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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an 06. 2018

크산티페(Xanthippe)

크산티페(Xanthippe)는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다. 그의 아내인 크산티페 역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에 속한다. 그녀가 악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악처라면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 안느레예프나 톨스타야', 존 웨슬리의 아내 '몰리 골드 호크 바제일'을 꼽는다. 소크라테스(BC470~BC 399)가 기원전의 인물이니 크산티페는 명실공히 대표적인 악처의 원조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집행 직전에 면회 온 크산티페가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구슬피 울부짖는 대목에서, 그 애달픈 심정이 먹먹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의문이 들었다. 왜 이 여인이 역사의 기록 속에 악처로 남았을까?


크산티페가 악처로, 수천 년에 걸쳐 회자되는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크산티페는 집으로 돌아온 소크라테스에게 문전박대를 한다.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는 그것만으로 분이 덜 찼던지, 소크라테스의 대머리 위에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씌운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말한다.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 비가 쏟아지게 마련이지"라고.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어째서 저런 부인을 맞이했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마술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은 사나운 말을 골라서 탄다. 사나운 말을 다룰 줄 알게 되면 다른 말을 다루기는 쉬운 일이다. 내가 이 여자를 견디어 낼 수만 있다면, 천하에 내가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란 없어질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또 "쉴 새 없는 부인의 투정을 용케 참으시군요" 하자,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고 나면 듣기 싫은 줄 모른다" 라고 대답하였다. 어찌 보면 달관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마누라 속 뒤집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하다. 욕과 물을 매일 바가지로 얻어먹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크산티페와 소크라테스 사이에 아들 셋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은 영원히 달콤한 환상일지는 몰라도, 결혼은 혹독한 현실의 삶이다.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능력으로는 거의 빵점에 가까운 영감 남편과 아들 셋까지 데리고 키우는 아내의 심정, 그리고 처지를 잠시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보가 아니라면 슬프게도 크산티페의 행동이 공감이 가는 상황이다. 크산티페가 정말 악한 부인이었을까?  


사전적으로 악(惡)의 뜻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 또는 그런 것.',  '도덕률이나 양심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악한 사람'의 일반적인 의미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과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나쁜 사람을 말한다. 이쯤 되면 본격적으로 더욱 궁금해진다. 왜? 어쩌다가 크산티페는 인류 대표 악처의 원조로 찍혔을까? 


우선 크산티페와 소크라테스의 만남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대머리에 두 눈이 돌출되고 코가 주저앉은, 요즘 인물 기준으로 따지자면 형편없는 추남(醜男)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나이 오십이 되도록 노총각으로 전전했다. 요즘의 시각으로도 그가 나이 오십이 되도록 노총각으로 전전한 이유는 얼마든지 쉽게 추측된다. 추남에다 가족을 부양할 경제 능력조차 없는 가난한 철학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20살 꽃다운 나이의 크산티페는, 철학자로 유명한 것 이외에는 별 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듯한, 늙은 총각 소크라테스와 결혼한다. 나이차가 무려 30살이다. 


상상력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재능이다. 우리 각자가 가진 상상력으로 악처라는 고정관념을 잠시 뛰어넘어보자. 이쯤 해서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면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와 결혼한 이유에 대해 독자 나름의 다양한 상상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상상력마저 뒤흔들기에 충분한, 우리가 모르는, 또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엄연한 사실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결혼 관습이다. 결혼은 여자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결혼은 중매로 이루어진다. 여자 나이 15세에 이르면 결혼은 부모가 선택한 남자와 한다. 또 이혼 권리는 오직 남자에게만 주어졌다. 


소크라테스의 저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 알려진 것은 그의 유명한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그리고 크세노폰의 회고록,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 등을 통해서다. 그러나 그 내용이 기록한 자의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철학사에서는 이것을 ‘소크라테스 문제’라 한다. 분명한 것은 플라톤의 기록을 통해서 소크라테스가 인류에 회자될만한 위대한 철학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왜 역사는 수천 년 동안 인류에 회자될 정도로 그녀를 악처라는 가혹한 팻말을 붙였을까? 무엇 때문에?. 크산티페의 저 유명한 일화들이 등장한 곳은 아리스토파네스(Arisrtophanes 450-385. B.C)의 희극 ‘구름(Nephelai)’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대표적인 희극작가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당시의 모든 정규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성향이 강하며 새로운 사상을 혐오하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에 그것도 지성을 두루 갖춘 극우파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서 묘사된 소크라테스는 한갓 사이비 선생에 불과하다. 


이제야 비로소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듯도 하다. 당시 소크라테스를 사형으로 몰고 간 죄목은 "국가가 정한 신을 인정하지 않은 죄, 국가의 전통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상을 들여와 청소년들을 선동하여 타락시키려 한 죄" 였다. 이쯤 되면 정치적 극우인 아리스토파네스의 눈에는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비쳤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요즘 친일 숭미 세력의 전위대로 자처하는 조중동과 종편 그리고 기업형 세속 종교인들을 연상하면 좀 더 확실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이러한 연상 역시 자유다. 물론 고정관념 혹은 편견이 너무 커서 상상력마저 죽어버린 사람은 당연히 예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크산티페를 등장시켜 사회의 존경받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폄하하고 조롱하는 데에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며 힘든 생활고에도 억척같이 감내했던 보통 여인 크산티페는, 비록 백수지만 사회적 위험인물로 낙인찍힌 입바른 철학자 남편을 둔 덕에 덤으로 조롱거리의 조연자로 엮인 것이다. 결국은 졸지에 악처의 대명사로 인류에 회자하는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사형집행 소식을 듣고, 크산티페는 막내 아이를 품에 안고서 급히 달려온다. 그리고 통곡한다. 형을 집행할 수 없을 정도로 울부짖으며 심하게 통곡한다. 보다 못한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애원한다. “오, 크리톤, 이 여자를 제발 집으로 데려다주게.”  결국 크산티페는 강제로 끌려 나갔다. 소크라테스는 당근 즙에 섞은 독을 태연스레 마시고 기원전 399년 4월 27일. 향년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크산티페에 대한 유일한 사실적 기록은 플라톤의 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수록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통곡하는 모습이 전부라고 알려져 있다. 이때 크산티페의 나이 40세다.  


가끔 뉴스에 오르내리는 기사들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악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아는 사람만 아는, 선한 가면 뒤에. 종교와 도덕 혹은 사회적 가면 뒤에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사는, 악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실제로 존재한다. 외형적으로는 쉬이 알 수 없는 이러한 악한 사람들의 특징은 양심의 결여, 공감능력의 결여에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도 악마 같은 인간들 부류에 드는 남자 못지않는 그런 여인들이 많이 존재한다.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악한 사람들의 내면에 숨은 악이 그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는 토양이 분명 있다. 일례로 초한지에 나오는 중국 역사의 인물인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태후는 환경이 조성되자 인간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한 일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공감은 헤아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크산티페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에 돌아와서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걸어 놓은 팻말과 딱지를 보면 정말 많이 억울할 것이다. 악처로 함께 거론되는 두 여인의 실상도 어쩌면 알려진 바와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은 의외로 각색되고 가공된 허술한 것들이 많다. 역사는 어떤 인간이 어떤 시각, 어떤 잣대를 가지고 기록하느냐에 따라 전혀 양상과 양태가 달라진다. 크산티페가 악처로 탈바꿈된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악법도 법',  이 또한 이 땅의 누군가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이렇듯 세상사의 요체는 누군가가 정해준 단답형 암기형으로 거두절미되어 간략하게 요약되고 분류된 것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이면에 사실 혹은 진실이 숨어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분명한 것은 역사의 기록은 항상 지배자, 강자의 논리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사회든 개인이든 그 역사의 기록과 기억들이 악한 사람들 손에 좌우될 때, 선과 악이 뒤집히고 목적과 결과가 수단과 과정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악마가 천사로, 나쁜 놈이 좋은 놈으로, 늑대와 이리가 양으로, 기회 보신 주의자가 현실 실용주의자로, 사기 협잡꾼이 사회적 능력자로, 친일 매국노가 항일 애국자로, 사이비가 진짜를 압도하는 전문가로 둔갑되기도 하고, 보통의 선량하고 멀쩡한 사람이 파렴치한 죄인, 혹은 천인공노할 악인, 또는 사탄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사회 지성의 역할 중에 하나는 건전한 비판의식, 즉 시시비비의 분별을 통해서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데에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는 그의 책, 「지식인의 책무」(강주헌역, 황소걸음, 2005)에서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성인과 철학자들의 사정은 약간 다른 듯하다.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성을 밥그릇과 명함을 채우는 기능으로만 갖췄을 뿐, 그들의 목줄을 채운 끈이 국가의식이나 민족의식이 결여된 극단적인 변종 보수주의자로 대표되는, 친일 숭미의 사회적 강자들의 손아귀 속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깝고도 부끄러운 현실이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201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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