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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문일침

몽상의 대가(代價)

by 파르헤시아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사악함과 계략뿐만이 아니라 혼란과 오해였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도 당신만큼 실재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세상이 당신 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당신 발 아래에 놓인 세상은 언제든 일어나 당신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존재로, 쉽게 찢어지고 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무의식적인 몽상의 대가(代價 cost)는 언제나 이전의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순간 이전에 있었던 것과의 재조정, 그리고 지금은 조금 더 나빠 보이는 것과의 재조정이었다. 한때 그럴듯한 디테일로 가득했던 그녀의 몽상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덩어리 앞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헛된 어리석음으로 변해버렸다. 다시 이전의 상태, 이전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어려웠다.


-이언 맥큐언(Ian McEwan) 소설, '속죄'(Atonement.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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