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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착서점 Feb 07. 2023

블랙컴뱃 홍예린 선수의 경기는 예술의 경지였다.

훈련과정을 지켜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그녀의 피와 땀

2023년 2월 4일, 국내 격투기 단체 블랙컴뱃과 일본의 DEEP은 격투기 국가대항전을 치렀다.


나는 격투기 진성 팬이라고는 할 수 없는 무과금(?) 시청자이다. 격투기 경기를 직관 간 적도 한 번도 없고, 평소엔 축구와 야구를 더 좋아하는. 단체 입장에서는 딱히 돈은 안 되는 팬층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점점 마음이 격투기 쪽으로 기울고 있다. 내 취향의 변화를 발 빠르게 인지한 듯이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새 격투기 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블랙컴뱃 영상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UFC 경기들을 찾아보다 보니 알고리즘 물갈이가 이뤄졌나 보다. 수많은 격투기 경기를 봤지만 그중 이번 국가대항전에서 나온 '오시마 사오리' 선수와 '홍예린' 선수와의 대결은 백미 중의 백미였다. 보는 내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홍예린 선수에 대한 정보는 훈련 영상을 딱 한 번 본 게 다였다. 여성 격투기 선수는 남자 체급에 비해 화끈함이 적고 폭발력이 부족할 거란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홍예린 선수수의 이번 경기는 '여성 격투기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부수어줬다. 그녀의 움직임엔 감동이 있었다. 훈련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묵직한 타격과 그래플링 방어를 보며 그간 흘린 피와 땀이 느껴졌다. 홍예린 선수의 성격이 워낙 남들 앞에서 나서기보다는 혼자서 묵묵히 훈련에 임하는 스타일이라 더 그랬던 걸까. 그녀가 고통스러운 훈련을 정말 성실하게 견뎌왔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기를 보면서 오시마 사오리가 가볍게 이길 것이라는 여론을 뒤집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챔피언을 상대로 잘 싸워줬다. 결국에는 여론의 예상대로 그래플링에 밀리며 서브미션으로 패배하긴 했지만 3라운드까지 버티며 끌어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경기였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녀는 다시 평상시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인터뷰는 길지 않았다.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고, 첫 경기부터 패배를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팬들을 더 안타깝게 만든 건 그녀가 진심으로 죄송스러워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첫 경기부터 패배해 승기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만약 국가대항전에서 진다면 본인의 탓이 크다며 그 작은 체구로 책임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관중들과 CGV에서 실시간으로 보던 사람들, 그리고 유튜브로 경기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하나 같이 '괜찮다고. 홍예린 선수 충분히 멋진 모습 보여줬다고. 승패를 떠나 홍예린 선수의 경기력은 우리들에게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고.' 되려 응원을 보냈다. 그녀의 경기를 보고 나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몰입해 있는가.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는가. 젊은 날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는 것만으로 그녀의 이번 경기는 예술의 경지에 닿은 것이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끝으로 그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이번 경기가 올해 마지막이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심지어 직접 주먹을 섞어보며 상대했던 오시마 사오리까지 그녀의 잠재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홍예린 선수를 둘러싼 개인적인 환경들이 잘 개선되어 다시 케이지 무대로 돌아와 주는 날을 기다려본다. 나처럼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부디 회복 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케이지로 돌아와 또다시 감동을 선사해 주는 파이터로 무대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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