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도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선택 자체가 아니라 특정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믿음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다는 믿음으로부터 선택 행위를 분리할 수 있다" -Petter Johansson. et al.,( 'Choice Blindness and Preference Change'. 2013)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무엇을 입을지, 어떤 커피를 마실지, 누구를 지지할지, 어떤 상품을 구매할지 결정한다. 우리는 이 선택들이 ‘내 의지’에 따른 결과라고 굳게 믿는다. 또 선호도가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항상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록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이 바람직하거나 옳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때로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닐 때에도 말이다.
심리학은 이러한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한될 수 있으며, 때때로 선택이 선호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을 자기가 선택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바로 ‘선택맹(choice blindness)’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밝혀내었다.
선택맹(選擇盲)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음에도 그것을 얻었다고 착각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결과를 자기 선택으로 믿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의사결정이 객관적 판단이 아닌 주관적 해석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심리 현상이다. 이 개념은 ‘변화맹(change blindness)’, 즉 시각적으로 주변의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과 깊이 관련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인간의 인지 시스템이 외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조작과 변형이 가해진 전혀 다른 결과조차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오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잘못된 선택을 설명할 때조차 우리는 논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선택맹'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것은 스웨덴의 심리학자 피터 요한슨의 실험(Petter Johansson. et al., 'Choice Blindness and Preference Change'. 2013)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두 장의 얼굴 사진 중 더 매력적인 사람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 후 실험자는 참가자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사진으로 슬쩍 바꾸어 보여주면서, “왜 이 사람을 골랐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사진이 바뀌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얼굴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 설명했다. “미소가 따뜻해서”, “눈이 인상 깊어서” 같은 표현들은, 그들이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처음 본 얼굴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한 실험에서 조작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을 때, 참가자들이 제공한 설명의 질이나 깊이에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결과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자신의 선택을 잘못 기억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즉, 우리가 내린 선택이 실제 선택과 다를 때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애초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거짓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택맹 현상은 우리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설명을 꾸며내는 데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선택맹은 실험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 선택들에서도 이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애인이나 배우자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은 인상, 따뜻하고 좋은 성격 또는 자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아서요.” 하지만 실제 연인은 좋은 성격, 자상함이나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는 외모, 키, 신체, 성적 이끌림 등의 육체적 · 성적매력 또는 재산, 직업 등의 경제적 능력이 그 선택의 배후에 있다. 이처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처음 선택의 이유를 왜곡하거나 새롭게 구성한다. 또 상품을 구매할 때 실용성과 가격, 브랜드의 품질과 기능을 고려해 구매하려 했지만, 결국 디자인이 예뻐서 충동구매하고 “기능도 괜찮더라”는 식으로 구매 후 이유를 정당화한다.
선택맹은 단순한 착각을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서 몇가지 허점을 드러낸다. 첫째, 자기 인식의 한계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보다 덜 알고 있으며, 자신이 한 선택조차 명확하게 기억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미 내려진 결과에 대해 ‘이유’를 나중에 만들어낸다. 둘째, 자유 의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부분 우리가 바라는 것 혹은 환상일 수 있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한 선택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많은 경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쩌면 인지조차 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심리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아"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지조차도 우리의 인식으로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선택맹 실험은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눈으로 보는 것에 더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사후 합리화의 심리 메커니즘의 작동이다. 비록 무의식적 선택이나 충동적 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우리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합리적인 설명을 만들어낸다. 이는 종종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기 기만(self-deception)에 가깝다. 넷째, 생각의 유연성이다. 선택맹은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이 실제로는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역설적으로 생각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며, 삶을 더 가볍고 더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긍정적인 시사점도 있다.
선택맹과 유사한 심리 현상들은, 시각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인 '변화맹(Change Blindness)',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충돌할 때 생기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믿음이나 행동을 바꾸는 현상인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흔히 "어림짐작", "추단법" 등으로 번역되는 '휴리스틱(heuristics)' 등이 있다. 휴리스틱은 제한된 시간이나 정보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울 때, 혹은 체계적인 판단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때, 경험이나 직관에 기반하여 신속하게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을 말한다.
현실에서 선택맹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는 범죄수사에서 사건 목격자의 증언이다. 목격자의 증언은 기억의 재구성이기 때문에 ‘눈으로 봤다’고 해서 반드시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자칫하면 선택맹 및 변화맹으로 인해 중요한 정보를 왜곡하거나 놓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치적 선택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한 뒤, 후에 정강 정책, 인물의 정치적 역량이나 인격 등으로 나름 선택의 근거를 찾아내지만, 실제 결정은 이해관계, 이미지, 외모, 감성, 분위기 같은 비이성적 요인에 기초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 행태에서 브랜드, 포장, 색상, 음악 등 감각 자극이 소비자의 무의식적 선택에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품 구매 후 이를 이성적인 판단인 양 포장하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선택맹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익이나 보상 등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선택과 결정에 눈이 머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두고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한다(莊子장자, 산목편).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 모습’을 가리킨다. 비록 양상은 다를지라도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적 정치적 거짓말은 자신의 선택이 정당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후(事後)에 만들어진다. 여담으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쳐라."라는 논어의 글을 유묵(遺墨)으로 남겼다.
선택맹은 단순한 인지적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허약한 인지적 기반 위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선택과 자아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정확성만이 아니라, 그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다. 진정한 자기 인식은 실수를 인정하고,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과 정직함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우리가 명시적으로 옹호하는 수많은 선택과 도덕적 주장은 우리 머릿속의 생각,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관찰,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복잡한 조합에서 필요에 따라서만 추론될 수 있다. 각설하고, “나는 왜 이것을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 그것이 선택맹을 넘어서는 첫걸음일 것이다.(202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