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감 넘치는 자습 시간
자습시간이다.
각자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다 시작되는 자습.
평소와 다름없이 운동을 하고 벌게진 얼굴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부터 당일 배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기다리는 학생, 집에 있는 아이들 숙제나 업무 처리 때문에 휴대폰을 부여잡고 잔뜩 찌푸린 미간 주름이 모든 걸 말해주는 학생들이 앉아 있다.
먼저 고민이 많았던 학생이 교재를 들고 나에게로 걸어온다.
“ 선생님, 이 문장에는 왜 이 문법이 어울리지 않아요?” 문법 질문은 다소 딱딱해지기 쉬우므로 최대한 질문자를 예문으로 들어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이해시킨다. 그래야 가뜩이나 경직되어 있는 학생의 몸과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
가끔 중국에 없는 문법, 예를 들어 ‘조사 -은/는 , -이/가를 학습하고 괜한 억지를 부리며 이해하려 들지 않고 반문만 반복할 때가 있다. 나는 팽팽한 긴장감에 휩쓸려 감정이 동요되지 않도록 애를 쓸 때가 있다.
세상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다른 나라 조사를 처음 접하니 당황할 만도 하다. 단지 학생 개인의 표현 정도 차이일 뿐.
그래도 질문을 해주는 학생이 있고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하다.
문법 질문하던 학생이 드디어 환하게 웃으며 깊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더니 자리로 돌아간다.
갑자기 시큼시큼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있다. 냄새의 농도는 점점 더해갔다.
하수구 냄새?
퇴비 냄새?
참기 힘든 냄새가 났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 아, 취. 두. 부다! “
양손 힘껏 코를 부여잡고 외쳤다.
“ 어! 이거 취두부 아니에요? “
중국 친구들은 취두부에 대한 이런 반응을 유난히 즐긴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취두부 한 그릇 가득 들고 들어오는 개발부 대리 K학생, 그의 발걸음은 어찌나 가볍고 경쾌해 보이던지…
우리는 평소 그 남학생을 ’重口味쭝커우웨이‘라고 부른다.
’重口味쭝커우웨이‘ (강한 맛)
-> 자극적인 맛을 애정하는 ’ 극강맛 덕후‘
개발부라서 도전 의식과 탐구심이 유난히 강하다는 게 학생 다수의 의견인데 회식을 하거나 평소 가져온 간식을 먹는 모습만 봐도 예사롭지는 않다.
‘취두부’는 우리의 청국장과 비슷한 ‘발효‘ 시킨 두부라서 냄새가 고약하다. 이 두부를 탁한 갈색을 띤 기름에 바짝 튀겨, 식초•설탕 등을 넣고 절인 고추와 파, 갖가지 조미료들을 넣어 만든 ’ 다진 양념’ 비슷한 느낌의 양념을 얹어 먹는 것으로 겉은 바삭하고 두부 속은 탱글탱글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화룡정점!
그것은 바로 ‘고수‘.
고수 ‘香菜샹차이’라고 하는 채소는 베트남 쌀국수나 태국 음식 등 동남아 음식에서도 빠질 수 없는 향채다. 향수 한 병을 전부 부어 넣은 듯한 강렬한 첫인상으로 진입장벽 ‘최상’이지만 이 맛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독보적인 맛을 지녔다.
나의 ‘고수 입문기’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면 내 자리까지 아직 서빙되지도 않은 음식 안에 섞인 그 냄새가 공기 중에 나의 민감한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고수’였다.
학생 K는 해맑으면서도 짓궂은 표정으로 취두부 하나를 들어 내 입으로 직행,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피했고 학생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직관하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날 자습 시간은 취두부를 어떻게든 먹이려는 자와 결코 먹지 않겠다는 자의 추격전으로 뜨거웠다.
이후 회식 자리에 갈 때면 ‘취두부와 고수’는 빠지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나를 진짜 중국인 만들기 프로젝트에 열을 올렸다.
취두부와 고수를 먹지 않으면 진정한 중국인이 아니라고 외치던 그들.
사실 우리나라 미나리와 같은 향채들은 중국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어 고수를 싫어하는 현지인들도 있다.
나를 단지 외국인이 아닌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소소한 일상도 같이 나누고 싶어 하던 정 많은 학생들.
타국에서 때로는 가족 같은, 때로는 친구 같은 그들과 즐거운 자습이 이어진다.
“여러분 , 취두부는 노노! “
“자자, 진정하시고, 자습시작!”
학생들의 염원이었던 취두부는 아직까지 불호로 선호하진 않지만 쌀국수나 중국식(火锅훠궈) 샤부샤부를 먹을 때는 양념장에 ‘고수’를 왕창 넣어 먹고 ‘고수초무침’을 즐겨 먹는 ‘고수러버’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