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나와있지 않은 5가지 때문임
브랜딩 책 핵많습니다. 모두 다 좋은 내용입니다. 나쁜 책은 없어요. 재미가 없을 순 있지만, 그게 양서다 아니다를 가르진 않으니까요. 오늘은 책을 까려는 게 아닙니다. 책을 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이죠.
애당초 책과 현실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엔 수많은 변수가 있고, 책의 페이지는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고대 마법주문서 마냥 8,000페이지 정도로 만들 게 아니라면 말이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현실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5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책을 읽는 당신께서도 아래 5가지 요소를 끼워놓고 생각해봐야 한단 얘기죠.
그 전에 책을 써보면서 느낀 점을 좀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책은 내 마음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책도 하나의 상품이기에 상품성과 자극이란 게 필요합니다. 아찔하고 짜릿할 필요까진 없겠지만...팔릴 만한 내용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죠. 본질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 책이라고 해도 안팔리고 서가에 꽂혀있기만 하면 당최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브랜딩 서적도 매한가지입니다. 노잼이면 안사니까요.
또한 책은 필연적으로 결과편향적 일 수 밖에 없어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적을 순 없잖아요. 제가 지금 이런 걸 하고있는데..잘 될 지 안 될 진 모르겠으니 썰이나 풀어보겠습니다아...해선 안되는 거니까요.
그건 썰이지. 네이버뿜이나 클리앙에 적어야지.
이미 어떤 성공사례가 나온 것을 토대로 분석할 수 밖에 없는데..솔직히 성공의 요인이란 게 하나뿐이겠습니까?
하필이면 그 시기 그 때 그 인재가 그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 상사가 오지게 오픈마인드여서 해보라고 했고, 우연스럽게 중국출장을 가게되었다가 우연스레 기회를 얻고...등등 오조오억개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나온 결과물일 것입니다. 스타벅스는 훌륭한 브랜드이지만 단순히 의자위치를 바꿔서 전세계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다가 책에는 빠져있는 5가지 요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략적인 부분을 풀어내기엔 글 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감정적인 부분을 풀어내기에도 글만큼 좋은 것은 없죠. 하지만 이 두 개가 공존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소설과 경제경영서를 오가는 하이브리드 혼돈의 장르가 될 수 있거든요.
브랜딩 프로젝트는 자칫
저 먼 별 하늘 위에 떠있는 북극성을 가르키며 '우린 저 먼 곳을 향해 달려나갈거야..' 라고 아련히 어깨를 다독이는 존나 탐험가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결국엔 '일' 입니다.
일이란 건 내 맘에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죠.
목적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의자 나르는 건 빡센 일입니다.
브랜딩프로젝트의 주된 감정은
고뇌와 빡침, 쟤는 왜저래, 아 좀 닥쳤으면 좋겠다, 그게 뭔 말이야?, 헐... , 아! 그게 오늘이었어??
와 같은 것들입니다.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죠.
책에서 '우리 직원들이 개빡쳐했다' 라는 내용을 쓰진 않습니다. '갈등이 있었지만 설득을 통해 원만히 해결했다' 정도로 갈음하죠. 그러니까 그놈의 원만히 해결을 어떻게 했는지가 짱 궁금하다고...
거기에 더해서 인간에겐 무척추 동물 시절부터 생명본질에 저장된 하나의 명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자고싶다. 눕고싶어."
심지어 사람의 몸도 두뇌도 그냥 하던대로 관성에 의해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디폴트 값입니다. 뭔가 짜릿함을 느끼거나 쾌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 스트레스의 일종이거든요. 정확히는 스트레스를 받은 몸의 방어기제를 통해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구독자님들께선 이러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코티솔과 도파민의 자극을 즐기는 M성향의 일변태들 이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자연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추구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거죠. 일 많아지는 거 귀찮은거야. 생각도 하기 싫어. 포토샵도 켜기 싫고. 회의도 하기 싫어. 에라이 그럼 하지마!! 라고 외치고 싶지만 브랜딩이란 그럴 수 있는게 아닙니다.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하고..이럴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런 상황을 맞이하구요.
책에선 도무지 업무분장을 얼마나 판타스틱하게 했길래 모두가 챡챡 딜레이도 없이 했는지 모르겠지만...(물론 있었겠죠. 말을 안할 뿐) 현실에선 개개인의 역량차이가 엄청납니다. 이런 차이를 최소화시키고 템플릿화 시키는 것도 브랜딩의 역활이긴 합니다만... 템플릿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잘 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확실히 어려움을 겪고, 누군가는 심하게 잘합니다.
문제는 브랜딩이란 게 사실 시간과 비용싸움이거든요. 당연히 일 잘하는(정해진 시간에, 준수한 퀄리티를, 정확히 뽑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다시 1번의 문제가 발생해요. 안좋은 케이스로 그에게
아놔 대체 왜 나만 시키는거야..어제 들어온 건도 못쳐냈는데 미춰버리겠네!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다면 이것이야 말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퇴사각이거든요. 책에선
개발팀에서..디자인팀에서?..아님..기획자가..여튼 누군진 모르겠지만 일이 개꼬이는 바람에 데드라인을 못 지켰다. 결국 오픈을 미뤄야했다
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야 해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라는 겁니다. 물론 시대를 관통하는 명제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브랜딩의 성공은 시대적 아다리와 꽤나 연관이 깊습니다. 단순히 운빨로 치부하기엔 명석한 인사이트와 철저한 준비, 실행력, 자금 등 다양한 것들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그냥 '시대의 부름' 정도로 해석하겠습니다.
95년도에 일본에선 처음으로 셀카봉이 나왔습니다. 개쓰레기 취급을 받았죠. 2001년엔 LG에서 아이패드 비슷한 것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폭망했죠.
트렌드와 급변하는 문화는 점점 더 유연하고 빠른 변화를 요구합니다. 물론 모두가 쫄티를 입는다고 우리도 쫄티만들자! 라는 식의 변화는 아닙니다.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것이죠. 시대를 관통하는 패러다임과 아이덴티티가 맞아 떨어져야 터지는 겁니다.
고객사랑, 고객모심, 고객이 왕이다.... 를 외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젠 우리 알바 때리지 마세요.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내쫓을거임. 필요한 건 직접 만들어 드세요. 등의 명제가 대세입니다. 앞으론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죠.
나를 시대에 맞출 순 없습니다. 나는 그냥 나대로 계속 가는거고, 시대의 물살위에서 둥실둥실 움직이는 겁니다. 내 애티튜드와 가치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고객이 되는거고, 많으면 많을수록 터지는 거죠. 조금이면 팬층으로 매니악하게 가는거고.
3년 전부터 꾸준히 하고있었는데, 타이밍이 아주 오져서 자고 일어나보니 대박 터져있던데요?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책은 없습니다. 우린 명확한 버즈피드식 비법이 있을거라고 믿으니까요. (없음)
돈이 없으면 뭘 못합니다. 솔직히 유튜브, 넷플릭스. BM이 매우 좋았고 시대의 흐름도 잘 읽었어요. 브랜딩을 엄청 잘했다기 보단 사업을 참 잘했어요. 하지만 버틸 돈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요.
브랜딩이 '돈이 많아야' 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단 돈 100원으로도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고, 작은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충주씨 포스터도 딱히 돈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돈은 단순히 운영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업자의 마인드를 좌지우지 하죠. 우선순위를 바꾸기도 하구요. 지금 당장 월급도 못주겠는데 영업이 중요할까요, 브랜딩이 중요할까요. 영업을 해야지. 빨리 고객잡고 돈 벌어야지. 물론 이렇게 덧붙이고 싶긴 합니다. 영업의 애티튜드와 말 한마디도 브랜딩입니다. 내가 곧 회사이미지죠. 그러니 내 행동 하나하나를 여유있게 바꾸고...진정성있는 영업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건 돈이 안들죠.
근데 사람 맘이란게 그렇습니까?... 이거 못따내면 뒤진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득달같이 달려들기도 해요. 과감하게 거절하고 나올 수 있을까요? 이건 우리 방향성과 달라!! 하고 쳐내고 나온다면 당신은 승자입니다. 그건 인정! 아주 멋진겁니다. 철학을 지켰어요. 장기적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이 맞습니다. 하지만, 야간 알바를 뛰어서 직원 월급 줘야 하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맞습니다. 돈이 있어야 뭘 맡기든 만들든 합니다.
우리가 버틸 돈이 많아서 위기를 잘 넘겼어요. 하하하..라고 책에서 말하진 않습니다.
사실 책을 쓴 사람도 잘 모릅니다. 저게 왜 성공했는지. 분석해보니 이런저런 요인들이 있지만, 그건 요인입니다. 그게 만들어내는 수많은 충돌과 연계성에 대해 모두 계산할 순 없습니다. 와우!! 저기에서 저렇게 하니까 터졌대!! 우리도 똑같이 하자! 라는 마음으로 똑같이 했다고 칩시다. 안됩니다. 안된다구. 그렇게 안돼. 돌아가.
아이템과 콘텐츠가 문제가 아닙니다. 만드는 사람, 성격, 문화, 사수의 컨펌, 다른 팀의 협조, 하필이면 그 때 현금흐름이 원활해서, 삘이 꽂혀서, 대표님이 바뀌기 전.. 등등
오만가지 요소들이 개입합니다. A회사에서 터진 아이템을 가져오지 마세요. 안 터질 겁니다.
책에선 이걸 모두 말할 수 없습니다. 말했다간 인류사에 길이남을 두께의 책이 되겠죠. 그리고 작가는 대현자가 될 것입니다. 탈고한 후 빛을 내뿜으며 승천할 지도 몰라요.
각 문제에 대한 답을 낼 순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합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레퍼런스를 맹신하지 마세요'
정도로 정리해야 할까요... 책은 분명히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고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사용설명서가 아닙니다. 그대로 따라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위에서 말했던 5가지 요소를 골고루 고려해서 우리만의 전략을 짜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 팀원 분위기가 어떤지
업무분장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현재의 패러다임은 어떤 명제를 관통하는지
돈은 있는지
다양한 돌발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 충분히 생각해보고 책의 정보와 잘 버무린다면 훌륭한 것이 탄생할 지도 몰라요.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