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어(訓語)

입으로만 그렇다고 하고 마음은 그렇지 않다면 어느 누가 믿으려 하겠으며, 또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며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人情)일진대, 자기 스스로 악에 들어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본성의 탓이 아니다. 지혜가 그 방향을 잘 선택하지 못하고 물욕이 그것을 구속한 때문이다. 일을 할 때에는 시간이 부족할까를 걱정하지 말고 그 일에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할까를 걱정해야 한다. 말은 과장해서는 안 되고 오직 진실되게 할 뿐이며, 글은 길게 늘여서는 안 되고 정밀하고 명료하게 할 뿐이며, 은혜는 함부로 베풀어서는 안 되고 적절하게 할 뿐이며, 사람은 섣불리 의심해서는 안 되고 오직 믿을 뿐이며, 사물은 꺾어서는 안 되고 오직 그 물질적 성질(物性)을 따를 뿐이다.

-정조대왕(1752~1800), '훈어(訓語) 2', 홍재전서 제175권 / 일득록(日得錄)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