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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n 04. 2020

'눈에 잘 안 들어와요.' 라는 피드백은 무슨 뜻일까.

1차 시안은 일단 눈에 잘 안들어오는 게 국룰.

디자이너 치고 이 피드백 안 받아본 사람 없을 듯 합니다. 시안을 똑딱똑딱 만들어 주면 일단 클라이언트 눈에 안보여. 아니 임금님이야 뭐야. 투명실로 만든 시안인가. 디자이너는 고민하죠. 아니 이게 왜 눈에 안들어온다는 거야? 아주 잘 보이는데? 혹시나 해서 폰트를 키워주면 이제는 뭔가 정리가 안된 것 같대. 그래서 뭔갈 지우면 그건 지우면 안되고. 다시 넣으면 좀 더 심플했으면 좋겠다 그러겠죠. 오늘은 이 악순환의 총성을 울리는 '눈에 잘 안들어온다' 가 뭔 말인지 좀 알아보려고 해요.




01. 두 번 갸웃거리면 바로 안보여버림.


사람의 눈이란 건 되게 답정넌이라서 시선이 닿기도 전에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요. 생각을 먼저하고 시선이 가죠. 생각한 곳에 생각한 것이 없으면 그때부터 어? 가 시작되는거야.



보통 슬라이드 제목은 어디에 있어요? 왼쪽 위에 있죠. 어? 없네. 오른쪽에 있어. 본문 설명은 보통 이미지 옆에 있죠? 어? 없네 밑에 있어. 근데 그 옆에 또 조그마한 글이 있네. 클라이언트는 다양한 레이아웃의 의미를 판단할 만큼 여유롭지 못합니다. 한 눈에 뾱 들어와야 해요. 왜냐면 고객이 이걸 보고 '한 눈에 이해되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어? 내가 이렇게 안보이면 고객들에게도 안보일텐데...' 라는 우려가 피어납니다. 


우려는 뭘 불러요? 조급함을 불러요. 조급함은 뭘 불러요? 맞아요. 아무말을 불러요. 사실 올바른 피드백은 

"대제목을 좌측상단으로, 본문들과 이미지가 일반적인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 맞지만, 이런 피드백을 할 정도면 본인이 디자인하셔야 해요. 저 말을 아주 짧게 줄이면 뭐가 될까요. 바로


"눈에 잘 안들어와요."

가 되는 거에요. 작아서 안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예상한 위치에 예상한 것이 없어서 그래요. 클라이언트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익숙한 것이 무엇인지 빨리 캐치해내야 해요. 그래서 미팅할 때 레퍼들고 가서 몇 개 물어봐야 해요. 레퍼런스 보여주면서 '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냐고' 물어봐야 해요. 텍스트인지, 그래프인지, 이미지인지...어디부터 시선이 움직이는지. 싫은 건 왜 싫고, 좋은 건 어디가 좋은지(배경인지, 컬러인지, 구성인지, 고양이사진인지 등) 를 물어봐야 해요. 물론 디자이너는 나름의 원칙을 지니고 요소를 배치할 거에요. 하지만 디자인적으로 최적화된 배치와 고객에게 익숙한 배치는 다른 법이거든요. 


고객이 원하는 배치가 내가 기획한 디자인 의도를 크게 해치는 정도가 아니라면 그들의 시선을 먼저 연구해봐야 해요. 그래야 여러분이 살아요. 



02. 안 모이면 안보여버림.


게슈탈트법칙 중에 근접성의 법칙이란 게 있잖아요. 가까이 있는 것끼리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합니다. 방 정리할 때도 이 근접성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되는데 방이 너저분해 보이는 건 작은 요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어서 공간구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디자인도 마찬가지거든요. 덩어리가 기본이에요. 뭔가 각 요소들이 개멋있게 배치되어 있어도 모인 덩어리가 보이지 않으면 각각의 요소들을 일일이 파악해야 한단 말이죠. 이건 클라이언트에게 굉장한 에너지 소모에요. 


이런거 봐봐요. 폰트의 하이어라키가 없으니 어떻게 됐어요? 어느 순서로 읽어야 할 지 누가누가 짝짜꿍인지 보이지가 않아요. 사진, 큰글자, 작은글자, 희미한글자, 더큰글자 까지 모두 읽고 다시 봐야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은 대충 보길 바래요. 두 세개의 요소를 하나로 뭉쳐서 이게 무슨 기능을 하고 있는 지 알려줘야 해요. '이건 제목쪽이야 그냥 넘겨!!' 라던가, '이건 각주니까 필요하면 읽어!' 라던가. 사람들은 기시감에 의해 패스할 곳과 집중할 곳을 정한 단 말이에요. 각 요소를 일일이 확인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 지 판단하는 건 그들에겐 짜증나는 일이에요. 공간안에 정확한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세요.




03. 진짜 작아서 안보임


진짜 깨알같아서 안보이는 경우도 있어요. 폰트 이쁘게 한다고 7pt 이렇게 보험사약관처럼 적어놓는 경우죠. 디자이너는 대부분 작업할 때 겁나 키워놓고 작업해요. 게다가 모니터도 큰 거 쓸 때가 많거든요. 저는 32인치 모니터 쓰는데... 맨날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하는 클라이언트는 13인치 노트북으로 시안을 봐요. 32인치 모니터 쓰면 진짜 핵시원해요. 펑펑 다보여. 화면 자체가 크니까 글씨가 작고 요소가 많아도 시원시원해 보인단 말이에요. 하지만 모바일이나 랩탑으로 보면 환장하지. 일일이 키워서 봐야 하고 스크롤 이리저리 움직이며 확인해야 하니까요.


근데 이게 '안 보여요' 와 '눈에 안들어와요' 는 분명히 다르긴 하거든요.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고 그냥 말해요. 안 들어오는 거나 안 보이는 거나 도찐개찐인거지. 그렇다고 7pt를 8pt로 바꾸면 잘 보일까? 노노. 인지가능한 최소범위라는 게 있어요. 쉽게 말해서 A와 B가 다른 것이라고 하면, 어느 부분이 달라졌는 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이게 틀린 그림찾기가 되거든요.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처럼 섬세한 눈으로 시안을 보지 않아요. 7이나 8이나 그게 그거같지. 키울려면 7에서 11정도로 확 키워줘야 '오!! 이제 좀 보인다.' 라고 인지할 거에요. 채도, 명도, 사이즈 할 것없이 마찬가지에요. 막 500%로 확대해놓고 손 떨면서 2px 정도 키운 건 그들은 모르죠. 


weight 변화는 최소2단계 (light에서 medium 으로)

폰트크기 변화는 150% 이상. 사이즈는 130%이상. 


늘려줘야 확 구분이 되기 시작해요. 110~120%는 물론 인지는 가능하지만 시각보정 범위 내에 존재하고 있어서 큰 건지 작은 건지 좀 애매하거든요. 사실 클라이언트가 그런 피드백을 줄 땐, 졸라 디테일한 변화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이렇게 바뀌었다!!' 라는 심리적 만족감도 함께 충족시켜줘야 하는 거에요. 그래야 실무자도 일을 좀 한 것 같거든요.


물론 이 모든 건 디자인기획상 목적과 허용범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타협하는 거에요. 폰트키웠더니 정말 눈뜨곤 못 봐줄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해야죠. 이건 아닙니다. 이건 쓰레기에요. 라고 당당하게 얘길 해야해요. 


이건 쓰레기예요!






자 이제 투명망토 그만 만들고, 눈에 쇽 들어오는 1차 시안을 주도록 해봐요. 사실 1차시안이 대빵만하게 눈에 잘 들어오면 오히려 2차 피드백 때 좀 줄일 수 있거든요. 이거 뭔 말인지 모르겠다! 는 피드백 있으면 댓글로도 남겨주세요. 속뜻을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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