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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un 15. 2024

자족(自足)

천(千) 칸 되는 고대광실 집에다 일만 종(鍾, 1종은 곡식 약 49.7리터) 이밥(쌀밥)을 먹고, 비단옷 백 벌을 갖고 있다 해도 그 따위 물건은 내게는 썩은 쥐나 다를 바 없네. 호쾌하게 이 한 몸뚱어리를 붙이고 사는데 넉넉하기만 하네. 듣자니 그대는 옷과 음식과 집이 나보다 백배나 호사스럽다고 하던데 어째서 조금도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기는 하네. 책 한 시렁(책장하나를 가득 채운 책),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하는 창 하나, 햇볕 쪼일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오. 이 열 가지나 되는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데 이밖에 구할 게 뭐가 있겠나.


-김정국(金正國, 1485~1541, '황 아무개에게 부치는 편지(寄黃某書)', 『송와잡설(松窩雜說),이기(李墍, 152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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