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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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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칼랭 Jul 06. 2021

나는 무엇을 위해 웃고 있나

# 의미 있는 미소



겨울이었다.


'나이'라는 것을 숫자로 기억하게 만드는 12월 마지막 주였다.

그날 좋아하던 후배가 서른 살이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 뭘 해도 심심해요. 뭘 해도 재미없어."


후배는 이 말을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어떤 위로도 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한다면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런 불평을 농담처럼 여겼다.




그날 저녁, 나는 사랑하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이제 마흔이라는 나이 앞에 서 있었다.  


"어때? 마흔이 되는 심정은?"


내 질문에 선배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응... 뭘 해도 힘들어. 아니, 아무것도 안 해도 힘들어."


대답을 뱉어낸 선배의 표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웃었다.


나는 그날 선배가 보여준 미소의 의미를 알고 있다.

혹시라도 힘들다는 말에 걱정할까 봐, '걱정하지 마'라고 덧붙여 준 다정한 미소였다.


 "언니 언니 언니"


라고 부르면 선배는 이렇게 대답해줬다.


 "밥 사줄까?"


내가 아무 대답이 없으면 다시 물어주었다.


 "술 사줄까?"


우리는 서로의 슬픈 이야기를 너무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떠벌리지 않았다.


선배는 긴 세월 동안 나를 향해 그렇게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웃음은 가끔 나에게 성경처럼 거룩하다가도 국밥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내 삶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또 거기 그 선배가 있다.


그녀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건 미소였다.

너무도 긴 세월 동안 나를 향해 웃어주던 그 미소.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선배는 알지 못한다.




며칠 전 후배가 찾아와 커피를 사달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술을 사줘야 하는 건 아닐까 했지만, 후배는 단호하게 말했다.


"술 먹으면 울 것 같아서 안 먹을래."


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독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힘들게 꺼내놓은 말은 놀랍게도 피식, 웃음이 새는 질문이었다.


"언니. 내 웃음이 헤퍼 보여?"

"이건 또 무슨 장르야. 로맨스야, 코미디야?"

"......"

"..... 그럼 혹시 시사다큐 같은 거야?"

"응."


잠깐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왜 누가.. 너 웃음이 헤프다고 했어?"


후배는 술도 먹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슬픈 눈물이라기보다는 억울한 눈물이었다.


"나는 그냥 웃는 건데. 내가 웃는 게 싫은가 봐."

"도대체 누가?"

"같이 일하는 우리 팀 선배 작가님이. 내가 게스트한테 웃는 게 꼬리 치는 거 같다고 하고. 그렇게 헤프게 웃는 게 피디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 같다고."

"....?"




후배의 고민은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웃음'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남아 있는 - 아주 어렸을 때부터 - 엄마는 나에게 '웃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덧붙였다.


"넌 안 웃으면 화난 것 같이 보이니까 웃어야 돼. 웃어."


엄마 요구가 있을 때마다 입꼬리에 힘을 주었고, 엄마는 나를 칭찬했다.


"그래. 웃으니까 이렇게 예쁘잖아."


성장하면서 나는 웃지 않는 순간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도 했다.

집중할 때, 원고를 쓸 때, 집안일을 할 때 무표정해지는 순간, 나의 표정을 점검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화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런 식의 은근한 스트레스는 오로지 나만의 비밀이었는데 혹시 진짜로 누가 묻는다면 화를 냈을 수도 있다. '나 화난 거 아니야. 그냥 힘들어서 그래. 난 꼭 웃어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웃음에 대한 강박은 관계 안에서 때론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 역시 방송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게스트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였고 선후배들에게 웃음을 섞어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를 '인상 좋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웃으려고 애쓰는 나를 향해 질투하는 시선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인생 고민이 없는 여자'라는 식으로 대하기도 했다.


멍하게 생각에 잠겨 무표정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다고 조바심을 내다가도 '나 원래 얼굴이 이래. 멍 때리는 거야. 화난 거 아니야.'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는 의심.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절로 미소가 쏟아지는 오후 햇살 같은 존재는 될 수 없었다는 사실.  


어쩌면 나는 너무 자주 절망하고, 쉽게 좌절했다가, 힘들게 회복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에겐 미소가 애쓰고 노력해, 뒤집어써야 하는 '마스크' 같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찾아, 오늘도 부족한 미소를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다는 것을.




'장 튈레' 소설 <자살가게>



웃음의 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프랑스 작가 '장 튈레'의 소설 <자살가게>다.


이 소설은 가문 대대로 자살 용품만을 판매해 온 한 상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튀바슈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자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제품을 창의력 있게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이런 것이었다.


- '목매다는 밧줄', '동맥절단용 면도날', '할복자살용 단도', '총', '독 묻은 사과', '투신하기 위해 매다는 시멘트 덩어리'와 같은 고전적 제품은 물론 '만지기만 해도 되는 독약'이라든가 '달콤한 죽음의 키스'까지 상상 이상의 제품으로 다양했다.



  "자 독약이라.. 그래 어떤 걸로 권해드릴까? 만지는 거- 글자 그대로 만지면 죽습니다- 흡입하는 거, 먹는 거 이렇게 있는데요..."

 

  무척 의외의 질문인 듯, 손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더듬댄다.


 "어.. 글쎄요. 어떤 게 제일 좋은가요?"

 "만지는 게 제일 신속하죠! 산으로는 '푸른 뱀장어'가 있고 독으로는 '황금 개구리', '저녁별', '요정의 재앙', '치명적인 서릿발', '잿빛 공포', '해리성 기름', '메기' 등등이 있는데요. 근데 이가 다가 아닙니다. 일부 품목은 신선고에 따로 보관되어 있으니까요."


 - '장 튈레' <자살가게> 중에서


손님의 상황과 나이에 맞게 자살하기 좋은 제품을 설명하는 친절한 상점 주인은 부부였다. 이들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집안의 분위기를 잘 물려받아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은 막내아들 때문이었다.

 

자살가게와 어울리지 않게, 막내아들 알랑은 태어날 때부터 '웃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달리, 심지어 형, 누나와도 달리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엄마가 비관적인 인생을 가르쳐도 알랑은 이해하지 못했다.



얘기를 듣는 중 흥미를 느꼈는지 손님이 알랑에게 다가간다.

 "여기 이 아이인가요?...."


순간 아이는 금발의 곱슬머리가 찰랑한 얼굴을 돌려 여자를 쳐다본다. 가만 보니 넓적한 반창고가 아이의 입을 완전히 봉하고 있다. 분홍빛 표면에는 아주 심술궂게 생긴 입술과 그 새로 날름 내민 혀가 사인펜으로 그려져 있는데, 아래로 축 처진 모양새가 몹시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모래 상인' 약병을 포장지에 싸면서 아이의 엄마가 사정을 설명해 준다.


 "그 애 형인 뱅상이 그려 넣은 거랍니다. 혀 내미는 얼굴로 만들어 놓는 데 난 그다지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툭하면 삶이 아름답다며 웃어젖히는 소리 듣는 것보단 그 편히 훨씬 낫더군요...."


  - '장 튈레' <자살가게> 중에서



삶이 아름답다고 웃어젖히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입을 막아버린 가족. 자살하고 싶은 세상을 강조해야 장사가 잘 될 텐데, 아이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장사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하지만 알랑의 미소는 끝이 없었고 가족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한 사람씩. 달라지고 있었다.


절망에 빠져있는 아버지에게 '기분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는 다정한 막내아들이 죽을 위기에 놓인 누나까지 살려냈을 때. 알랑의 존재는 달라졌다.


그리고 결국 엄마는 잠든 알랑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날이면 날마다 인간의 머리를 꿈으로 가득 채우는 이 어린 소년은 세상 만물을 기분 좋게 적시며 졸졸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과도 과도 같다. 그는 우리를 미증유의 신천지로 이끄는 저 아름다운 수평선과도 닮았다. 두 발은 이불속에서조차 모험 충만한 경주를 하듯 뒤척이는데, 방에 가득한 이 향기는...... 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상큼한 향기다. 그의 잠은 기발한 발상이 톡톡 튀는 기적과 같은 현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이 틀림없다."


  - '장 튈레' <자살가게> 중에서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긍정적인 희망으로 바꾸려고 작정하듯 태어났던 막내아들 알랑.

저자는 이것을 '알랑의 임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웃음이 우리에게 어떤 임무가 될 수 있다면 이런 것은 아닐까.


- 나의 삶을 보다 긍정적인 세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도구로

- 절망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선물로

-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가도 '다시 할 수 있어'라고 외칠 수 있는 에너지로

  

그날 후배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네가 웃을 때 너무 좋아. 괜히 행복해져. 아마 그 선배는 너를 질투하는 걸 거야. 네가 웃는 게 너무 예뻐서. 쓸데없는 말에 우는 건, 너 눈물이 아깝다. 그러니까 빨리 웃어줘.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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