~1655), '삼휴암기(三休庵記)', 『포저집(浦渚集)』 제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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