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 오게 된 계기가 그리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마다 다 각자의 까미노를 걷는다고 하더군요. 전 세 가지의 약간 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인정을 받고 싶었죠. 순례길 걷는다고 하면 막 멋지다고 좋아요도 눌러줄 거고 또 멋지다, 대단하다, 고져스지져스 이런 얘기들이 나올 거잖아요. 그런거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콘텐츠 욕심이 있었어요. 되게 고생하는 데다가 커플이 같이 가는 여행이니 아 이거 좀 뭐 나오겠다 싶은거죠.
마지막은 약간의 강박이었달까요. 난 트래킹을 좋아하고 수백킬로 짜리 도보여행도 해봤으니 남들 다 간다는 800킬로짜리 까미노를 걸어보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장비도 좀 허접하고 그것도 비수기에 출발을 한거죠. 물론 비수기에 출발한 건 일 끝나고 가야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거지만 그것마저도 콘텐츠로 쓰기 좋겠다 싶었습니다.
지금 와 드는 생각은 다 개뿔 부질없고 그냥 집에 가고 싶습니다. 사실 왜 걷는 지 목적도 잘 모르겠고, 온 길이 아까워서 걷는 느낌이랄까요. 아니 사람이 1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좀 쉬러 가자는 여행인데 왜 내 돈주고 이렇게 고생하고 아파야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흠...온 몸이 척척하고 발은 퉁퉁 불었습니다. 팬티빼고 다 젖었어요. 사실 고생을 떠나서 피곤하고 예민해진 데다가 기분도 안좋아. 트래킹하면서 이런 경험은 많습니다. 비오고 고생하고 뭐 다 그런 건 괜찮아요. 하지만 제일 힘든 건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동기가 없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 이 길을 왜 걷고 있는 걸까요.
젖은 옷을 겨우 이끌고 들어온 알베르게엔 지금까지 만났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다 와있었습니다. 이 곳은 알베르게가 별로 없거든요. 우린 기타를 치고 와인을 마시고 저녁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찌씨와 저는 초소근무 끝내고 내려온 사수부사수처럼 급격하게 빠른 뽀글이를 끓여먹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들 왜 온 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갈거고 원래 무슨 일을 하고 있었고.. 뭐 각자의 나라나 개인신변, 오늘 코스, 내일 코스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죠. 어쩌면 모두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 지 모르는 게 아닐까요.
혹자의 말처럼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의미있게 끝난다는 말이 사실인가...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걷기 싫은 건 변함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