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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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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23. 2020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들.

일을 할 때도 그러합니다. 

꼬꼬마는 일할 때 항상 오버해서 문제였습니다. 미생의 오과장이 이런 말을 했죠. 신입이 120을 하려는 것만큼 팀을 위험하게 만드는 건 없다고. 100을 할 자신이 없으면 80만 하라고. 사실 사람 기빠지는 말이긴 하지만 슬프게도 이는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을 끄덕이게 하였습니다. 꼬꼬마는 팀장님에게 오늘도 털렸습니다. 외주업체에 박스제작을 맡겨야 했는데 도무지 이놈의 친화력이 차고 넘쳤던 것이죠. 팀장님이 네고 다 해놔서 떨어뜨린 금액을 외주업체 실장님과 대화하다가 다시 올려놔버린 거에요. 아유 실장님 제가 또 잘해드려야죠 따위의 말로 오도방정을 떨어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팀장님은 꼬꼬마를 불러서 얘를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은 김치찌개였는데 꼬꼬마는 눈치보여서 돼지고기도 집어먹기 힘들었습니다. 팀장님은 끝나고 얘기를 할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살면서 이보다 무서운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꼬꼬마는 김치찌개를 콧구멍으로 먹는 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지 알 수가 없었어요. 


팀장님은 당이 떨어졌는 지 식사 후 바닐라라떼에 시럽을 3개나 추가한 뒤 초코가루를 미친 듯이 뿌려서 혈당폭파라떼를 완성했어요. 꼬꼬마는 오늘의 커피를 시켰습니다. 둘은 커피를 들고 조용히 테라스로 나갔어요. 말이 테라스지 사실 여긴 생각정원과 같은 곳입니다. 여기에선 보통 '내가 생각이 있나 없나' 를 되새기게 되죠.


팀장님은 아이코스를 하나 빼물었습니다. 


"너도 필래?"


꼬꼬마는 눼에 라고 했습니다. 꼬꼬마도 담배를 집어들고 함께 광활한 성수동을 바라보며 얘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죄송해요 팀장님. 관계를 잘 만들려고 하다가 그만..."


팀장님은 뭔가 말하려다가 연기와 함께 말을 삼키곤 날숨에 다른 말을 내뱉었습니다.


"쓰읍..그..흠. 아니 됐고, 내가 해줄 말이 있어. 꼬꼬마씨는 되게 열심히 하잖아. 뭔가 항상 좀 넘치지만 열심히 하는 거 알아. 하지만 회사에선 과유불급인 부분이 많아.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꼬꼬마는 열정이 정수리에서 뿜어져나오고 있는데 과유불급이란 단어가 뚜껑을 딱 막는 느낌이었어요. 내면의 열이 뿌우 솟구쳤습니다.


"팀장님 회사에선 잘할수록 도움이 되는 건 없나요?"


팀장님은 얘한테 뭔갈 잘못 말했다간 아주 불바다가 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 할 수록 좋은 게 몇 개 있긴 했습니다. 팀장님은 말했죠.


"응 몇 개 있지. 일단 싸움. 싸움은 잘할 수록 도움이 돼"

"왜요?"

"왜긴. 주인공이 약한 거 봤어? 아무리 약해도 과거 회상씬이 나오거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면 갑자기 존나 강해진다고. 심바같은거야. 왜 그러겠어. 말발이든 완력이든 일단 강력한 힘이 있은 후에야 겸손과 자비가 빛을 발하는 거야. 약한 사람의 용서는 슬프지만, 강한 사람의 용서는 자비롭지. 회사도 결국 투쟁과 갈등의 연속이야. 착함은 좋은 실패를 만들지만, 전투력은 강한 성공을 만들지."


꼬꼬마는 좀 의아했지만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요?"

"음..엑셀. 그래 엑셀은 잘할 수록 좋아. 너 포토샵하지? 포토샵은 잘할수록 생명이 단축돼. 너의 척추를 갉아먹는다고. 하지만 엑셀은 잘할수록 일이 단축되고 빨라져. 그리고 사실 아무도 건들 수 없지. 엑셀능력자 본 적 있어? 없어. 함수 계산하는 거. 아무도 몰라. 마법같은 거라고. 세상이 멸망한 뒤 하나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하면 엑셀을 선택해야 해."

"아..엑셀...."


"그리고요?"

"잘생겨야지."

"아...."


꼬꼬마는 강하게 긍정했습니다.


"그리고요?"

"영업."

"영업이요?"

"응."

"왜요?"

"영업잘하면. 직장에선 하늘이 내린 인재취급을 받고, 퇴사해선 삼시세끼를 벌 수 있고, 나이가 들수록 노하우와 연륜이 쌓이는데다...겁나 돌아다니니 다리도 건강해지고 뭐."


약간의 쌉소리가 있는 듯 했지만 꼬꼬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있어요?"

"서랍 속 과자?"

"과자요?"

"응 과자가 많으면 좋아."

"왜요?"

"몰라, 많으면 좋더라고. 없어서 나빴던 적은 있지만 있어서 나빴던 적은 없어."


꼬꼬마는 이마를 쳤습니다. 내일 당장 세계과자백화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많을수록 좋은 게 있긴 해서 다행이네요."

"응."

"그럼 이건 많으면 최악이다. 하는 게 있을까요? 하나만 꼽으라면."

"음........"


팀장님은 심히 고민했습니다. 마지막 담배를 빨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난 팀장님은 꼬꼬마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말인것 같아."

"Aㅏ."


꼬꼬마는 오늘도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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