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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Apr 08. 2019

[제작기]뇌가 순수한 상태로 시작하는 회사소개서

생각이 많아질수록 이상한 녀석이 탄생해요.

회사소개서를 만들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회사소개서를 만들기 전 뭐하는 지 알랴드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뭔가 엄청난 사고과정을 거쳐서 플로우를 짜는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의외로 그 시작은 꽤나 해괴망측합니다.





01

일단 미팅을 하면서 

여러가지를 파악해요.


보통 회사소개서 의뢰는 '저...소개서 만들려고 하는데요.' 라고 아무 정보도 없는 순수한 명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 이러면 진행을 하지 않거나 추가정보를 요청드리곤 합니다. 사실 건바이건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어서 보통 소개서는 프로젝트 속 일부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보통 디자인만 터치하는 경우는 하지 않고, 초기 플로우 기획부터 시작하는 건만 진행한답니다. 미팅을 진행해서 내용, 견적, 시기, 세부사항들이 조율되면 자료를 요청합니당. 자료를 받고나면 모든 파일을 하나하나 읽어보죠. 그리고 술을 한 잔 합니다.



02

뭐요? 

술을 마신다고요?


심신의 안정

네, 그렇습니다. 일단 머리를 썼으니 피자와 맥주로 머리를 좀 진정시키고 포만감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유도합니다. 종종 소주를 타먹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맛있고 기분이 좋습니다.



03

멍한 아침이 

됩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푹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숙취까진 아니지만 조금 멍한 상태가 됩니다. 기획하기에 최적의 상태가 만들어졌습니다. 머리가 조금 멍해지면, 복잡한 생각과 어려운 단어들을 떠올리기 싫어집니다. 아주 심플하고 직관적인 것들만 떠올릴 수 있죠.



04 

기존자료

분석해봅니다.



미팅하면서 말했던 내용이나..기존에 받았던 자료를 분석해봐요.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있는지... 한 장 한 장의 기능들을 옆에 적어가며 분류해봅니다. 이 과정에서 도무지 말이 안되는 맥락이나 동어반복, 핵심이 없거나 그냥 노잼이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수많은 요소들을 발견해요.



05

약간 머리가 

아픈 상태에서 

뇌를 비웁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아몬드초콜렛으로 당을 보충한 후 몸이 좀 힘이 없어서 흐느적 거리는 상태에서 페이지 리뉴얼을 시작합니다. 왜그러냐면, 몸에 너무 에너지가 넘치면 일은 안하고 나가 놀고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정된 내용을 다듬고 말이 되게 만듭니다. 이 때 중요한 건 소위 '업계용어' 를 모두 날리는 거에요. 특히 B2C모델이면 더더욱 필요하더라구요. 


'고객들에게 라이프스타일 제안과 그에 맞는 콘텐츠 큐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이따위 말은...그냥 우리들끼리 얘기할 때나 이해되는 거지(사실 잘 이해도 안됨) 소비자는 라이프스타일이 정확히 뭐고, 큐레이션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명확하지도 않고 뭔지도 몰라요. 이런 사업계획서에서나 먹힐 말들은 제안서나 소개서에서 몽땅 빼버립니다. 가뜩이나 숙취로 머리가 멍한 터라, 복잡한 단어들이 훨씬 눈에 잘 띄입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을 골라드려요. 당신의 취향에 꼭 맞게, 합리적으로.' 

라는 식으로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그리고 각페이지의 내용을 이런 언어들로 정리한 후 접속사를 붙여 연결시켜요. 접속사는 역접과 순접으로 구분하고 접속부사는 요약과 결론, 예를 들면 정도로만 활용합니다.(최소화가 좋더라구요)

되게...이렇게 쉬운 용어들로. 풀어버려요.




06

그리고 일러를 켜고 

어찌어찌 디자인작업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과정은 너무 길고 지루하니 나중에 자세히 소개해 드릴께요.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일단 하얀 대지를 만들고 

뭔가 선을 긋고 

구분하고 나눕니다. 

그 다음 정돈된 텍스트와 이미지를 쏟아붓고 

봄맞이 대청소 하듯 대략 위치를 잡아놓습니다.

디자인 컨셉을 기획하고 확정한 후

규칙적인 신호들을 먼저 잡고

그리곤 테두리와 큰 요소들을 잡고

세부 콘텐츠들을 정돈해요.


이런 것들을 올려놓고 몇몇의 과정을 거치면


갑자기?

이런 것이 탄생하고 그렇습니다.(갑자기? 네 갑자기)




중요한 것은 이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하루종일 보는 서비스고 상품이기 때문에 그걸 콘텐츠라 부르든 큐레이션이라 부르든 뭐 상관없습니다. 뭔가 그런 용어들이 있잖아요. 


마케터들의 영어약자 퍼레이드라던지.. 

(MAU, DA, CPC, CPA, ROI, PV, UV, CTR, DT, CR, SEO...)


브랜딩하시는 분들의 가치대잔치 

(라이프, 밸류, 타겟, 페르소나, 큐레이팅, 경험디자인, 본질, 코어, 메시지...)


내지는 굉장히 제조업스러운 용어들.

(통합제조원가, 액티비티, 기본수량, 케파, 오더, 코프로덕트, 원가, Queue time, Sales plan...)


하지만... 이것이 고객과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는 그들의 언어로 변화되어야 해요. 물론 종종 어떤 입찰이나 PT에선 어려운 용어들로 쳐발쳐발해서 상대방의 혼백을 조져놔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직관적이고 바로 이미지로 그려질 수 있는 구체적인 단어들로 바꿔놓는 과정이 필요하답니다. 


더불어 그런 단어들을 아주 단순한 논리로 말이 되게 만들어주는 과정도 거쳐요. 소개서는 영화시나리오가 아니라서 복잡하게 스토리를 꼬아놓으면 도무지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근데 내가 너무 똑똑하고 머릿속에 그런 생산자적 마인드가 가득하면 입에서 나오고 손으로 쓰는 글도 복잡하고 어려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술로 머리를 깨끗하게 비우고 몸을 힘들게 하여 손과 두뇌를 차분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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