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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Apr 10. 2019

어제의 내가 만든 오늘의 통증에 대하여

등반일지 : 관악산을 뛰어다닌 후에 느낀 것들.

관악산. Gwanak mt 632m(연주대, 촛불바위)


01

괜히

이 아님


산 이름 중에 '악' 자가 들어간 산은 꽤나 험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관악산, 치악산, 월악산, 설악산 등에 포함된 '악'자는 '큰 산 악(岳)'입니다. 한자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지죠. 혹자는 바위가 많은 산을 뼈가 많다고 하여 '골산(骨山)' 이라 하고, 흙이 많은 산을 '육산(肉山)'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찰진 비유입니다. 고등학생 무렵 축구경기가 한참 무르익으면 여기저기서 과격한 행보가 펼쳐지곤 했습니다. 


무리한 슬라이딩 태클은 상대선수의 정강이와의 뜻밖의 만남을 선사하곤 했는데, 보통 그러한 만남이 성사되면 사후세계를 경험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뼈와 뼈의 만남은 그러한 느낌입니다. 골산을 뛰어다니는 건 산의 뼈와 내 무릎 중 어느 것이 더 센 지 확인해보는 좋은 경험이죠.



02

시작

쉬우나


그 날 아침은 감자샐러드를 먹었습니다. 6시쯤 일어나 덜 깬 눈으로 감자샐러드를 오물오물 먹다보면 잠들어 있던 식도와 위장에 감자가 채워지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왠지 산에 갈 땐 세수를 대충하게 돼요. 어차피 땀으로 범벅될 거 굳이 폼클렌져로 뽀송한 피부를 만드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은 것입니다. 와중에 썬크림은 치덕치덕 바릅니다. 안그래도 까만 피부가 더 까매지면 어두운 밤에 치아만 보일까봐 싶은 걱정에서. 


관악산을 가는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서울과 과천, 안양에 걸쳐 크게 뻗어있는 산인지라 지하철역 부근에 입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올라가는 건 신림, 신대방, 서울대입구(지만 서울대까진 너무 멀다.)에서 출발할 수 있고, 과천 방향에선 정부과천청사역이 대표적입니다. 그 날은 빡세게 타길 각오한 날이었으므로 과천에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과천에서 올라가는 육봉능선. 봉우리가 6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각각 봉우리는 바위로 되어있고 용기있는 자들이 그 바위를 하나씩 타고 넘는 것이죠. 하지만 우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부터가 녹록치 않습니다. 7시 무렵이지만 사당역은 서울하프마라톤의 열기와 다름이 없이 질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혼돈의 사당을 거쳐 정부과천청사역에 내리면 한적하고 드넓은 과천향교 쪽으로 걸어갑니다. 산에 오르기전엔 발목과 목, 허리를 풀어줍니다. 아침이라 끄응끄응 소리가 절로 납니다. 


사실 오늘 산에 오르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뱃살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아침이 되면 들어가야 정상이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아침임에도 배가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갑자기 운동욕구가 솓구치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생수만 들고 달려온 것이죠. 이런 식의 동기부여는 좋지 않습니다. 걸음에 조급함이 가득하거든요. 산에선 무언가를 오물거리는 맛이 일품이지만 늘은 뱃살제거를 목적으로 왔으므로 오물거릴 것을 들고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후에 큰 후회를 낳습니다. 



03

풀리기까지



관악산은 초반부터 바위투성이입니다. 사실 산에 돌이 많다라는 느낌보단 그냥 큰 돌에 듬성듬성 나무가 꽂혀있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초반엔 굉장히 몸이 힘듭니다. 계단보다 높은 바위를 오르면 어딘가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숨도 훨씬 많이 헐떡거리게 됩니다. 여기저기 힘들어하는 몸의 비명을 들을 수 있죠. 


등반 30분정도가 지나면 200m 이상 올라올 무렵이 되는데 이쯤서부터 몸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숨이 좀 진정되고, 초반에 격하게 몰려오던 피로감도 한결 나아집니다. 이 때부턴 속도가 납니다. 관악산은 오르락 내리락이 큰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돌이 크기 때문에 우회로 내지는 능선을 따라 가면서 자잘한 오르내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 과감하게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돌을 넘기로 합니다. 인류도 태초에 네 발 짐승이었다는 사실을 이러한 행동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손과 발을 이용해 돌을 올라갑니다. 가끔 겁나 무섭습니다. 떨어지면 아무리 못해도 어디 한 군데가 크게 아프겠구나 싶습니다. 돌과 뼈가 부딪히면 평소에 경험키 힘든 고통을 맛볼 수 있죠. 이렇게 다람쥐로 빙의하여 절반까지 올라왔습니다. 예상보다 페이스가 더 빨랐습니다. 확실히 쾅쾅 뛰어다니며 무리를 하면 속도는 빨라집니다. 자동차도 RPM 높여서 160km/h를 밟을 수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는 속도는 무시무시합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의지가 약해집니다. 뱃살이란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시작됩니다. 하필이면 제일 힘들다는 육봉능선을 타겠다고 지금 이 난리를 치고있나 하는 생각으로 발전합니다. 그냥 내려갈까...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아갈 순 없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더 험하거든요. 육봉능선을 타면 일단 정상인 연주대까지 가서 서울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더 편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애시당초 뭔 생각을 하고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욱 생각이 없어집니다. 몸의 통제권을 허벅지에게 인수인계합니다. 두뇌는 쉬러 들어가고 허벅지가 알아서 몸을 인도합니다. 



04

뼈와 살

함께 움직인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근육들이 한꺼번에 움직입니다. 엉댕이와 허벅지, 몸의 균형을 잡기위해 기립근과 등근육이 함께 움직이죠. 하지만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정신줄을 놓고 터벅터벅 걸어선 안됩니다. 근육에 힘을 주고 제대로 힘을 쓸 때 집중해야하죠. 그렇지 않고 촐랑촐랑 뛰어다니면 모든 충격이 뼈에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렇게 초콜렛도 없고, 점심밥도 챙기지 않은 채 넋이 나간 채로 촐랑팔랭 걷다가 5봉을 넘었을 무렵, 발목과 무릎이 일제히 파업을 선언합니다. 멋모르고 바위산을 팍팍 뛰어다니다가 예전에 다쳤던 왼쪽 무릎의 통증이 올라온 것입니다. 못 걸을 정돈 아니었지만, 제대로 걷긴 글렀습니다. 절뚝거림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대로 6번째 봉을 넘어야 한단 것입니다. 오른쪽 다리가 아직 성하니 오른아이를 믿어보기로 합니다. 몸의 취약한 부분은 촐랭이방정을 떨며 무리를 했을 때 드러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멋모르고 마구 마음을 쓰다보면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고통이 올라옵니다. 



05

사실 그건 

진실이 

아니었을수도



연주대까지 가는 건 오바입니다. 제6봉을 두 팔로 넘어보았습니다. 몸은 모든 부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쪽이 마치면 모든 균형이 무너지죠. 오른쪽다리의 힘으로 내리막길을 시작합니다. 그럼 오른다리가 아플 줄 알았습니다. 노우. 틀렸습니다.


균형이 틀어진 상태에선 골반과 척추, 어깨까지 모두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중턱쯤 내려왔을 한 쪽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그림그릴 때 배웠습니다. 어깨와 골반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몸의 균형을 맞춥니다. 이론을 몸소 체험하며 자연의 신비함에 감탄합니다. 


사실 삶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제 클라이언트가 계약 하나를 엎었습니다. 오늘 산에 온 계기는 과연 살을 빼기 위해서였을까요?... 등산로입구까지 약 15분 정도를 남긴 지금 곰곰히 되새겨 봅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불만스러워 출발은 했습니다만...어쩌면 그건 그저 금전적 불안과 짜증과 걱정들이 만들어 낸 환상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물론 뱃살은 팩트입니다.) 마음의 일부가 무너지면 나를 바라보는, 또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뀝니다. 기분과 생각을 혼돈하게 되고, 충동적인 행동을 부릅니다. 그렇게 어제의 기분은 오늘의 무릎으로 연결되고 또 내일의 병원비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걸음은 사실 어제의 내가 만들었습니다.


이번 산행을 통해서 느낀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1. 무릎은 바위보다 약합니다. 

바위산에서 무턱대고 뛰어다니다간 조만간 계단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질 거에요. 한 걸음 한 걸음의 충격은 그때 그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피로와 충격은 계속 쌓이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죠. 충격을 받았다면 휴식시간을 충분히 주거나,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2. 무릎보호대는 효과가 좋습니다. 

약국에서 사면 좋은 녀석을 2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십자인대와 무릎 주변의 근막을 보호해줍니다. 뼈에 전해지는 충격을 분산시키기도 하고 무릎이 흔들리는 걸 막아주기도 합니다. 그냥 밴드하나 같지만, 무언가가 지지해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삶에서 필요한 건 큰 위로나 로또당첨이 아닙니다. 그저 아픈 곳을 잘 잡아줄 수 있는 순간의 밴드같은 요소들이죠. 아주 작은 밴드만으로도 우리는 꽤 많은 걸음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3. 몸이 1kg 찌면 무릎은 그 몇 배의 충격을 받습니다. 

무릎과 허리가 받는 신체의 충격은 체중의 몇 배입니다. 가속도와 중력의 영향까지 더해지니까요. 그러니 1kg만 쪄도 뼈에 전달되는 충격은 5~10kg가 증가합니다. 그러니 살을 빼야 하겠지만, 그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인정합니다. 저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체중계가 자꾸 절 비웃고 있어서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건 이렇습니다. 무릎근육을 단련하고 열심히 운동을 해도 체중이 느는 속도가 훨씬 빠른 터라 사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안책을 강화하기보단 원인부터 관리해야하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거나, 우울감이 심해지거나, 인생이 표류하고 있다면...미봉책을 늘리는 것보다 그 원인부터 파악하는 쪽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하나씩 커질수록 해결책의 가짓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거든요.


4. 행동의 원인은 생각보다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살 빼려고 갑자기 산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수한 연결고리가 있더군요. 어제의 계약무산이 우울한 기분을 불러왔고, 불안해졌고...아침까지 연결된 기분은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시각을 바꾸었고, 행동을 만들었고. 조급함은 빠른걸음과 무리한 운동을 불러왔습니다. 마음의 불안은 몸의 고통으로 연결되고...결국 내일 정형외과 비용이 되겠죠. 우리의 행동은 보이지 않은 어떤 톱니바퀴에 의해 움직입니다. 이 흐름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책, 몸져누움, 스트레스받음, 또쳐먹음 등... 어긋난 방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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