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구원받는다는 것 - 미키17

무수히 많은 나와 대화할 수 있다면,

by 자유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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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미키17을 봤다.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 해서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역시 '봉준호는 봉준호다' 싶다. 어쩌면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졌을까.


내용을 제외하고 쭉 영화를 보면서 자극된 지점은 '내가 나에게 구원받는'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미키들은 실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미키는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성격이 달랐을까였는데. 다른 리뷰를 보면 같은 기억을 가진 인간이더라도 결국은 영혼이 다른 인간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좀 다른 관점에서 내 안의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함으로 인지했다. 완벽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들 역시 내 안에 존재하던 것들이라고.


수직적 계급을 앞세워 복종이랄까, 수용하던 17번 미키가. 마지막 상념에서 "18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생각하는 장면에서 그렇게 확신이 들었다. 또 다른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니. 18번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인해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고, 17번 미키도 오래도록 자신을 속박했던 '관념'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18번 미키는 히어로에 가깝다. 그런데 그게 같은 나라니. 얼마나 든든한가.



인간은 모든 능력을 이미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걸 제한하는 것도 본인이다.




내 안에는 다양한 내가 있다.

용기와, 단단한 철학과 신념으로 무장한 히어로 같은 내가 분명 있지만, 내가 오래도록 갖고 있던 부정적인 관념 혹은 그 당시엔 해결하지 못했던 어떤 경험을 통해 몸에 새겨진 기억들 또한 나 스스로를 재단하게 만든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이며, 나는 늘 그러하며, 나는 너무 작다고. 그런데 원래 내가 가졌던 본성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내 안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실현할 '나'들이 무수히 많다. 중요한 건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릴지에 대한 선택에 문제이다. 인간의 눈은 두 가지 초점을 둘 수 없다. 긍정이냐 부정이냐 늘 선택에 기로에 서고 만다.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 당연히 겁을 집어먹고 마는 게 우리들이지만, 이때 조금의 용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스스로의 용기 혹은 외부의 조력이 있다면 얼마든 다른 내가 히어로처럼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만다. 그리고 우린 말하지 "와 내가 해냈구나". 그런 차원에서 미키17은 현실 보다 현실 같은 사실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었지만 결국 내가 나에게 구원받는 결말 역시 사실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모든 면의 리얼리즘 영화로 느껴졌었다. 내겐

인상 깊었던 장면의 디테일

내가 나와 대화한다는 자체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런 내가 두 명이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아마도 영화에서 원래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 복제의 도덕적 문제라던지 앞으로 대두될 수 있을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겠지만. 다 제쳐두고 나와 대화를 하는 장면은 참으로 부러웠다. 내가 하나 더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싶었던. 물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제외하고 그 외에 내 존재를 둘로 나누는 건 싫지만 말이다. 어떤 인간도 둘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이 둘이 되었다는 설정에 있어 디테일이 미쳤다 싶었던 건. 초반 사이코패스 살인마 과학자가 자신을 여럿으로 만들 때 이제 막 프린트된 자신의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었다. 내 냄새를 직접 맡아본 사람도 이 세상에 없다. 어마어마한 디테일이라 생각되었다. 영화 내내 귀를 자극했던 클래식한 음악이며, 편집 방식이며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역시 봉준호다. 개인적으로는 '나와의 대화, 그리고 나에 의한 구원'이라는 포인트를 던져준 고마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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