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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심리

by 파르헤시아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조지 산타야나('The Life of Reason: Five Volumes in One' 1906)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라고 말한 칼 마르크스의 통찰이 새삼스럽다. 대통령 탄핵이 망령처럼 반복되고 2025년 내란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경험했거나 안다면, "어떻게 외환을 획책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내란을 일으킨 내란의 수괴를 지지하고 옹호할까?", "어떻게 저런 파시스트같은 무지한 인간을 지도자로 지지하고 옹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악한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불의하고 부패한 지도자를 지지하고 옹호할까?"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불의하게 행사하는 부패한 지도자를 향해 광적으로 환호하며 박수치고,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공정에 동조하며, 왜곡된 자유 · 변질된 자유를 주창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실체적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불편해한다. 과연 이들은 모두 태생적으로 악의적인 사람일까? 아니면 무지해서일까?


이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 심리학자들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나치의 잔혹함을 마주한 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자라나는지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단순히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그를 지지하고 따르며, 순응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에 주목했다. 그 탐구의 결과물이 바로 ‘권위주의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이라는 개념이다.


권위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위((Authority), 그리고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에 대한 개념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권위(Authority)란, 특정 개인, 집단, 제도가 정당한 힘이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과 수용에 기반한 개념이다. 권위는 특징적으로, 자발적 복종과 신뢰에 기반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당성(legitimacy)'을 필요로 한다.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란, '사회나 조직에서 권력과 명령이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오고, 복종이 강조되는 정치적 또는 문화적 체계'를 말한다.“권위주의”는, 권위의 핵심요소인 정당성에 대한 비판 없이 권위가 맹목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왜곡된 형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밥 알테마이어(Bob Altemeyer, 1981)는 권위주의를 "강한 권위자에게 복종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적대적이며, 전통적 규범을 중시하는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권위주의의 주요 특징은, ①상명하복식 위계질서 중시 ②비판과 토론의 억제, 자유나 개인의 자율성 제한 ③외부 집단(다른 민족, 사상, 성별 등)에 대한 배타성 ④정치적으로는 독재정권, 군부정권과 연결된다.


'권위주의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


권위주의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은 "강자에 복종하고 약자를 억압하려는 성향을 지닌, 전체주의에 취약한 사회적 성격 유형"을 말한다. ‘권위주의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이라는 용어는 1950년, 독일 태생의 사회심리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와 그의 버클리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책,『권위주의 성격(The Authoritarian Personality)』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수백 명을 인터뷰하고 설문조사하며 분석한 결과,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권위에 대해 맹목적인 복종, 반면에 자기보다 약한 이들에 대해서는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와 별개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 1941』에서 인간이 자유를 견디지 못할 때 '권위주의 성격(Authoritarian Character)'이 발생한다고 통찰했다. 프롬은 '권위주의 성격(Authoritarian Character)'을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복종하고, 약한 자에게는 지배하려는 심리적 성향'이라고 정의했다. 프롬에 의하면, 권위주의 성격은 병든 사회가 만들어낸 “심리적 적응의 산물”이다(『The Sane Society, 1955)』). 주요 특징은 ①권위에의 맹목적 복종(submission to authority) ②권위에의 공격성(aggression toward the weak 약자를 향한 공격성) ③자동 기계적 순응(automaton conformity), 권위주의 성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나는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대로 나를 만드는 것이다."


프롬은, 사람들이 전체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성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자유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즉 현대사회는 개인에게 많은 자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소외와 고립감을 낳는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유”에서 오는 불확실성, 불안감 등 심리적 고통을 피하고자, 권위에 의존하고 추종하게 되고, 복종과 지배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며, 때로는 무소불위의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파시즘이나 독재 체제에 스스로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권위주의 성격 유형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며, 모호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안을 외부의 특정 집단(예: 이민자, 성소수자, 유색인종, 좌파 등)에게 전가하고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 수준이 아니라, 심리적 구조에 뿌리를 둔 성향이다.


권위주의 성격 성향의 뿌리


아도르노 연구진은 권위주의 성격이 주로 엄격하고 통제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릴 적 부모에게 꾸지람과 체벌을 자주 받고, 통제된 가정에서 자율성이 억압된 채 성장하면 그 내면에는 억눌린 분노와 불안이 쌓이게 된다. 하지만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다. 대신, 사회적으로 허용된 방식으로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투사’하게 된다. 즉, 강자에게 복종하고, 약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단순한 성장 과정의 습관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정치적 태도, 사회적 편견, 대인관계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2023년)에 따르면, "질문하는 학생보다 조용히 순응하는 학생이 더 높이 평가받는다". 또 기업문화 조사에서 "상사의 말을 절대 반박하지 않는다"에 응답률이 아시아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권위주의 성격은 개인의 태생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양육, 교육, 정치 문화 전반의 산물이라 하겠다.


권위주의 성격과 독재자의 상관관계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무의식적으로 억제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의 사실이다. 이때문에 사회적 위협(전쟁, 경제 불안, 테러 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강력한 지도자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Solomon, Greenberg & Pyszczynski (1991), 'Terror Management Theory and Political Preferences'). 권위주의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세상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울수록 ‘강력한 리더’를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 자유, 다양성, 복잡성은 모두 불안의 원인이다. 사회적 불평등, 실업, 문화적 혼란 등은 대중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반대로, 규율, 질서, 통제는 안전을 상징한다. 독재자는 권위주의 성격 성향이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 · 사회적 불안정과 보상 심리를 공략한다. 사회 공공질서, 안정, 보호를 약속하며 이러한 심리를 자극하는 이런 메시지는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게다가 인간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하게 해석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에 끌리는 것이다. 복잡성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세상을 선과 악,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분류하는 성향이 있다. 이를 '인지적 단순화와 이분법적 사고 (Cognitive Simplification & Binary Thinking)'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인생이 삶이 사회가 국가가 경제가 이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편안하고, 심지어 논리적으로 느껴지는데, 실제로 선과 악, 흑과 백, 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권위주의 성격과 독재자 담론은 서로 잘 어울린다. 독재자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특정(예: 부패한 엘리트, 부패 카르텔, 부패 기득권, 반국가세력)하고, "내가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지지를 얻는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국가, 민족, 정당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한다"(Tajfel & Turner, "Social Identity Theory In Psychology". 1979). 이들은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것보다, 지도자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더 편안하다. 그리고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 이들, 비판자, 소수자, 타문화인 등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마치 그들을 차별하고 배제함으로써 우리의 공공 질서를 지키고 있다는 도덕적 확신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에 더 많이 노출되고, 반대되는 정보는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독재자에게는 자신의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언론장악이 필수다. 독재자가 이끄는 사회의 특징은 철저히 관변화된 언론과 미디어의 주도하에 '선택적 노출과 정보의 왜곡 (Selective Exposure & Media Control)' 그리고 선전·선동이 만연한다.


"사이비 보수주의자는 '사이비 자유주의자' 또는 '사이비 진보주의자' 라고 단정할 수 있다.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과 매우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기득권 집단의 독재체제를 확립하고 구축하는 것이다." - T. W. 아도르노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 현실적인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소위 기득권 즉 부유층, 재벌, 기업가, 작가, 문인, 교육자, 종교인, 지식인, 등등 이들이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부역하고 동조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 이유는 기득권의 유지라는 이해관계(利害關係)에 있다. 독재자와 독재정권에 적극 협조하고 복종함으로써 그들이 현생에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이익과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작금의 부유층 기득권들은 십중팔구 친일 부역자들의 후손 그리고 2차에 걸친 군부 독재정권하에서 정경유착의 수혜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과 지위가 보장되고 기득권 유지가 계속되는 한, 누가 나라를 팔아먹든 나라가 망하든 하등 상관없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 십중팔구는 어떤 명목으로든 해외에 안전한 도피처를 마련해 두고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7~80년대 군부 독재정권 하에서 학생운동 혹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2000년대 이후 극좌에서 친일 변종극우로 돌변하여 자발적으로 민주화의 반대편에 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치판을 철새처럼 기웃거리다가 주류 기득권의 달콤한 맛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부유층은 그렇다할지라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왜? 독재자를 지지하고 옹호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2003년 미국 뉴욕대학의 심리학 및 정치학 교수인 존 조스트(Jost, J. T)와 그의 동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체제정당화 성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Jost, J. T., Pelham, B. W., Sheldon, O., & Sullivan, B. N. (2003). "Social inequality and the legitimation of the status quo."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연구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독재자를 지지하는 심리는 주로 경제적 불안과 구조적 무기력감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선할 수 없다는 통제력 상실감을 느끼며, 문제 해결을 외부 권위에 맡기려는 심리를 갖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체제조차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Jost & Banaji, 'System Justification Theory' 1994). 이를 '체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동기는 사람들이 사회적 가치, 고정관념, 심지어 자신을 억압하는 이념까지도 내면화한다(Jost & Banaji, 'System Justification Theory' 1994).


불에 데여봐야 불의 뜨거움을 아는 법


개인적으로 생각컨대 우리 사회의 경우,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독재자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군부 쿠테타와 군대의 5.18 학살 만행, 그리고 군부 독재의 압제를 직·간접적으로 체감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불에 데여봐야 불의 뜨거움을 아는 법이다. 그저 생존에 전전긍긍하는 자신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역사적 사건으로부터는 아무런 배움이나 교훈을 얻지 못한다. 현재 2030 세대들도 마찬가지다. 바른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부르제(Paul Bourget)


독재자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단순히 '무지해서'가 아니다. 심리적 안정, 정체성, 권위 추종, 사회 불안정, 기득권 유지, 생존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특히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독재자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인지 부조화'란, 자신의 생각, 신념,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있거나 모순이 있을 때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인지나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즉 결과적으로 독재자에 대한 자신의 선택이 실제로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가 드러나면 누구나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더욱 강화하고 합리화함으로써 내면의 심리적 불일치를 줄이거나 아예 그러한 감정을 잊기위해 자기 선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하면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고자 오히려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즉 자신의 잘못된 선택은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더욱 추종하고 더욱 지지하고 더욱 옹호하는 방향으로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를 강화함으로써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는 것이다. 만약 그 선택에 리베이트, 보상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면 해소의 노력은 더욱 심화된다.


우리 안에 상존하는 ‘작은 권위주의’


놀라운 건, 권위주의 성향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말 속에 담긴 규범 강박, 소위 꼰대의식, 권위 있는 직책에 있는 사람의 말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태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현한 사람을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SNS 댓글 문화, 등등 이 모두는 크고 작은 권위주의 성향의 발현이다. 결국 독재자를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경계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권위주의 성격’ 이론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거울 역할을 한다.


“실제로, 보통 사람은 평생 동안 진정으로 깊이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들의 정신 활동은 그저 진부한 표현을 입에 달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그저 들은 것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인류의 80% 이상이 단 하나의 독창적인 생각도 없이 살아간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전에 수천 명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헨리 루이스 멘켄('Minority Report' 1997)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특히 미국에서조차 트럼프와 같은 막가파식 파시스트 리더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윤건희 막장 무속 정권과 내란 정국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파시즘에 버금가는 권위주의적 정서가 자주 포착된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정서에서 특히 인터넷의 알고리즘은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만 연결시켜 주고, 다른 의견은 ‘불쾌함’, '불편함' 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심지어 언론과 미디어들은 온통 받아쓰고 베껴쓰는 기레기와 소설까지 쓰는 기더기 천지다. 이처럼 투명성이 제한되고 다양성이 불편해지는 환경은 권위주의 성향을 강화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 속에서 ‘권위주의 성격’ 이론은 더 이상 과거 역사 속에만 있는 이론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 우리 개인의 심리를 설명하는 살아있는 도구라 할 것이다.


나가면서


독재는 카리스마 있는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를 따르고, 정당화하고, 지지하고 옹호하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마음속의 작은 불안과 억압, 그리고 그것을 외부로 투사하고 전가하려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권위주의 성격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가?, 아니면 그 판단을 그 결정을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라는가?”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순간, 우리는 독재에 대한 첫 번째 예방 백신을 맞게 되는지도 모른다.(20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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