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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un 08. 2022

반성(反省)

사람은 불행한 경지를 조우(遭遇)하게 되는 때에는 흔히 원천우인(怨天尤人)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빈자(貧者)는 부자를 원망(怨望)하고, 천자(賤者)는 귀자(貴者)를 원망하고, 약자는 강자를 원망하고, 그보다도 고급적(高級的)으로 자기의 불평을 누설하는 사람은 허희(噓噫 개탄), 장태식(長太息 긴한숨)으로 사회를 저주하고 천지를 원망하며, 일보를 진(進)하여서는 종(縱)으로 시대를 통매(痛罵 몹시 꾸짖음)하느니, 그들은 일견 불우의 영웅이요, 우시(憂時 시국을 근심함)의 기골(氣骨)인 듯하다. 그러나, 자기를 가난케 하는 것은 다른 부자가 아니라 자기며, 자기를 약하게 한 것은 다른 강자가 아니라 자기며, 자기를 불행케 한 것은 사회나 천지나 시대가 아니라 역시 자기다. 그리하여, 자기를 행복스럽게 하는 권리도 자기에게 있는 것이요, 자기를 불행케 하는 책임도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사람이라는 것은 권리와 책임을 자기 스스로가 가질 뿐 아니라, 추호도 남의 권리를 침범하지도 못하는 것이요, 자기의 책임을 남에게 분담시키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 무궁의 진리다. 만일 자기의 권리를 침범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요, 상대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침탈한 것은 아니다. 또는 타인으로서 자기의 책임을 분담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책임을 스스로 회피하는 것이요, 타인이 강탈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하여 만고(萬古)를 돌아보건대, 어느 국가가 자멸(自滅)하지 아니하고 타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어느 개인이 자모(自侮 자기 자신을 스스로 업신여김)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모멸을 받았는가.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자멸하는 국가라야만 타국으로서 정복할 수 있는 것이요, 자모하는 사람이라야만 타인으로서 모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면 역경에 처한 자로서 원천우인하는 것이 가할까. 오직 반성이 있을 뿐이다. 망국(亡國)의 한이 크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정복국만을 원망하는 자는 언제든지 그 한을 풀기가 어려운 것이요, 불운(不運)의 탄(歎, 한탄, 탄식)이 적은 것은 아니지마는, 행운의 인(人)만을 원망하는 자는 좀처럼 그 불행을 돌이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성북영언(城北零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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