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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y 21. 2019

암보험 :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기 시작하면...

꿈은 잠시 미뤄지기도 합니다.

암보험 광고글 아니에요.

이것은 제 책에 적히지 않은 파트에요. 원래 책에는 '보장높은 암보험으로 꼭 들어놓으세요.' 라는 한 줄로 끝나는 파트입니다. 하지만 브런치에 한 줄만 쓸 수 없으니... 좀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해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국밥 먹자고 했던 차였죠. 거창하게 중국여행이라도 시켜드려야 하나 싶었지만...사실 저희 관계가 막 그렇게 같이 여행갑시다아앙 할 정도로 살갑지는 않으니까요. 가볍게 식사나 한 끼 하자는 것이었죠. 돼지국밥은 참 맛있었습니다. 정구지를 가득넣어 오물오물 먹고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배빵빵이가 되고 난 후 아직 아부지의 소주병에 2잔 정도가 남아있을 무렵 아부지가 얘길 꺼내십니다.


"야, 그 사실 저번에 내가 치질 수술 한다고 병원에 갔냐잉."

"네."

"그거시 그냥 치질인 줄 알았는디 나중에 봉께 종양이어브러씨야."

"!! 뭐시라고?"

"아니 그 대장에 이렇게 혹이 조그맣게 있드라고."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여 띠어브렀제. 하아따...그 때 암보험 오천 짜리 들어놨어야 한디 천짜리 들어놔가꼬 딱 그거 받고 끝나브렀어."

"아니 뭐라고? 수술을 했다고?"

"작년에 해브러써. 거 시벌노메 것이 야 나는 의사가 막 먹지말라고 하냐잉 그 술이랑 막 고기 이런거. 난 마암대로 먹고 댕겨도 암시랑토 안드만. 고노미 거 돌팔이 아니었나싶다잉."

"아니 근데 왜 얘길 안했어??"

"아니 시벌 안그래도 바쁜지 거 얘기해서 뭐더냐 그냥 톡 띠어블면 되는거."


3줄 요약을 하자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빠는 대장암2기 정도였고. 자식들도 모르게(물론 이혼하셔서 혼자살고 계신 상태), 무려 1년전에 혼자 수술을 하셨다란 얘기였습니다.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은 참으로 묘하더군요.... 수술이 잘 끝나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아부지의 건강이 걱정되고, 왜 나한테 말을 안했나 원망스럽기도 하고...한편으론 말했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고.. 뭔가 복잡했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지금은 어떻소? 그런걸 왜 얘길안해~ 하면서 넘겼지만...  복잡한 생각의 끝엔 두 가지 어둠이 스멀스멀 올라오더군요. 

'아플 때 아빠를 혼자 두었다는 죄책감.'
'만약 다시 재발..또는 전이되었다고 하면 그때 수술비는 어떻하지...?'


놀랍게도 건강과 위로보단 '돈걱정'이 제일 먼저 앞서고 있던 것입니다. 내 수중엔 몇백만원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다음달 카드값이면 모두 나갈 판이었죠. 모아지는 돈도 없이 하루하루 생계형 개인사업자로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아프다는데 돈걱정을 먼저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며 매우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최상급 불효자가 없다 싶었습니다...기본 3,000만원은 준비해놔야 한다..암은 아파서 죽는거 아니다 돈 없어서 죽는거다.. 등등 주변에서 수많은 얘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일 당장 다시 아부지가 전이판정을 받으면, 수술비와 치료비는 당장 어떻게 감당하고...간병인은 어떻게 해야하지? 아니, 혹시 10년째 고장나버린 제 위장이 사실 암이었다거나 오늘 당장 큰 사고가 나버리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따위가 아닌) 그 치료비는 어떻게 내지??? ...


하고싶은 일들이 있어요. 트래킹 콘텐츠를 만들거나 진행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좀 더 멋지게 해보고싶죠. 큰 회사의 큰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싶고... 하지만 대부분 그 꿈이라는게 막 피를 토하면서도 하고싶을 만큼 거창하고 뜨거운 것들은 아니더라구요. 가족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아프기 시작하는 순간... 어쩌면 우르르 무너져내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지탱해주는 건 뭘까... 그걸 무너져내리지 않게.. 지켜주는 힘은.


돈돈돈돈돈돈돈돈돈

돈이 있어야 겠더라구요. 돈이 없으면 보험이라도 있어야겠더라구요. 전 그 날 이전까진 실비보험 조차 없었어요. 건강보험조차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니까 이 '돈'이란 것은 뱅기 1등석을 타거나 서피스북2를 사거나 여름휴가를 오지게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더라구요.(물론 그것도 좋지만) 사실 돈의 본질은 삶의 최소한을 지탱하는데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정강이가 뿌러져서 끄아아아악!!! 거려도 '아씨 깁스할 돈 없는데..' 가 아니라 오롯이 아픔에만 집중할 수 있게..(?)


그러니 돈을 모아야 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꿈도 지키고 생활도 지키고

당신의 건강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의 최소한을 지켜주려면

(참으로 보험광고 멘트같다....하아..)

보험도 들고. 치과보험도 들고. 실비 꼭 들고..

여러분도 암보험 꼭 드세요.. 지금 들어..두 개 들어...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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