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취준 일기
지난달 취준 일기 마지막 줄에
8월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적었다.
막막했고,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8월이 다 지나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현시점에 나는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8월에 과연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첫 번째로 이사를 했다.
독립과 관련된 글은 이전 글에서 다뤘으니 간략하게만 설명해보자면,
나는 8월에 갑작스럽게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지금 이곳에 들어오고 싶단 생각은 있었는데,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에 마침 매물이 나와, 일사천리로 계약을 맺었다.
이 집은 직방에 매물이 올라오자마자 5명이 달려들어 부동산에 전화가 올 정도로 치열했는데,
내가 ASAP(as soon as possible) 계약할 수 있다고 강력 어필하며 택시를 잡고 부동산에 가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따낸 계약이다.
8월에 갑작스럽게 독립을 할 거라고는 지난달의 나조차도 몰랐다.
친구들이 물어봤다.
왜 갑자기 독립했어?
나만 알고 있는 속사정이 있긴 하지만, 구구절절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저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에 좋은 매물이 나와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라고.
이사 후 나의 삶은 110도 정도 바뀌었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고, 친구들을 집에 자주 초대하고, 살림을 하게 되었다.
볕이 잘 들어서 그런지 주말에도 7시 30분에 눈이 떠진다. 더 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강제로 일찍 일어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나는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모르지. 언젠가 월세에 허덕이며 압박을 느끼는 날이 올지도.
그러니 지금을 더 온전히 즐길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인턴을 시작했다.
대기업 계열사의 디지털 마케팅 직무이다.
이 기회 역시 지난달까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
지금까지 지원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의 브랜드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만약 인턴을 시작한다고 해도 내가 그동안 지원했던 기업 중 한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계획 대로 되지 않았다. 7월 취준 일기에서도 언급했던 책 '될 일은 된다'에서는
'인생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라고 말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새롭게 피어올라오는 일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이번 인턴십은 과거 폐업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지원할 수 있었다.
이 공고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이거 딱 나를 위한 공고잖아?
하루 만에 나의 에코백 사업과 벙글이 마스크 스티커 사업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녹여내고,
필요 서류들을 뽑았다.
(폐업 증빙과 세금 관련된 자료 등 7개 정도의 서류가 필요했다)
서류 합격 발표가 나고 바로 다음 날 면접이 잡혔다.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했다.
하루 동안 모든 걸 쏟아서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면접 전날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다.
집에만 있어서 그런가 답답해서 잠깐 공원에서 걷고 와야겠다 싶어 나갔는데,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도저히 면접 준비를 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이번 기회도 못 잡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게 뻔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면접 당일이 되었는데도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면접에서 준비가 안돼 미흡했던 점들이 있었고 심지어 절었다.
끝나고 난 후 자포자기 심정으로 맨바닥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아, 나 이제 어떡하지?
이젠 월세도 내야 하는데...
합격자 발표날,
공지가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알 수 없는 접근입니다'란 에러만 떴다.
'불합격자들은 조회도 못하는 건가?'
확정이 나진 않았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잡다한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찰나
문자가 한 통 왔다.
"디지털 마케팅 인턴 과정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내일 중으로 채용검진 실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울분이 터져 소리를 질렀다.
"됐다."
"됐다!!!"
"xx 됐다!!!"
자취방에서 미친놈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그간의 고민과 압박에 짓눌린 몸이 비로소 자유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비록 인턴이지만, 사업 같이 추상적인 경험이 아니라
인증이 가능한 구체적인 산물로 나타낼 수 있는 합격 발표였다.
살면서 숱한 탈락들을 경험하며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가장 떨어져 있을 때, 행운이 찾아왔다.
'행운'이란 단어 말고는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저 감사했다.
채용검진을 마치고, 9월 1일 첫 출근을 하였다.
내가 진짜 판교로 출근을 해보다니... 설레었다.
2달 동안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회를 잘 살려 후회 없이 경험을 쌓고 기업의 프로세스를 체화하고 싶다.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이번 기회의 소중함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었다.
혹여나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에 불만이 쌓여갈 때 이 글을 다시 한번 보아야겠다.
내가 얼마나 간절했었는지.
그리고 이 기회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나에게도 항상 불행만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들을 잘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면
이런 소중한 행운이 뒤따라 오게 된다고.
그러니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예전처럼 너무 자책하거나 세상을 원망하지 말 것.
온전히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며
새롭게 다가올 행운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
9월을 맞이하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기대된다, 설렌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