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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착서점 Oct 12. 2022

Intern story that I can't tell

9월 취준 일기

SK플래닛에서의 첫 달은 왠지 길게 느껴졌다.


원래 같으면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며 바쁘게 살다 보면 빠르게 느껴지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나는 왠지 한 달만에 이곳이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 한 달 동안 나름 많은 것을 해왔다. 금융사 이벤트 배너 제작도 해보고, SK 그룹 데이터를 활용해 타겟팅 모수 추출도 해왔다. 판교라는 도시가 점점 익숙해졌고, 아침 출근길은 눈감고도 올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매니저님은 나한테 "매니저님은 제가 입사할 때부터 계속 있던 분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금 나의 짬 바이브는 한 달 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다. 그만큼 빠르게 업무와 문화에 적응했고, 사람들과도 둥글둥글 어울러 지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곳에서의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자소서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 일에만 치중했다. 자소서는 거들떠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10월이 되고 기업 공채와 수시채용 공고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인턴 기간 동안 경험한 '금융사 이벤트 배너 제작 사례'를 맛있어 보이게 포장한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만큼은 이런 가공된 포장용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난 한 달간 SK 플래닛에서 있었던 날 것 그대로의 기억들을 온전히 남겨두고 싶다.




우리 팀 매니저님들은 업무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가 좋으신 분들이다. 매니저님들이랑 같이 가락시장에 가서 회에 소주 한 잔 마실 때도 끝까지 막내인 나를 배려해주시는 게 느껴졌다. 술이 들어가다 보면 흐트러진 본모습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끝까지 배려해주신 모습이 감사하고 한편으론 대단해 보였다.


특히 JJ매니저님에게는 업무적인 면뿐만 아니라 일상 매너도 배울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면 항상 벽에 붙어 <> 버튼을 꾹 누르고 계신다. 그리고 내리실 때도 마지막까지 남아 <> 버튼을 누르고 계신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서도 물을 마실 때면 본인 컵만 챙기는 게 아니라 먼저 가서 컵을 꺼내 쥐어주신다.



JJ 매니저님은 두 아이의 아빠다. 주말에는 경기도 외각으로 놀러 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평일 아침엔 종종 녹색 어머니회도 나가신다.


한 번은 주말 내내 아이들과 물놀이를 다녀오신 후 저녁에 집에 도착했는데, 처가 쪽 장례식이 갑자기 생겨 집에 오시자마자 다시 장례시장으로 가셨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12시가 넘어 있었는데, 커피 한 모금 쭉 들이키시고 물놀이로 젖은 빨래들을 들고 코인 빨래방에 가 건조기까지 돌리신 후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월요일에 주말 잘 보내셨나는 나의 질문에 간략하게 위의 과정들을 담담하게 말씀해 주셨다.


과연 내가 나중에 아버지가 된다면 이런 남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챙겨야 될 가족들이 많아지고, 그 책임감은 현재로선 상상도 못 할 정도이다. 마음만은 굴뚝같지만 과연 내가 똑같이 할 수 있는 여유와 체력이 받쳐줄까? 한 남자로서도 존경하고 싶은 인물이다.


JJ매니저님께서 우리 인턴들을 너무나 잘 챙겨주셨다. 맛있는 밥도 자주 사주시고, 외부 미팅에 데려가기도 하시고, 가서 은사님께 같이 찾아뵙기도 했다. 구로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다. 이런 감사한 마음에 첫 월급을 받고 JJ 매니저님과 JW 매니저님께 이솝 핸드워시를 선물해드렸다. 받은 거에 비해 한참 부족한 선물이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의 존경과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다음날 JJ 매니저님께서는 와이프 분께서 선물을 열어보고 굉장히 좋아해 주셨다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선물은 역시 돈 주고 사긴 아깝지만 쓰면 좋은 아이템이 괜찮은 거 같다.




앞에 이야기는 자소서에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어떤 업무적인 경험보다도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존경과 감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늦여름에 카라티 한 장 걸치고 출근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덧 옷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이제 이곳에서의 여정을 정리해야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다시 워드 파일을 열어 포장 작업을 하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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