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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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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Dec 21. 2019

(2)여기가 회사에요오, 수련회에요?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하세요. 문화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핫바를 통해 따뜻한 한 끼를 챙겨먹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바떨지마요."


벨은 혀는 똥꼬까지 기어들어갔다. 가슴에 비수는 벨의 행복회로를 걷어냈고, 벨은 불행해졌다. 벨은 '이 시발로마 내가 하는 게 왜 개소리냐 그렇게 들어쳐먹는 니 귀가 접힌 코기귀가 아니냐.' 라고 외치고 싶었다. 도무지 인간성이라곤 없는 이 회사에 일갈을 해야겠다. 단전에서부터 분노를 끌어올리며 서서히 압력을 높이고 있던 도중 가슴에 비수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문화 만들어서 뭐할건데요?"


단전으로 빨아들인 공기가 푸핫 튀어나오는 질문이었다. 


이틀 전 벨은 다비치 기획안 사건 이후 가슴에 비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창고정리를 얼추 끝낸 벨은 그 날 밤을 새서 캠페인 기획안을 만들어갔다. PPT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다듬고, 첫 장부터 '세상을 바꾸는 한 끼의 문화'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심찬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것이다. 중간에 빌어먹을 3M클리커가 딜레이되는 바람에 좀 임팩트가 떨어졌지만, 나름 개멋진 선방을 날렸다고 생각했다. 기획자 포지션에 어울리는 일을 한 것이다. 벨은 뿌듯했다. 이제 대표가 못 이기겠다는 듯 박수를 치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 좀 의외에 반응에 놀라긴 했지만, 이 질문은 벨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벨은 대답했다.


"우리 기업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좀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소비자는 자신의 행위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기꺼이 지출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제품도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거 만들어서 돈 벌려고 하는거죠?"


엌. 벨은 순간 엌했다. 그래 엌이 아니곤 딱히 뭐라 설명한 단어가 없네.


"그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잡스 인터뷰? 구글 아티클?"


아 그래, 솔직히 '제품 메시지' 라고 쳐서 바로 첫 장에 나온 아티클에 나온 얘기이긴 했다. 대부분의 브랜딩 서적에서도 다 똑같은 얘길 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잘 모른다고 잡스옹도 얘기했다. 이미지를 사는 것이라고. 핫바도 이미지가 될 수 있잖아. 가슴에 비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 우리 핫바 사라는 거죠? 핫바로 인류애를 실천하고 싶어요? 골목상권을 되살리고 싶어요?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아니죠. 헛소리죠. 열심히 니 지갑에 돈 꺼내서 핫바 사먹어라. 우리 영업이익 좀 높여달라. 이게 궁극적인 얘기죠? 에드워드 버네드가 그랬죠. 문화는 민족의 양식을 고려한 한 집단의 법, 도덕, 신념, 예술  등 행동양식을 총괄하는 것이다. 클리포드 기어츠는 그랬어요. 삶에 대한 인간들의 지식과 태도를 소통하고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상징적 형식이라고. 좋아요. 여기에 핫바를 대입시켜 보세요. 핫바를 통해 대중의 행동양식을 총괄할 수 있나요? 인간의 지식과 태도를 지속, 발전시킬 수 있나요? 문화 같은 소리 하지마요. 그냥 이벤트 하고 싶은 거잖아요."


벨은 두 손을 조물락 거리다가 가만히 들어보니 이것은 헛점이 있지 않나!! 싶어 유시민 작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소소한 이벤트가 조금씩 모여 큰 파장을 만들고 결국 캠페인과 문화로 이어져가는 거 아닌가요?"


" 아 그러니까 한 끼 챙겨먹자고 한 두번 정도 온라인 배너걸고 거리 나가서 핫바 나눠주는 이벤트같은 거 말하는 거에요? 한 10,20명 정도가 핫바를 얻어먹고 운좋게 인스타에 올리고 좋아요 좀 눌리고. 이게 벨이 말하고 싶은 문화죠? 역사적으로 궁극적인 목표가 수익창출인 문화가 있었나요?"


"하지만, 조금씩 해나가야죠."


그래 지지말자. 벨도 알고 있다. 그래 이건 다 마케팅의 일환이긴 하지. 하지만 봐봐. 나이키도 그냥해 이벤트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애플은 이미 그 자체가 문화가 되었어. 스타벅스는 카페를 일하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고. 전 세계적인 문화를 한 기업이 만들어냈잖아. 왜 우린 못한다는 거지? 벨은 서서히 빡쳤다. 벨의 말엔 오기와 악이 담기기 시작했다. 가슴에 비수가 답했다.


"이벤트 몇 번 할거에요? 벨은 길거리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와 내가 문화활동을 한다고 생각해봤어요? 그게 모여서 파장을 만든다구요? 물론 그 대전제는 있을 수 있어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몰래카메라나 전세계를 감동시킨 운동의 주역들은 길거리에서,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경우가 있었죠. 근데 벨씨. 그 정도 열정 없잖아요. 그 정도로 열심히 하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이건 마미손도 아니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비수의 라임에 가슴이 조각조각. 벨은 이게 이렇게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 일인가 싶어서 아까부터 충전하고 있던 분노 광자포를 혀 끝으로 발사해보기로 했다.


"아니,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큰 가치를 추구하며 일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광자포를 검지손가락 하나로 막아낸 비수는 나부랭이 빌런을 앞에 둔 원펀맨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네 잘못된 거에요. 입사 이래 지금까지 벨은 우리 핫바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죠?"


와시발... 이걸 이렇게 받아버린다고?... 벨은 기가 차버렸고 치사빤쓰 똥꼬 그래 니똥 칼라 굵다 황금송아지 다 가져라 개놈아 등등의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인간으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가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네 없어요. 문화 만들 생각 하지말고 이벤트 기획했으면 이벤트의 목적과 결과에만 집중해요. 지금 꿈꾸러 오셨어요? 그럼 잠을 자든가 어디 연말에 진행하는 스타트업 워크샵가서 대자보에 BM이나 그리면서 놀아요. 일하러 왔으면 돈을 벌어와야죠. 당신의 이력서에 당신의 꿈과 이상을 적으라고 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나도 연봉을 주면서 그걸 사진 않았던 것 같고."


벨은 생각해보았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고등욕구가 자아실현과 사회에 기여하는 인류애라고 했고, 그것을 지향하면서 나의 생계와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게 이렇게 욕 쳐먹을 일인가. 아무리 봐도 가슴에 비수는 돈에 미친놈이거나 존나 사회적감수성이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중증말기 파이널 환자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래 대부분의 청년들도 그렇지 않은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고,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길 바라지 않는가. 그게 뭐 잘못되었나!?


"우리 회사는 건강하고 간편한 대용식을 파는 곳이지, 세계를 구하는 파워레인저 기지가 아니에요. 자꾸 본인의 환상을 핫바로 실현하려고 하지마요. 본인의 꿈은 본인이 알아서 만드시고, 여기선 매출을 만드세요."


이 말을 끝으로 가슴에 비수는 노트북을 덮고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벨은 회의실에서 나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따뜻했고 쓴 내가 섞여있었다. 벨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았다. 그의 입모양이 뭐라고 웅얼거렸는데 아마도 ㅅㅂㅈㄱㄴ 같은 자음들을 조합한 모양이었다. 바지를 내리진 않았다. 벨은 후드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구글에 '퇴사 통보 후 무단 결근 처벌' 이라는 검색어를 넣어 스크롤을 내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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