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컨셉을 잡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일 뿐. 중요한 건.
공간브랜딩에서 중요한 것 3가지만 말해보려고 합니다. 공간 브랜딩 할 때 가장 먼저 컨셉을 자꾸 잡으려고 해요. 컨셉 잡는 것은 매우 잘하는 겁니다. 칭찬해요. 하지만 우리가 잡는 컨셉이란 게 보통 이런 식입니다.
"우리 공간이 가치있었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쉬다 갔으면 좋겠어!"
"다채로운 일들이 벌어지면 좋겠어!"
그래서 붙이는 이름이 이런 거죠.
"함께 나누는 밸류디벨롭먼트 스페이스"
"문화소통휴식공간"
"콘텐츠 복합문화공간"
말은 되게 멋있지만, 사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게 '이것저것 다합니다.' 라는 얘기와 매우 비슷하거든요. 공간컨셉을 잡을 땐 3가지를 고려해보세요.
공간에는 다양한 이름이 붙습니다. 대관시설, 세미나, 회의실, 아파트, 빌딩, 모델하우스 등 설립목적과 기능에 초점을 맞춘 상태죠. 사람들의 행위 자체보단 공간의 시설과 규모, 어느 정도의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지,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여기에 소비자를 살짝 집어넣으면 자꾸 문화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데... 문화는 잠시 서랍속에 넣어두고. 소비자가 실제로 활동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쇼룸, 식당, 편의점, 휴게소, 안방, 집구석, 목욕탕을 떠올려보세요. 거기서 무엇을 하는 지 너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나요. 이런 공간에선 행위가 구체적으로 좁혀지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 보니, 빵집에 약국을 합쳐서 치유의 빵을 만드는 빵약국이 있더라구요. 약국에선 무엇을 하죠? 약을 삽니다. 빵집에선 무엇을 해요? 빵을 삽니다. 그럼 약빵국..아니 빵약국에선 무얼해요? 그렇죠 약이되는 빵을 사겠죠. 그리곤 먹을 거고, 노가리를 깔거에요. 약국에서 노가리 까요오~ 못까요? 못까죠. 그러니 이건 맥락 상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거든요.
이처럼 행위를 재해석하거나 컨버젼스 시킬 때는 아주 명확한 이미지들끼리 만나야 해요. 모호한 것이 섞여있으면 그 때부터 '뭘 하는 지 모르겠다.'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리 깊게 브랜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이게 잘 규정되면, 목욕탕인데 카페이거나, 도서관인데 잠을 잘 수 있거나, 회의실인데 플스를 할 수 있는 등 명쾌한 행위가 섞이며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공간의 재해석이 이루어집니다. '원랜 A라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B도 할 수 있거나, B를 해야 하거나, B처럼 하는 행위의 스위칭이 신선함을 만들어냅니다. 또는 A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 도통 존재하지 않았는데 누가 만들어준 경우도 있겠네요. 어디가서 좀 조용히 음악만 듣고싶은데 그럴 수 있는 곳이 내 방, 침실 말곤 밖에선 찾기 힘들잖아요. 고민하는 방, 글쓰는 공간, 요리연습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곳이 있곘네요.
기능으로 공간을 정의내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회의실, 세미나실, 강당, 파티룸 등이 잘못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자꾸 소비자를 섞으려고 하잖아요. 부동산 사업할게 아니고. 그렇다면 그들에게 여기서 어떤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지 보여줘야 해요. 컨셉이란 이미지고 이미지는 규칙과 같습니다. 이미지는 심리적 원형에 기반하여 일종의 클리셰를 생성하죠. 이곳에서 대충 이런 행위를 할 것이라는 예측가능한 범위를 떠올립니다. 예측가능함은 안정감을 선사해요. 규칙이 없는 곳은 5평짜리 좁디 좁은 공간이어도 광야처럼 느껴지고 불안해집니다. 행위를 규정하지 못한 소비자는 구석으로 가게 되고, 관찰과 경계를 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죠.
공간은 정적 컨셉과 동적 컨셉으로 나뉩니다. 정적 컨셉은 아까 말한 존재의 정의 그 자체를 말하는 거고, 동적 컨셉은 실제로 행위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일컬어요. 사람들의 행위는 공간의 각종 구성에서 비롯됩니다. 내적 구성은 공간의 구성, 너비, 빛의 움직임, 소품, 인테리어, 공간적클리셰 등이 있을 거고, 외적 구성은 입지,환경,교통,상권.구매력 등이 있겠죠. 사람들은 통로의 너비에 따라서도 들어갈 곳과 나갈 곳을 결정합니다.
편의점의 동선 구성을 생각해보세요. 음료칸이 제일 뒤에 있고, 생활용품은 가장 사각지대에 존재해서 맨날 어딨냐고 물어봐야 해요. 공간은 출입구부터 화장실, 메인액션이 벌어지는 공간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때문에 빛을 조절할 때도 동선방향으로 빛이 들게 해줘야 하고, 구석은 조도를 낮춰서 안정감을 주어야 하죠. 그래야 소심한 사람들은 그쪽에 피신해 있을 거니까요.
사람들의 동선을 구성하다보면 그냥 이 사람이 들어와서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가게 하자... 이런 식의 선형구성을 하게 되는데 두 가지를 더 생각하세요.
폐곡선을 그리는 순환형 동선과 , 동작의 이유죠.
순환형 동선은 이렇습니다. 들어왔던 사람이 화장실만 들렸다 나갈게 아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갔다가 나온 뒤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있어야 해요.
현관에서 스낵바로 스낵바에서 화장실로 화장실에서 메인룸으로, 메인룸에서 유휴공간으로, 좀 쉬었다가 다시 스낵바로(계속 쭈서먹음), 스낵바 갔다가 다시 메인룸으로... 그러다가 유휴공간으로...
모든 동선은 빙글빙글 돌면서 순환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동선은 복합적으로 섞이게 되는데 데이터가 쌓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의 집적활용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거에요. (물론 사람들이 많이 왔을 때 얘기겠지만.) 집적활용 정도에 따라 잼이 걸리지 않도록 적당한 콘텐츠로 동선을 분배해주는 거죠. 스낵바에 특정시간에 사람이 너무 몰리면, 한 쪽에 전시나 핸드메이드 상품들을 판매해서 동선의 점을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거에요.
동작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왜 현관으로 들어와서 스낵바로 가야하는가? 또는 왜 이 통로를 이용해서 이렇게 올라가야 하는가?
우리 공간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공간인데, 일단 몸을 쉬게 하고, 정신을 쉬게 하고, 재충전을 하는 식으로 점진적인 동선을 짤 수도 있구요.
우리 공간은 감정을 오픈하는 공간인데 각 공간마다 희, 노, 애, 락의 컨셉이 있어서 오늘 자신의 감정에 해당하는 곳에서 한풀이를 해보거나...
우리 공간은 사회적변화를 위한 논의를 하고 실천하는 이노베이팅 공간인데... 문제-고민-논의-해결책-행동-평가로 이어지는 서사적 동선을 만들거나.
이런 식으로 발걸음과 손놀림의 맥락을 잡아줘야 해요. 그래야 이 공간안에서의 행위가 당위성을 부여받습니다. 공간의 컨셉은 그저 말뿐이거든요. 우리 공간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곳이야!!!!!! 엄청 외쳐도 그건 소개서에나 적히는 단어예요. 실제로 와서 그와 관련된 행위가 했느냐가 중요하죠. 이 행위에 프로세스나 카테고리가 잘 나뉘어져 있으면 소비자들의 감정은 굉장히 정돈되고 일관적으로 바뀌기 시작해요.
자 이거 중요한 건데요. 공간을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은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낮에는 뭘 했다가 밤에는 뭘 하는 거죠. 돈 떨어져서 대관모델로 넘어갔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자체 프로그램 만든다고 독서모임 같은거 하고 인문학강의 여는 게 아니라 한 공간에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섞어서 자꾸 변화시키는 겁니다. 월세 내야되니까 당연히 돈 벌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행위에 규칙이 없으면 '여긴 뭐하는 데 자꾸 이런거 저런걸 해?' 라는 식이 되거든요.
한 브런치카페 사장님은 펍을 운영하는 동네 동생과 쪼인해서 한 공간에서 두 브랜드가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낮엔 브런치메뉴를 밤엔 펍메뉴를 파는거죠. 왜 그러냐...여기 이름이 사생활이거든요. 사람들 맘속에 숨겨진, 또는 숨기고 싶은 사생활을 털어넣는 곳이에요. 사람의 사생활은 꽤나 이중적이죠. 그래서 공간도 이중적이에요. 대외적인 생활과 개인적인 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예를 들어볼께요.
낮과 밤의 규칙 : 우리 공간은 하루종일 놀 수 있는 곳이에요. 낮에 노는 거 밤에 노는 게 다르죠. 그래서 낮엔 남이 놀게 하고, 밤엔 내가 놀아요. 우리 삶도 그렇잖아요. 낮엔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살고 밤엔 내 시간을 가져요.
(그래서 낮엔 대관/밤엔 파티룸입니다.)
안전지대와 모험지대 : 우리 공간은 아슬아슬한 일상의 도전을 목표로 해요. 조금 쫄리면 안전지대에 가계시다가, 도전하고 싶으면 모험지대에 와서 사람들과 함께 놀아봐요!!
(그래서 한 쪽은 개인업무공간, 한 쪽은 커뮤니티룸입니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 우리 비일상의 경계선에 서있는 곳이에요.(번지수가 9길43 이라면 더욱 해리포터 스러운 스토리를 덧붙일 수 있겠네요.) 이상한 주제를 던지고 싶으면 비일상 쪽으로 가시고, 평범한 주제로 소소하게 얘기하고 싶으면 일상 쪽으로 오세요.
(그래서 공간이 두 개로 분리되어 있어요. - 사실 건물모양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 공간이 어떻게 나뉘고 변화하는 지 그 맥락과 규칙을 알려줘야 해요.
그래서 종합해보면 결국
1. 존재의 정의를 내려주고
2. 거기서 무슨 행위를 해야 하는 지 알려주고
3. 행위의 맥락을 구축하고
4. 규칙을 정해서 일정하게 변화를 주는 것.
여기까지가 고작 '컨셉' 구축 정도입니다.
추가적으로 주변 입지, 상권, 교통, 행인들의 특성까지 고려해서 공간 외적인 요소와의 관계를 반드시 조사해줘야 해요. 결국 '우리의 규정' 과 '공간의 특성' '콘텐츠의 구성'이 일치해야 그 맥락이 이해되기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콘텐츠를 확장시키고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자꾸 결이 안 맞는 콘텐츠를 집어넣거나 어두운 곳으로 동선을 꾸리거나, 가뜩이나 층고가 낮아서 경계심이 커지는 데 시원한 색의 백열조명이면 그냥 나가란 얘기잖아요.
그러니 1번만 하고 컨셉잡았다!! 라고 하면 자꾸 문화문화문화...란 단어가 맴돌아요. 여러분 머릿속에서 문화란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좁히고 줄이세요. 공간은 건축가가 설계하지만, 공간 속의 사람은 콘텐츠 메이커가 설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