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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un 17. 2024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가진 것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자는 망령된 자이고,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가지고 있고 싶지 않은 듯이 하는 자는 속임수를 쓰는 자이며,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잃을세라 걱정하는 자는 탐하는 자이고, 가진 게 없으면서 꼭 갖고 싶어하는 자는 너무 성급한 자이다. 고대 중국의 우임금(大禹)이 말하기를, “산다는 것은 붙여 있는 것이고 죽음이란 돌아가는 것이다(生寄也 死歸也)”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산다'는 그 자체가 나의 소유인 것이 아니라. 하늘이 이 세상에 잠시 맡겨놓은 형체일 뿐인 것이다. 사는 것도 붙여 있는 것뿐일진대 하물며 밖에서 오는 영욕(榮辱)이며, 밖에서 오는 화복(禍福)이며, 밖에서 오는 득상(得喪 얻음과 잃음)이며, 밖에서 오는 이해(利害)는 오죽 하겠는가? 이 모두는 몸과 마음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性命)이 아닐뿐더러 잠시 붙여 있을 뿐인 것들인데, 어찌 변치 않고 일정할 수가 있겠는가. 한평생 변치도 않고 일정할 수도 없는 사람도 결국 그것들과 함께 모두 죽어 없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그 일정하지 않은 것들은 다 죽어 없어지고 오직 불변하고 일정한 것만이 죽어 없어지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사람이고,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늘이다.  따라서 불변의 하늘과 합치되는 자는 일정하지 않은 사람의 본성과는 반드시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섭리와 사리에 통달한 자는 그 길을 가리켜 이르기를 주어진 그 시기에 편안히 살고 하늘이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하였고, 성인(聖人)은 이를 논하여 평이하게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르라고 하였다.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고 봄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나무가 '잎이 졌다'고 가을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내 생애를 진실로 사람답게 성실하게 잘 꾸려가는 것이 바로 내가 좋게 죽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붙여 있는 동안을 잘 처리하면 돌아갈 때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신흠(申欽,1566~1628), '기재기(寄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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