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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Oct 20. 2019

[고민해결] 억울한 클라이언트와
화가 난 디자이너

꼭 상대가 나쁜 놈이라서라기 보단...

디자이너 사람과 클라이언트 사람, 양쪽의 사정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습니다. 보통 이럴 땐 그래 니 말도 맞고 쟤 말도 맞다는 식의 황희정승 토크로 흘러가는데 요즘 들어 비슷하게 받는 질문도 많아지고 해서 정리를 좀 해봤답니다. 누구 한 사람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야만 트러블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업무트러블은 오해와 불안에서 시작되죠. 이 오해와 불신을 막기 위해 생긴 것이 계약입니다.


디자인외주를 그냥 "일을 한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계약관계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봅시다. 얼추 사전에 정리해야 할 여러가지 사정들이 있을겁니다.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와 광흥창역 맛집고르는 대화가 아닌 만큼 몇몇의 필수사항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클라이언트는 바쁘고 디자이너는 계약을 잘 모르니 자꾸 이 과정을 생략한 채로 일을 한다는 겁니다. 이는 결국 법정에서 서로의 성량을 뽐내거나 잠시 잊고있었던 학창시절의 쌍욕을 추억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듭니다. 

놔라 노라해따

오늘은 도대체 둘의 입장차이는 왜 이렇게 다른지. 보령머드축제를 방불케 하는 진흙탕 싸움의 끝은 어디인지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01

클라이언트 : 아니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면 뭐가 되냐

디자이너 : 그럼 니가 해봐라. 어도비는 도라에몽이 아니다


: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주요멘트 중 하나가 '안된다' 입니다. 이는 클라이언트가 안되는 걸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어찌어찌하면 만들수야 있지만 공수가 겁내 드는데다 비효율적인 탓도 있습니다. 더불어, 정확히는 '그 돈으론 안된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디자이너라면 세 가지를 말해줘야 합니다.


1) 왜 안되는지

2) 뭐가 되는지 

3) 당신이 말하는게 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여러분이 클라이언트라면 세 가지를 역으로 물어보던가 최초컨택부터 '안될 것 같은' 조건을 먼저 물어봅시다. (내일까지 가능할까요?, CMYK코드가 없는데 이 색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 금액 안에 가능할까요? 등) 괜히 컨택하고 나서 진땀빼지 말고.



02

클라이언트 : 알아듣게 설명을 해라

디자이너 : RGB를 RGB라고 하지 그럼 빨초파라고 할까


: 전문가가 일반인에게 이런저런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하는 건 엿먹으라는 겁니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15스펠링 이상되는 의학용어를 들이밀면서 엑스레이를 설명해주면 여러분은 끄덕이실 수 있나요. 빨초파라는 용어가 필요하다면 빨초파라고 말해줍시다.  



03

클라이언트 : 내가 예술을 하랬냐 시안을 달랬지

디자이너 : 시안을 만들려면 정렬정도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 예술을 해야하는 시기와 속도를 내야하는 시기는 다릅니다. 사전에 이것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해요. 

지금은 빠르게 컨셉확정하는 단계이니 정렬같은 미시적인 세계는 무시하시고 느낌만 보세요. 최종시안에서 디테일은 다듬겠습니다. 

라고 시안의 디벨롭과정을 사전에 잘 설명해야 해요. 안그러면 아이패드에 대충 그린 똥손그림이 진짜 포스터가 될 줄 알고 놀라버린다구요.



04

클라이언트 : 중간중간에 좀 보여달라고!

디자이너 : 중간에 보여주면 갈아엎을 거면서!


: 중간중간 보여주세요. 그리고 수정요청은 추후 '내가 신호를 보내면 한 번에 정리해서 달라' 라고 정리하시면 됩니다. 괜히 갈아엎을 까봐 안보여주다가 결과물을 보여주면 안 엎을 것 같죠? 다 엎어요. 미리 엎는 게 더 낫습니다.



05

클라이언트 : 나도 중간에 낑겨서 죽겠다.

디자이너 : 너는 중간에라도 꼈지 나는 지구내핵에 있다


: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측 대표님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중간 실무자입니다. 실무자는 힘들죠. 윗사람과 본인의 욕망, 그리고 디자이너의 욕망사이에서 비명을 지르는 존재입니다. 실무자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귀여운 이모티콘과 스벅 기프티콘을 보내는 건 돈지랄입니다. 상사는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는 지를 먼저 물어보고, 실무자가 상사에게 혼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이죠. 보통 이런 경우 당신은 생명의 은인이 됩니다. 실무자가 당신에게 기프티콘을 주기도 하죠.(실화입니다.)



06

클라이언트 : 돈은 한정되어있다고!

디자이너 : 그럼 한정된 돈받을 수 있는 사람을 써라

: 비싼 사람 붙잡고 자꾸 깎아달라고 하지말고 싸고 효율 좋은 인력을 씁시다. 높은 확률로 비용과 실력은 비례하지만, 보통 클라이언트분들이 필요한 디자인이 그렇게 엄청난 기획과 퀄리티를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진짜 중요한 디자인이 아닌 이상 효율을 우선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07

클라이언트 : 기획비를 따로 줘본 적 없다. 관행이다

디자이너 : 나도 기획비용을 관행으로 받아왔다.



: 견적 구성은 주는 사람이 하기 나름이지만 기획비용은 '포함'이 아니라 따로 구분해서 적어주면 좋을 듯 합니다. 하다못해 두유 한 봉지를 먹어도 성분이 적혀있기 마련입니다. '콩물 외 이것저것' 으로 퉁치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주는 사람도 견적서 내용 중 기획을 받았으면 기획비를 주는거고, 시안을 받았으면 시안을 주는 겁니다. 이건 일단 써보고 맘에 안드시면 언제든지 100%환불하는 전기매트가 아니기 때문이죠.



08

클라이언트 : 어떻게 더 자세히 설명하냐. 난 디자이너가 아니다.

디자이너 : 디자이너처럼 설명하랬냐 말이 되게 말을 해야지


: 이 부분은 끊임없는 고통인데, 서로 말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굉장한 한계가 있습니다. 언어는 거들 뿐 결국 이미지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미지를 말할 땐 이미지로 얘기하는 편이 좋습니다. '부들거리는 색상이나 엄마의 품같은 레이아웃' 따위로 표현하지 말고 그런 걸 직접 보여주도록 합시다.



09

클라이언트 : 돈이란 게 결제를 받아야 나가는거다.

디자이너 : 그건 내가 잘 알겠다. 그럼 니 월급도 사정상 한 번 미뤄보자.


: 결제기한은 사전에 조율합니다. 회사에서는 출금일이 정해져있습니다. 종종 내부 업무지원팀이나 회계팀 사정에 의해 지연되기도 하죠. 원칙대로라면 돈은 제까닥제까닥 주는 게 맞지만 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결재 빵구가 날수도 있고, 놓치기도 합니다. 이건 마치 지나가다 사람 발을 밟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흔한 일이죠. 하지만 흔하다고 쌩까고 지나가면 얼마나 기분이 안좋겠습니까. 지급일이 늦어질 것 같으면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합시다. 



10

클라이언트 :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만들어주냐

디자이너 : 가이드를 내놔라. 그게 있어야 뭘 할 게 아니냐


: 클라이언트 중 브랜드가이드를 명쾌하게 지니고 있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는 매우 답답한 일임은 분명하지만, 여러분도 미용실가서 어떻게 해드릴까요? 라고 물어보면 그냥 이쁘게 해달라고 하잖습니까? 비슷한 맥락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여러분도 정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컬의 굵기와 가르마의 방향도 지정해줘야 맞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이너는 그래픽을 다루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대화를 통해 맥락과 욕망을 읽어내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죠.



11

클라이언트 : 내부디자이너가 수정할 수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디자이너 : 원본비용은 줄거냐


시안비 주고, 기획비 주고, 원본비용 다아아 줘따. 

: 수정을 할거면 원본이 필요하고, 원본제공에는 비용이 추가됩니다. 당연한 겁니다. 그냥 주는 건 없습니다. 2차 제작물에 대한 권한을 양도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원본을 넘겼다고 저작권을 넘기는 건 아닙니다. 저작권은 엄연히 창작자에게 있고 클라이언트 분들에겐 '수정 권한' 이 있을 뿐이죠. 이 점을 잘 기억하세요.



12

클라이언트 : 계속 유지관리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디자이너 : 여긴 삼성AS센터가 아니다.


: 핸드폰에 1년 AS가 걸려있는 건 적어도 그 안엔 고장날 일이 없고 고장나면 이건 우리의 책임일 수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겁니다. 품질보증의 일환이죠. 시안은 핸드폰이 아닙니다. 쓰다가 고장나는 게 아니죠. 클라이언트 분들이 말하는 유지관리는 '추가 업무' 입니다. 이전에 끝난 일은 그 비용으로 종료가 되었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면 새 견적에 담는 것이 맞습니다. 디자인을 신작게임처럼 여기고 신규맵추가 업데이트 등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13

클라이언트 : 잠수타지 마라.

디자이너 : ...

: 잠수타면 고소당합니다. 성실이행의 의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성실하게 임하고 빡치면 멱살을 잡고 부당하면 따집시다. 여러분은 애인이 가타부타 말도없이 잠수타고 이별하면 기분좋습니까? 오우야.



14

클라이언트 : 퀄리티가 이제 뭐냐 어디서 무슨 똥을 빚어왔냐

디자이너 :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 비용으론 퀄리티 기대하지 말라고.


: 중요합니다. 퀄리티 내야합니다. 낮은 비용이니 퀄리티를 기대하지 말라고 사전에 말했다고 해서 어디 똥으로 모래성을 빚어와선 안됩니다. 적어도 행간자간정렬컬러컨셉 정도는 맞춰줘야죠. 애시당초 수락을 했을 땐 상호간에 적당한 협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낮아서 그 퀄을 못낼거면 애시당초 수락을 해선 안됩니다. 클라이언트는 그래서 사전에 기존자료나 수정에 필요한 레퍼런스를 주고받으며 어떤 수준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지 잘 얘기해줘야 합니다. 



15

클라이언트 : 몇 개는 줘야 고를거 아니냐. 하나만 줄 셈이냐?

디자이너 : 그럼 몇 개의 비용을 내놔라. 


: 저도 보통 3개 정도 시안은 기본으로 만들고 그 비용은 디자인비용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시안비를 따로 구분하여 표기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6,7개씩 시안을 요구할 땐 추가시안비용을 청구하고 지불하는 것이 맞습니다. 여러분들 물건 살 때 어디가서 샘플을 몇 개씩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까? 그냥 제작물 샘플 받을 때도 비용을 내야한답니다. 



16

클라이언트 : 전에 디자이너님은 이렇게 해줬다!

디자이너 : 그 분이랑 하시던가!


: 남과 비교하는 것 만큼 기분나쁜게 없어요. 다들 어릴 때 얼굴도 모르는 그 옆집자식에게 느껴보았잖아요.



17

클라이언트 : 아니!! 잘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물어봐야지!!

디자이너 : 나는 그런 줄 알았지 이사람아!

: 세상.. 이게 뭡니까. 긴가민가한데 그냥 자기 맘대로 해석해서 이상한 걸 가져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팅과 조율은 이런걸 방지하기 위해 하는 거죠. 궁금한 게 있으면 절.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합시다. 사소한 거라도 일일이 물어봐야 합니다. 

폰트는 무료폰트를 쓸까요? 자주 쓰시는 폰트가 있나요, 이 단어는 괜찮을까요? 색이 조금 틀어질 수 있는데 괜찮나요, 윗쪽 로고가 너무 작은 데 유지할까요? 등등... 

차라리 대답하나 해주는 게 나중에 사고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물어봅시다.



18

클라이언트 : 그건 디자이너님이 좀 알아서 해줄 수 없어요?

디자이너 : 나중에 난리칠거면서!!


: 17번의 반대경우입니다. 하도 물어보니까 이제 빡친거죠. 그래서 좀 알아서 해달라고 불평이 시작됩니다. 이 작은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서로 분노의 질주를 하지 않으려면 초기에 '이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다. 추후에 종합해서 드릴테니 간략하게 검토만 해주셔라.'  라고 권한과 범위에 대해 협의를 반드시 해야합니다. 



19

클라이언트 : 폰트하나 바꾸는데 왜 이틀이나 걸리냐

디자이너 : 그건 내가 장인이기 때문이다.


: 폰트 하나 바꾸는 데 이틀 안걸립니다. 누가봐도 그냥 자기 할 거 다하고 남는 시간에 수정하겠단 소리와 같죠. 여유있게 데드라인을 잡는 건 서로를 위해 좋은 선택이지만 이틀은 좀 심했습니다. 예상완료시간에 몇 시간 정도를 더해서 말해줍시다.



20

클라이언트 : 아니 이거 하면서 저거 하나 더 얹어줄 수 있는거 아니냐!

디자이너 : 핸드폰사면서 케이스 달라는 소리하고 있네

: 아니오. 계약서에 적힌 것만 하는 겁니다. 부탁할 게 있으면 정중하게 하던가 돈을 줍시다. 신사답게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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