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에 들어가는 요상한 문장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당.
요새 제안서작업을 한참 하다보니... 디자이너라기 보단 번역가에 가까운 느낌을 좀 받았습니다. 원래 보내주신 스크립트를 찬찬히 훑어본 후 뭔 말인지 이해해야 디자인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잘 되지 않더군요. 문장들이 당최 80년대 개화기시절 소설 같아서 화자의 의도와 a에 들어갈 적당한 문장을 모두 고르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마덜퍼커장인을 천하의 효자로 탈바꿈시킨 인피니티워 어머니 번역처럼 돼선 안되므로...좀 더 정확하고 이해가 쉽도록 번역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구어체같은 문어체
잘 보세요. 다음 문장을
'잘 만든 콘텐츠를 통해 한국인들끼리 즐기고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글로벌화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의 이상한 점을 찾아보세요.
1. 주어가 없구요
2. 서술어가 이상해요. 글로벌화 + 할 수 있습니다.
명사와 조동사 느낌인데 이건 '브로콜리 할 수 있습니다' 뭐 이런 느낌이에요.
3. 한국인들끼리 즐기고 머무를 것.
...뭔가 IR에 쓰기엔 너무 술자리 문구같지 않나요?
4. 잘 만든 콘텐츠 = 그러니까 그게 뭘까요.
5. ~이 아니라. 라는 부정어는 가급적 피하시는 게 좋아요.
6. 위 문장의 논리관계를 보면 이렇습니다.
"A를 통해 B만할 게 아니라 C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가만히 보시면..뭔가 자연스러운 듯 이상하죠? B파트의 문제입니다. 'B파트'는 현재사항이고 C파트는 제언이에요. B와 C는 뭔가 바뀌어야 하거나, 대치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C파트는 B파트도 포함해야 하죠. 이럴 땐
'뿐만 아니라'
'~와 함께'
'에 더해서'
'를 포함해'
등등 and계열의 포함방식으로 표현해야 해요.
7. ~통해. 는 번역체인데..번역체가 무조건 틀린 건 아니지만 가급적 짧게 줄여주는 것이 좋아요.
8. 할 수 있습니다..는 식의 Do동사보다 동작중심 서술어가 우선이에요. 키운다 늘린다 줄인다 먹는다 잔다 등등..
9. 이건 디자인적인 부분인데, 문장의 오른쪽 끝선에 맞게 줄바꿈했을 때 윗줄과 아랫줄의 내용이 딱 잘라지면 좋아요.
그래서 바꿔보자면.
과거 여행지의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고객 유입도 늘립니다.
한 문장 세 의미
"공유자의 니즈와 콘텐츠 수준에 맞춰서 OO서비스 무료 공유부터, 개인 소장과 전시용 등으로 여행 콘텐츠를 유료로 고객으로 부터 받아 사진과 영상을 만들고 전시, 노출해 줍니다."
어떤 곳의 서비스 소개입니다.
왓더헬 뭔말인지...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9써클 대마법 주문같은 이 문장을 하나하나 쪼개보겠숩니다.
1. 또 주어가 없구요
2. 공유자, 니즈, 콘텐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지만..고객들은 콘텐츠란 단어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타트업 안다니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수다떨 때 그들이 콘텐츠콘텐츠 거리는 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일반인들은 그런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냥 사진, 기사, 영상 이렇게 말하죠.
3. 문장이 너무 길어요.
4. 무료 공유라는 말은 굳이 필요없을 것 같아요. 무슨 선심쓰는게 아니라 원래 그게 비즈니스모델이잖아요.
5. 유료로 고객으로부터 받아. = 자..'유료로' 와 '~으로부터' 모두 부사입니다. 부사는 서술어와 붙어있어야 하죠. 단 순서가 있습니다. 행위주체가 먼저, 방법이 후순위입니다. '고객으로부터 유료로 받아' 라고 해야죠.
6. 사진과 영상을 만들고, 전시, 노출해 줍니다. = 줍니다?... 은혜 베푸는 것도 아닌데...이 종결어미는 무엇일까요. 반말이잖아요.
7. 그리고 전시, 노출.... 정확히 무슨 노출인지 어디에..뭐 그런 걸 잘 모르겠네요.
8. 목적어는 '여행 콘텐츠를' 이고. 서술어는 '전시,노출합니다.' 입니다. 근데 목적어를 수식하는 형용사구가 너무 길어요. 공유자~등으로 까지가 모두 수식어구입니다. 수식어구는 단어단위로 잘라주세요.
9. 을, 으로, 를, 로, 어째서, 부터 등등..조사가 너무 많아서 문장이 복잡해요.
하나하나 고쳐보겠습니다.
1) 뼈대를 만들겠숩니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
= 우리는 + 여행 콘텐츠를 + 확장시킵니다.
2) 수식어 정리를 해볼까용..
<공유자의 니즈와 콘텐츠 수준에 맞춰서 OO서비스 무료 공유부터, 개인 소장과 전시용 등으로>
'니즈와 수준'은 앞으로 퍼뜨릴 콘텐츠의 제한조건입니다. 아무 콘텐츠나 주는 대로 다 쓸 순 없으니, 쓸 만한 걸 고르겠다는 얘기죠. 냉정하게 표현하면 '기준에 부합하는' 이라고 쓸 수 있고, 부드럽게 말하면 '매력적인' 정도가 되겠죠. 콘텐츠 노출 기준은 내부규정이니 굳이 다 까발릴 필욘 없겠습니다.
개인소장과 전시용...이건 뒤에 나오는 '전시/노출'과 같은 말이므로 날립니다. 이렇게 정리되겠네요.
= 우리는 + 매력적인 여행 콘텐츠를 + 확장시킵니다.
3) 중간 문장들을 넣어봅니다.
단어들도 쉽게 풀어줍니다.
아까 '유료로' 라는 부분도 직관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매력적인 여행사진과 여행기를 삽니다.
이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만듭니다.
완성된 작품을 전시회나 SNS에 공개합니다.
4) 부드럽게 소개문으로 바꾸겠습니당.
우리는 당신의 매력적인 여행사진과 여행기를 구매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통해 수익은 물론, 멋진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태어난 완성물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회와 SNS노출의 기회도 마련해드립니다. 추억을 꺼내주세요. 우리는 가치를 더해드리겠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인삿말스러운 문장
"차별화된 제품으로 핵심 시장에 빠른 확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데쟈뷰를 부르는 멘트입니다. 제가 지금 제안서를 13개째 작업하고 있는데... 6,7번은 본 듯한 문장이죠. 쉬워 보이지만, 뭔가 상당히 예민한 개복치같은 문장입니다. 여차하면 이상해지죠.
음..위 문장은... 4파트로 쪼개지네요.
1. 차별화된 제품으로 = 방법
2. 핵심 시장에 = 위치
3. 빠른 확장을 = 목적어
4. 준비하고 있습니다. = 서술어
고쳐보죵
1. 방법을 소개할 땐 '차별화된, 멋진, 니즈에 부합하는...' 등 잘 그려지지 않는 어휘는 빼려고 합니다.
'현장/생산직의 업무특성을 반영해' 로 바꿔보겠습니다.
2. 핵심시장... 보는 사람은 그게 어딘지 모릅니다. 사실 말하는 사람도 어딘지 잘 모를 겁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필요도 없는 말이긴 합니다. 당연히 핵심시장에 팔지 어디에 팔겠습니까. 변두리시장에 팔까요. 지우겠습니다.
3. 빠른 확장.. 뭐 좋습니다. 얼마나 빠를 지는 후에 마일스톤에서 나오겠죠. 하지만 여기선 구체적인 숫자를 좀 적어보겠습니다.
4. 준비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가끔 '~하고 있습니다. ~필요가 있습니다.' 와 같은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건 Be동사또는 현재진행형 표현이 잘못 번역된 번역체입니다.'준비합니다.' 가 맞죠.
합쳐보면
(방법을 강조할 때) 현장/생산직의 업무특성을 반영해 우선지정한 300개 기업 대상으로 빠른 확장을 준비합니다.
(대상을 강조할 때) 우선지정한 300개 기업 대상으로 현장/생산직의 업무특성을 반영해 빠른 확장을 준비합니다.
할 말 너무 많은 타입
"년간 1조원 이상의 큰 시장이지만 구글 플레이 스토어가 주도하고 대형 e-money 사업자와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시장에서 성장 중, 자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일정점유율 확보가 목표"
또잉.... 이번 문장은 이것입니다. 문법적인 것보다..IR에 들어가는 문장들 중 위와 같이 변명하는 느낌의 문장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당.
투자제안은 흐엉흐엉 거리는게 아니라, 우리는 돈을 존나 벌거고 너에게 돈을 안겨줄테니 나에게 돈을 줘라. 라는 거잖아요. 그러니 3가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냐.
이렇게 벌거다.
돈을 달라.
가끔 이 와중에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지금 상당히 비장하다라는 걸 심하게 강조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비장한 건 잘 알겠지만, 문장은 담백할 수록 비장미가 돋보이는 법입니다.
위 문장은
"자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일정점유율 확보가 목표" 이 핵심문장입니다.
정체성 앞에 '자체적인' 이란 단어는 동어반복이에용. 느낌적인 느낌같은 표현이야. 정체성이 원래 자체적인 거지 다른 정체성이 있나요.
점유율 앞에 '일정' 이 굳이 붙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 먹으면 더 좋잖아? 그리고 앞에 1조원이라고 했으면서 뭐 얼마 시장이란 얘기도 없고 그냥 일정점유율이라고 하면 너무 방어적인 느낌입니다. 몇 퍼센트다. 얼마 시장을 먹을거다. 그런 얘길 해주던가.
1. 습관적으로 단어앞에 수식어 넣지 않기
2. 가급적 and연결은 좀 피하는 게 좋아요
3. 확보가 목표 = 확보목표 / 쓸데없는 조사빼기
앞 문장
"년간 1조원 이상의 큰 시장이지만 구글 플레이 스토어가 주도하고 대형 e-money 사업자와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시장에서 성장 중....."
그러니까 쉽게 풀면
지금 말이야 이 시장이 쉬운 게 아니라구, 응? 구글 알지 구글 걔랑 싸워야돼. 지금 여기 아주 치열해? 아주? 그런데 봐 우리가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전투민족이야 전투민족.
뭐 이런식의 자화자찬이나 '망해도 어쩔수없다' 구글은 쩌니까.... 와 같은 밑밥깔기 같아 보입니다. 안 치열한 시장이 어딨고 대형경쟁자 없는 시장이 어딨겠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보는 사람이 '아...여기 빡센데' 라고 생각하기 마련일텐데 굳이 이걸 말하고 있으면 좀 구차해보입니다...
담백하게 바꿔보겠습니당.
"구글(플레이스토어) 등 기존 대형사업자 영역 외
특정 마니아층을 겨냥한 일부시장 점유목표.
숫자가 들어갔는데 더 복잡한
"클라우드 게임 시장은 모바일, PC 및 콘솔 게임의 벽을 허무는 개념을 통해 연평균 성장률 28.86%로 전망됨"
오홍....이번 문장은 수치나 통계자료 말할 때 실수하는 것들이에요. 숫자가 들어가면 똑똑하고 정확해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더 바보같아 보일 수도 있어요. 위와 같은 문장이 그렇죠.
하나하나 분해해볼께요.
1. 이번엔 주어가 있네요.
2. PC와 콘솔게임은 '및' 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에요. 스타트업의 및사랑은 참으로 애틋한데 및은 '앞 내용을 포함한 대다수의 것' 을 의미해요. PC와 콘솔의 카테고리는 모두 같아요. 및 안에 포함되죠. 그냥 및만 쓰고 끝내던가 쉼표로 연결해야 해요.
3. 허무는 개념?... 그건 무슨 개념일까.
4. 을 통해... 스타트업이 사랑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를 통해' 예요. 방법을 언급할 때 이런 표현을 쓰는 데 그거 말고 그냥 '~으로' 라고 써주셔도 돼요.
5. 전망됨. 됨 빠져도돼요. 전망. 이라고 끊어도 무관합니다.
6. A는 B를 통해 C로 전망됨. 이게 논리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심지어 B파트는 명확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념이래요. 개념을 통해 성장률이 올라간다?.....
7. 구체적으로 28.86%라고 나왔는데 왜 전망돼요. 이미 나온 수치인데. 미래를 저렇게 정확히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존나 마야인이지. 달력 만들어서 예언해야해. 전망이 아니라 기록했다고 써야 맞습니다.
바꿔볼께요.
주어 : 클라우드 게임 시장은
쓸데없는거 : 모바일..어쩌고
결론 : 연평균 어쩌고.
1) 쓸데없는 거 정리
(벽을 허무는 개념을 통해) = 통합
= 모바일, PC, 콘솔기기 통합으로
2) 결론 정리
연평균 성장률 28.86% 기록
따란
클라우드 게임시장은 모바일, PC, 콘솔기기
통합으로 연평균 성장률 28.86%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