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 햄버거 편 -
지난 두 달간 나의 저녁 메뉴는 햄버거였다.
6월 부터 한 달 반 동안 월, 수, 금 7시에 포토샵 학원을 다녔다.
저녁 7시~10시 수업을 버티기 위해선 저녁을 꼭 먹고 가야 했다.
1시간 반 동안 시간 안에 포토샵 자격증 모의시험 4문제를 풀어내고,
나머지 시간엔 피드백&일러스트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필요로 하는 과정이었다.
집에서 밥을 먹고 갔던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낮에 다른 스케줄을 하다 학원에 갔다.
학원을 다니면서 저녁을 챙겨 먹을 때는 메뉴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빨리 나오고, 탄단지 비율이 적당하며, 맛이 있어야 한다.
과연 햄버거만 한 선택지가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10번 중 9번은 햄버거로 저녁을 때웠다.
평생 햄버거를 먹어왔지만,
지난 2달간의 햄버거 디너 라이프를 통해 나의 취향이 확고해져 갔다.
그러나 이때까진 나의 인생 버거를 찾지는 못했다.
그저 여기 갈 바에 저기 가지 하는 식의 우선순위만 적립됐을 뿐.
나의 인생 버거는 우연처럼 다가왔다.
사우나 뺨치게 습하고 덥던 금요일 밤,
낮에 방을 보러 다니고 잠실 교보문고에서 책 3권을 고르니 배가 출출해졌다.
이럴 때 나의 선택지는 언제나 햄버거다.
빠르고, 맛있고, 탄단지 비율 좋은.
바로 맞은편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롯데리아가 있어 별 고민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롯데리아'는 참 오랜만이었다.
포토샵 학원 근처에는 맥도날드, 버거킹, 맘스터치만 있어서 이 셋 중 한 곳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었다.
이곳은 특이하게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하고 햄버거가 나오면 직접 결제하는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이 생소했던 나는 결제도 안 했는데 주문이 들어가니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시스템 오류로 자동으로 주문 들어간 거 아니야?'
하지만 이내 결제는 햄버거가 나오면 카운터에서 직접 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그럼 그렇지.'
전광판에 327번 제품이 준비됐다는 문구를 보고, 햄버거를 가지러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속에서 0.3초간 고민했다.
'이거 그냥 들고 가도 되는 거 아니야?'
그때 아르바이트 생이 등장했다.
'휴...'
롯데리아는 짧은 순간에 양심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장발장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었다.
자리에 돌아오고 햄버거를 먹기 전, 나는 먼저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팔차선'의 롤토체스 게임 영상이었다.
본래 내향적인 성격과 다르게 방송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하는 유튜버다.
게다가 중요할 때 승부사 기질도 있어서 보는 맛이 있다.
먼저 콜라로 목을 축이고, 햄버거를 뜯었다.
햄버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불고기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꼬르륵 소리를 내며 음식이 들어오지 않을 시,
근육 생산 노동을 즉시 중단하겠다며 으름장을 내놓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는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팔차선 유튜브를 응시하고 있던 눈이 햄버거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입에서 일어난 인지부조화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물었는데, 입에서는 1인 분에 3만 원씩 하는 광양 불고기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햄버거가 이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안경은 불고기가 내뿜는 가쁜 숨에 가려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씹을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거다... 이거야 말로 내 인생 버거다..!'
롯데리아 불고기 4DX는 한국의 맛을 제대로 살린 햄버거다.
쉑쉑 버거나 다운타우너와 같은 수제버거들도 많이 먹어봤지만,
대중적이면서 한국적인 이 햄버거는 정말 특별하다.
불고기엔 진심인 롯데리아가 제대로 된 불고기 버거를 만들어냈다.
그림에서 보듯이 패티에 진짜 직화 불고기가 들어가 있다.
고기도 부드럽다. 앞니로 절단되지 않고 고기가 끌려 나와 지저분하게 먹어야 하는 참사를 예방한다.
숯불향도 제대로 살렸다.
한국 특유의 습하고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며 고생한 탓이었을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더위에 달아난 입맛 찾아오는데도 도움이 될 거 같다.
가격은 조금 비싸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사실 요즘 어느 햄버거 가게를 들어가든 가격이 고만고만하다.
이 햄버거 똑같이 만들어서 다운타우너 가서 팔면 15,000원은 받을 거 같다.
감자튀김엔 트러플 오일 들어가 있긴 하겠지만.
1. 롯데리아
아직까진 롯데리아 버거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설사 맛있게 먹었더라도 애써 부정하는 사람들이 존재 하지만, 이제는 인정할 때가 왔다. 롯데리아 나쁘지 않다. 이번에 먹은 불고기 4DX 버거도 훌룡하지만, 예전에 아재(A-Z) 버거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롯데리아만큼 신메뉴 잘 뽑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별로 없다.
나는 감자튀김 부문에서도 롯데리아를 높게 평가한다. 맘스터치 감자튀김은 너무 짜고, 버거킹이랑 KFC 감자튀김은 먹으면 입천장 까진다. 나는 그냥 평범한 감자튀김이 좋다. 좀 심심하다 싶으면 어렸을 때 흔들어 먹던 양념 감자로 시키면 된다. 롯데리아 양념감자와 팥빙수에는 어렸을 적 향수가 담겨있다.
2. 맘스터치
맘스터치 버거를 먹으면 왠지 한 끼 식사 단백질을 다 채운 기분이 든다. 치킨 패티에 계란 후라이까지 들어가 있다. 싸이 버거와 인크레더블 버거를 제일 좋아한다. 갈릭소스가 들어간 버거는 가끔 너무 느끼할 때가 있다. 맘스터치 감자튀김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불호다. 너무 자극적이다. 자주 먹기엔 무리가 있다.
3. 버거킹
무난하게 먹기 좋지만, 와퍼 종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이벤트는 자주 해서 좋다. 1+1 행사를 보면 한 개 먹을 것도 2~3개 사서 집에 가지고 가게 된다. 가끔 새우가 들어간 버거가 먹고 싶을 때 간다. 새우 알 하나는 튼실하다. 얼마 전 수제 피자집에 가서 쉬림프 토핑을 추가했는데, 새끼손톱만 한 새우가 뿌려져 있는 걸 보고 크게 실망했다. 새우에 진심인 나에게 이런 장난질은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을 사유로 충분하다.
4. 맥도날드
최근 맥도날드에 가 본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낀 게 있을 거다. 햄버거 포장지를 뜯으면 웬 중학교 매점에서 팔 거 같은 햄버거가 들어있다. 양상추 수급 문제가 1년 내내 진행되고 있나 보다. 예전에는 상스치콤을 자주 먹었었는데, 요즘에는 왠지 이 버거를 먹으면 속이 영 안 좋다. 맵고 짠 정크푸드를 먹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감자튀김이랑 소프트콘은 아직까지 괜찮은 거 같다.
5. KFC
어렸을 때 KFC는 특정 지역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버거였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이색적이었다. 나이가 들고나서 KFC의 환상의 망토를 벗겨버린 순간 속에 남은 건 짜고 자극적인 치킨 패티뿐이었다. 최근에 세종대 앞에 있는 KFC에 방문했을 때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침착맨도 KFC에 한 마디 하지 않았는가. 고소하려면 KFC 법무팀에서도 이 치킨 먹어보고 오라고 ㅋㅋㅋㅋ
맥도날드와 KFC의 최근 인상은 뭐랄까 성의 없는 느낌이 든다. 이 가격에 이 정도 챙겨주는 거면 우리 할 도리는 다 한거라고. 이 거대한 두 개의 공룡이 쓰러져 가면서 꾸준하게 유지하게 품질 유지하던 롯데리아의 입지가 자연스레 늘어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