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기분을 만드는 아주 단순한 방법
계란후라이 : 하루를 여는 노랗고 하얀 아이.
가만보자... 자취를 시작한 게 거의 고1때부터였으니까 거의 17년째 홀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흐으어어어으으으엉) 그래도 처음 3,4년은 뭔가 열심히 만들어 먹었던 것 같아요. 난이도 S랭크의 한손으로 계란깨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아련...)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귀찮아지기 시작한데다, 본격 지하방(반지하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던전 그 자체)에 살기 시작한 때부터는 요리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일단 카레라도 만들라치면 온 방에 카레냄새가 가득해서 3일간은 코로 입으로 카레를 먹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당시엔 생선구이가 너무 간절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기를 쓰고 고등어구이를 시켜먹곤 했죠. (삼겹살 too)
삶이 바쁘고 열심히 살수록 밥이란 건 사실 맛보다는 생존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4가지 방식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었어요.
시켜먹고, 돌려먹고, 사먹고, 굶고.
종종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위장 한쪽이 시려오곤 했달까요.
이렇게 아주 규칙적인 나쁜 습관이 몇 년 째 계속되자 위장이 제게 말을 걸기 시작하더라구요. 위궤양, 위염, 역류성식도염, 장염, 십이지장염, 위경련.... 등의 형태로 말이죠.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위장의 소리를 듣고 계신 것 같아요.
개인사업자로 일하면서는 이 불규칙이 거의 혼돈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위장은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먹거리들을 처리하느라 꽤나 힘들었을 거예요.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더라구요.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다만 행동을 만드는 데에 있어선 의지보단 고통이 더 직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씩 속이 뒤집어져서 온 방을 굴러다녀야 겨우 작심삼일이라도 유지되었달까요.
(그러다 좀 괜찮아지면, 또 약 안먹고 술마시고 폭식하고 굶고...)
위경련의 대지옥을 3,4번정도 경험하고 나니, 이젠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뭘 먹어도 속이 부글거리는 지경이 되더라구요. 생활패턴도 엉망도 되고, 배만 뿌하게 나오더니 결국 바지를 새로사야 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 느껴졌고 내시경결과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어느날 아침 눈을 떴는데...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생각이 드는 순간.
그날따라 유독 일찍 눈이 떠진 것 같아요. 배도 일찍 고팠겠죠. 보통 아침은 굶고 넘기기 일쑤였지만, 그 날은 좀 다르게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란후라이를 하나 지져보았습니다. 오랜만에 팬에 기름을 달구고, 편의점에서 계란을 급하게 사왔어요. 그리고 톡.
핸드폰을 살짝 꺼놓은 채 오물오물 천천히 후라이를 먹었어요. (사실 한 입에 먹을 수도 있었지만...)
아주 고소했습니다. 반숙을 좋아하는 터라 노른자가 적당히 익었고 소금기가 부드러운 노란자 사이로 배어들어있었어요. 식도로 사르르 넘어가는 부드러운 계란과 위장에 톡 떨어지는 느낌(?).. 입술과 목을 적시는 고소한 기름의 향기.. 속쓰림이 달래지고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그리고. 씻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보았어요. 아침을 챙겨먹은 하루는 뭔가 달라졌을까요? 노노.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똑같은 하루였습니다. 맞아요. 대단히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사실 후라이하나에 대단한 변화가 생겼다고 하면 너무 억지스럽지요.
다만, 아주 몇 가지.
일단 배가 아프지 않았고 부글거리거나 쓰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어요. 뒷 사람에게 문을 잡아줄 수 있었고, 커피를 사면서 인사를 건넬 수 있었어요. 아침에 여유롭게 걷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미소를 지어줄 수 있었죠.
속이 쓰려고 배만 움켜쥐고 아무거나 속에 채워넣던 그런 아침이 아니었어요.
하루가 조금 단단해졌습니다. 하루를 바꾸는 건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후라이는 고작 하루를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하루가 당신에겐 어떤 날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