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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Nov 15. 2019

13. 까미노가 끝났는데 왠지 더 많이 걷는 느낌

찌와 레의 세비야는 간만에 맑아

세비야의 아름다운 유적지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분들이 다녀왔으니 굳이 다시 설명하는 건 에바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느낀 점들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남들 한다는 것들을 해보았습니다. 한국인들 겁나 많아서 경주 불국사 수학여행 온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대자연 매니아인 찌와 레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죠. 뭔가 관광지에 굴복한 느낌.


하지만 세비야 대성당은 굉장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아 카톨릭신자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거든요.


 세비야는 전반적으로 콜롬버스에게 빚을 진 도시입니다. 투자자를 찾아다니던 이탈리아의 상인 콜롬버스는 다른 나라에서 번번히 거절당했습니다. 데모데이의 폐해였죠. 그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시전하며 투자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투자자이자 심사역이었던 이사벨여왕은 시드와 시리즈A까지 한 번에 투자해줍니다.


콜롬버스는 단숨에 유니콘기업이 되어 팀을 꾸린 후 원정을 떠났죠. 그들은 인도를 찾는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 찾은 건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거기서 아주 엄청난 양의 금과 담배, 자원을 들고 스페인으로 돌아오죠. 성공적인 수익모델로 순식간에 BEP를 넘기고 당기순이익을 폭발적으로 낸 콜롬버스는 귀족지위와 막대한 재산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사벨 여왕이 죽은 뒤 모든 재산과 지위를 박탈당하죠. 그래서 콜롬버스는 아씨....내가 다시 스페인땅을 밟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화병이었을 겁니다.

세비야 대성당의 성전은 1.5톤의 금을 쏟아부어 만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슬람에 정복당했던 땅인지라 이슬람양식과 고딕, 바로크양식이 묘하게 섞여있죠.

히랄다탑


대성당과 히랄다탑은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사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신이 원하는 게 금떡칠이었을까. 와 더불어 이걸 만들고 금을 가져오는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야 했을까... 하는 것이죠. 충격적인 화려함 뒤에 숨겨진 묘한 불편함이 살아숨쉬는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히랄다탑은 34층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걸으면 우리라나 오래된 빌라 5층 정도 느낌입니다.

제육볶음 거의 골목식당클라스


오늘은 2주만에 한국음식을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세비야의 겁나 유명한 한식집을 가서 제육볶음을 시켜먹었습니다. 이베리코도 만든건지 육즙이 아주 대단했고 백종원이 기립박수를 쳐도 이상하지 않을 윤기가 자르르 도는 제육볶음이었습니다. 나는 에스파뇰로 주문하는데 점원은 한국말을 하는 이상한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강변을 걸어보았습니다. 야탑역 부근 탄천느낌이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건 분당차병원 느낌이고 옆에 황금의 탑은 야탑 홈플러스의 모습이 제법 겹쳐보였습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녁의 플라멩고 공연은 진짜 대박쓰였습니다. 플라멩고는 집시들의 전통춤입니다. 박수와 스텝, 기타와 노래를 활용해 타가다다다가가다가가다닥 을 선사하죠. 미간으로 보여주는 연기가 아주 인상적인 데다가 파워가 엄청나서 진짜 압도당한 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집시는 원래 이집트사람이라는 Egyption에서 E가 탈락되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집시를 처음 본 사람들이 '저 까무잡잡한 애들은 어디서 온 애들이야? 이집트인가?' 라고 생각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지요.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도사람이구나! 생각해서 인디언이라고 이름붙인 맥락과 비슷합니다.

정작 집시들은 자신을 ROM이라고 부릅니다. 롬은 평원의 주인, 평원의 방랑자라는 뜻이죠. 간지가 철철 납니다. 플라멩고의 어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플라멩고 새와 비슷한 춤이라는 설도 있고, 불꽃을 뜻하는 플라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뭐가 되었든 엄청난 건 사실입니다. 플라멩고 박물관에서 보는 정식공연도 멋지지만 클럽에서 맥주들고 보는 플라멩고 공연도 그 에너지가 오진다고 합니다.

오늘은 너무 많이 걸어서 찌씨의 무릎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내일 제대로 걸을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오늘 저녁은 와인에 올리브를 사서 주방에서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너어어어어

찌씨는 노동으로 버는 자본의 증가량보다 자본이 버는 자본의 증가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잉여이익분에 대한 분배 체제 재정비를 주장하셨죠. 이것은 마르크스의 자본축적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과거에 태어나셨더라면 분명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선두에 서셨을 듯 합니다. 하지만 둘 다 술을 먹고 주절주절 대는 터라 당최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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