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카페 편-
나는 밖에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백색 소음은 때론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며 상호 견제하며 '딴짓'을 억제해 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그게 힘들다.
좀처럼 추워질 생각을 안 하는 11월,
자소서 작업할 일이 많아지면서
광진구와 성동구(성수동, 서울숲, 어린이대공원) 일대의 많은 카페들을 돌아다녔다.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웬만한 작업 카페에는 거의 다 가봤다.
성수동에 새로 생긴 디 플랫
서울숲 뒤편에 있는 층고가 높은 코사이어티
그냥 스타벅스 등등
집 근처에서 그나마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보난자 커피 군자점'.
독일 베를린 3대 커피라나 뭐라나.
커피 맛에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듯,
1층 공간 전체를 원두 추출 기계로 채워 넣었다.
커피 맛 이외에도 '작업'을 위한 나름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고 넓은 테이블과 따뜻한 노란빛 조명이 집중에 도움을 준다.
보난자 커피 이용자들도 대부분 근처 대학생들이 프로젝트를 하러 오거나,
각자 노트북으로 개인 작업을 하는 분위기라 암묵적으로 잔잔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리마다 콘센트가 없다는 것.
유일하게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는, 남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야 하는 긴 테이블뿐이다.
보난자 커피도 굉장히 훌륭한 공간이지만,
나의 눈을 너무나 높여 놓은 한 곳 때문에 웬만한 작업 카페엔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곳을 뛰어넘는 곳을 찾으려
집 근처인 성수동과 서울숲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어느 곳도 나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아무래도 요즘 가장 트렌디한 동네로 하루가 다르게 간판이 변해가는 모습들로 비추어 봤을 때,
작업하는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보다는,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고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가 더 효용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조용하지만 정적이진 않는,
돈 냄새 풍기는 동네에 있다.
연희동에 위치한 '프로토콜'이다.
'프로토콜'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디테일'에 있다.
전체적으로 검정 톤 배경에 스테인리스 소재로 된 '아르떼미떼' 조명은 너무나 조화롭다.
널찍하고 마감 좋은 검은색 테이블과 만듦새 좋은 의자가 받쳐주는 안정감이 좋다.
테이블과 테이블 간격 사이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로 이격 되어 있어
나만의 적절한 '집중 공간'이 확보된다.
커피를 평소 잘 먹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프로토콜'에 방문하면 카페라테를 마신다.
음료를 주문하면 어떤 진동벨이나 안내판 없이도, 직원분들이 직접 자리로 가져다주신다.
오셔서는 커피 원두와 맛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프로토콜'스러운 안내 책자를 함께 전달해 주신다.
테이블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할 수 있도록,
잘 깎은 연필과 메모지, 그리고 자를 배치해 두었다.
메모지가 좋은 건지 연필이 좋은 건지 아니면 둘 다 좋은 건지 모를 정도로
사각사각 잘 써져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난다.
작업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향기로운 커피 향과, 배경으로 깔리는 'Contemporary Classic'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환경을 조성한다.
그 공간에 있는 순간 자체가 구원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홀한 기분을 종종 느끼게 된다.
집에서 1시간 이상 걸리며 버스를 갈아타야지만 갈 수 있는 공간임에도
이번 달에만 3번 방문했다.
'프로토콜'은 어느새 작업 공간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어느 새로운 공간에 가든 '프로토콜'과 비교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눈만 높아진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에서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