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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an 07. 2018

거룩한 거짓말

"어떤 남자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갔다. 샤워를 대충하고 곧바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끈한 열탕에 몸을 담갔다. 어린 아들은 냉탕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저 녀석 묵은 때를 벗기려면 따뜻한 물에 몸을 불려야 하는데...' 궁리 끝에 아들의 눈을 마주치며 한마디 한다. "이야... 참 시원하네, 정말 시~원하네". 이에 어린 아들의 반응이 금방 온다. "정말?"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며 미심쩍었든지 되묻는다. “아빠, 정말 시원해?”. “응, 와아~ 진짜 시원하다... 시원하다 못해 씨~원하다. 얼른 들어와 봐라~.” 이에 용기를 얻은 아들, 열탕에 주저 없이 첨벙 들어갔다. 이내 "우 아악... 뜨거워" 하고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아빠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울먹이듯 한마디 한다. “에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

거짓말에 관한 오래된 유머다. 하지만 이 썰렁하고도 한편으론 씁쓸해지게 만드는 유머 안에 거짓말의 개념, 동기, 과정, 그리고 결과가 고스란히 한편의 상황극으로 함축되어 있다. 비록 선의의 거짓말일지라도 말이다. 


거짓말에 대한 정의는 아주 다양하다. 그중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거짓말이다. 그 핵심은 사실 또는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적인 동기에 있다. 이런 주장의 중심에는 철학자 칸트가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진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을 통틀어서 거짓말이라 정의한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실을 감추는 행위까지도 포함된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혹자는 자기방어적인 목적으로 또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의적으로 상대방이 틀린 사실을 믿도록 속이는 행동까지도 포함시킨다.


학술적으로 거짓말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적극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작위적 거짓말(lies of commission 허위진술형 거짓말).  둘째, 소극적으로 일부러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관련된 중요한 정보나 사실을 빠뜨리고 말하는 부작위적 거짓말(lies by omission 누락형 거짓말), 마지막으로 진실을 덮기 위해서 진실과 관련 없는 사실을 말하여, 거짓말하는 인물이 진실하다는 영향력으로 삼으려는 거짓말 (lies of influence 영향력의 거짓말 또는 lies of character 인물의 거짓말)이다. 


그 외에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진실을 덮으려는 거짓말(lies of paltering 호도형 거짓말)이 있다. 영어 paltering 은, '어름어름 넘기다; 얼버무리다, 말끝을 흐리다'의 뜻이다. 이에 해당되는 우리말 한자어 호도(糊塗)는, '풀을 바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사물 혹은 종이 위에 종이를 덧붙이기 위해 풀을 바르는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어떤 사실을 적당히 얼버무려 넘김으로써 속이거나 감추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호도형 거짓말은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지만, 실상은 진실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거짓말이다. 물타기, 논점 회피, 애매모호한 표현, 선택적이고 편향된 진술, 고의적인 부풀리기, 고의적인 의미 왜곡과 축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세월호를 기점으로 그 실체가 드러난 언론, 그리고 정부 당직자, 정치인들에게서, 누락형 거짓말과 함께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위에 인용한 목욕탕 아빠는 호도형 거짓말을 한 셈이다.


거짓말의 다양한 연구 중에 사회적 인간관계적 측면에서, 거짓말의 유형을 구분하기도 한다. 미국의 사회심리와 인지심리학자인 버시(Bussey. k, 'Lying and Truthfulness' 1992, 1999)는 거짓말의 유형을 '반사회적 거짓말', '친사회적 거짓말' 그리고 '유희적 거짓말'로 구분한다. 


반사회적 거짓말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고 처벌을 피하려 하거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남을 속이려 하는 고의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성격의 거짓말이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부정적인 의미의 거짓말이다. 친사회적 거짓말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배려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긍정적인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이다. 즉, 실제 마음이나 생각,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을 배려하여, 진심과는 다르게 하는 말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유희적 거짓말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즐겁게 해주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이다. 


실생활에서 흔히 일상으로 접하게 되는 소소하고 다양한 거짓말들이 대부분 친사회적이거나 유희적 거짓말의 두 가지 범주 안에 포함된다. 반사회적 또는 악의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러하다. 물론 자기를 과시하고자 자신을 포장하거나,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놓고 보면, 거짓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연구에 따르면 반사회적 거짓말과 친사회적 거짓말은 유년기 즉 5~7세 무렵이 되면 그 의미의 분명한 구분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는 유아원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연령대의 어린아이들이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 선의와 불의 등을 분간할 수 있는 사회적 인지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다. 물론 이 시기에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 사실 또는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적인 동기에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거짓말이지만, 거룩한 거짓말도 있다. 거룩한 거짓말은 니체가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언급된다. 니체는 로마제국의 집정관을 지낸 파이투스(Caecina Paetus)의 아내인 아리아(Arria)가 죽기 직전에 했다는 거짓말인, "파이투스, 나는 아프지 않아요(Paete, non dolet)" , 이를 '거룩한 거짓말(A Holy lie)'이라 하였다. 이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소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61~112)의 서한집(Epistulae)에 나온다. 아리아(Arria) 이야기는 손녀인 파니아(Fannia)에 의하여 플리니우스에 전해 졌다고 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파이투스는 클라디우스(Claudius) 황제 시대인 서기 42년, 로마 군단장인 스크리보니아누스( Lucius Arruntius Camillus Scribonianus)가 일으킨 반란에 가담했다. 반란은 내부 고발로 인해 실패한다. 파이투스는 생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원로원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파이투스에게 마침내 황제의 자결 명령이 떨어졌다. 


자결 명령을 받은 파이투스는,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머뭇거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파이투스의 아내 아리아는 그런 남편이 애처롭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녀는 평소, 사위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만일 남편에게 정치적으로 불길한 일이 생겨서 황제의 자결 명령이 떨어진다면, 나도 남편을 따라 죽겠다'라고 공언했다. 그 이유는 남편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처로운 남편을 안타까이 지켜보던 아리아는 돌연 파이투스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마지막 조언을 한다. "여보,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슴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그녀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남편을 향하여, "파에테 논 돌레트 (Paete, non dolet 여보, 아프지 않아요.)" 하였다. 

결국 파이투스는 아내 아리아를 따라 자결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죽음이라는 극단의 불안과 고통을 넘어서 자기의 소중한 목숨을 아낌없이 포기하면서 까지 자기를 희생하는 거짓말, 이게 니체가 언급하는 '거룩한 거짓말'의 내용이다. 이는 참 사랑과 진정한 용기, 그리고 명예와 대의명분(大義名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히 거룩하다.


지난해 공공부문의 국가부채가 무려 1000조를 넘었다고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64.4%가 빚인 셈이다. 천문학적인 빚을 끌어다 썼는데 오히려 이전 살림보다 나아진 게 전혀 없고 오히려 악화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최순실 일가가 그동안 해외로 빼돌린 자산이 10조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손만대 돈 걱정 없이 살 것 같은 전모나 MB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방은 뜨겁고 굴뚝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아궁이에 불 지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사를 준 사람도 있고 주사를 맞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주사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사를 준 사람이나 맞은 사람마저  전부 모르쇠다. 범법과 불법의 흔적과 결과가 증거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사자의 사악하고 더러운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나도 진심으로 모르는 일이라고 결백을 주장한다. 한편의 잘 짜인 추리소설을 보는 느낌이다.


이게 요즘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보이는 황당무계한 상황이다. 그것도 사회지도층, 반사회적 카르텔로 엮어진 소위 엘리트 기득권의 민낯이요 실체다. 거기에다 탐욕적이고 지능적이며 사악하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파렴치하고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무색게 할 정도다. 특히 이 사회의 각종 불법과 범죄에 엄정하고 추상같은 법정의를 집행했던 법 전문가 출신들의 실체가, 파렴치하고 사악한 범죄자들과 다름없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교육자들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짐승이나 가능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촛불을 들었을까? 


여하튼 거짓말의 유형, 특히 반사회적 거짓말의 전형과 실제 사례가 무엇인지 알려면, 요즘 뉴스 정치 사회면에 곧잘 등장하는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된다. 아울러 소위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과 이보다 더 심각한 사이코패스들이 어떤 자들 인지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의 특성은 거짓말, 양심 결핍, 공감능력 결핍, 죄책감 결핍 등으로 함축된다. 인면수심, 목후이관, 양두구육, 후안무치, 적반하장, 엄이도종, 곡학아세, 황당무계, 혼용무도... 요즘 청문회와 뉴스를 살피면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고사성어들이다. 귀에 익도록 들은 말이다. 아둔한 터라 고사성어의 의미를 이제야 확실하게 이해하는 계기로 삼는다.


반사회적 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끔찍한 범죄자들 또는 사이코패스와 요즘 사회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차이는, 사회적 명함, 지성과 교양 또는 종교의 가면을 쓰고 있을 따름이다. 그 가면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바로 추악한 탐욕과 이기심이다. 단지 명예와 귄위와 합리적인 대의명분으로 위장되어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목후이관(沐猴而冠)이 따로 없다. 그 추악하고 비굴한 민낯들이 요즘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불의 혹은 범죄의 증거가 감추어지고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불의와 범죄행위가 정당하다고 인정할 사람은 없다. 심지어 합리적이며 결백한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제정신을 가졌다면 말이다. 

감초를 캐기를 수산(首山) 남쪽 산마루에서 하려는가? 사람들이 하는 말은 진실로 믿을 수 없다네. 들은 척하지 말고 버려두어 진실로 옳게 여기지 않는다면 참소하는 사람들의 말이 어찌 먹혀들 수 있으리오. -시경(詩經), 국풍(國風) 당(唐) 제12장 채령(采苓)-

거짓말에서 진정 자유롭고 결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제 갓 유아를 벗어난 어린아이들도 비록 거짓말을 본능적으로 할지라도, 선악,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정도는 분간한다. 반사회적 행동, 반사회적 거짓말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어린아이들 마저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사리판단 정도는 한다는 말이다. 


한통속이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서로 마음과 뜻이 통하고 맞아 같이 모인 동아리 또는 무리를 표현하는 말이 바로 '한통속'이다. 우리 사회의 '한통속'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사법, 심지어 종교와 언론까지 망라한다. 반사회적으로 한통속인 저들이 '거룩한 거짓말'을 알리는 만무 하다. 하물며 양심은 오죽하랴. 생각해 본일 조차 없을게다. 실낱같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진정 옳은 것을 위해 명예를 위해 대의를 위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탐욕과 집착을 포기하거나 희생 할리는 더욱 만무하다. 


'가장 고약한 거짓말쟁이는 바로 진실의 가장자리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영국의 신학자 줄리어스 찰스 헤어(Julius Charles Hare, 1795~1855)의 말이라고 한다. 가장 고약한 거짓말쟁이들은 보고 싶지 않아도 저 높은 곳에 숱하게 보인다. 하지만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파이투스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가슴을 두드리며, 진정한 용기를 갖게 하는 고결한 아리아(Arria)들은, 아무리 눈을 치켜뜨고 위를 쳐다봐도 그 어디에고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20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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