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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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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n 29. 2020

음, 내가 느낀 브랜딩은 좀 달라. 좀...찌질해.

브랜딩은 일이야. 아주 빡센 일.

저는 회사소개서를 만들어요. 소개서란 건 아주 명확한 결과물이 있잖아요. 생각하기에 20페이지짜리 PDF나 브로슈어 같은 것들이죠. 근데 소개서를 만든다고 홈페이지에 써놨는데. 이상한 의뢰가 더 많이 들어와요. 로고를 만들어주세요, 포스터 만들어주세요, 웹도 만드시나요?, 사원증 좀 만들어주세요, 글 좀 써주세요 등이죠. 그래서 클라이언트에게 물어봤어요.


"아니 제가 홈페이지에 아주 크고 아름답게 '소개서 만듭니다.' 라고 써놨는데. 왜 이런 의뢰를 하셨어요?"


그러자 대표님이 말했어요.

"아 그게, 소개서를 만들려고 보니...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사진도 필요할 것 같고... 로고도 바꿔야 할 것 같고...그러다 그냥 결국 처음부터 브랜딩을 다시 하자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요. 회사소개서엔 회사의 거의 '시각적요소' 가 다 들어가요. 브랜드컬러, 로고, 슬로건, 소개문구, 사무실사진, 직원들사진, 제품사진, 키비쥬얼, 목업에 얹힐 마케팅콘텐츠 등. 그래서 소개서를 만들려고 의뢰를 하셨다가 띠용! 하는 경우가 많대요.

많은 것들이 담겨야 하니까



일이 이렇다보니 저도 로고도 손대고, 키비쥬얼도 만들고, 슬로건도 만들고, 소개서도 만들고 온갖 것을 다해요. 처음엔 제가 뭘하는 지도 몰랐어요. 편집디자인을 한다고 했는데....그렇다고 하기엔 로고도 하고 글도 쓰고 가끔 지표도 봐요. 난 마케턴가? 로고디자이넌가? 아님 기획잔가?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쯤 누군가가 날 규정해줬어요.




"아 브랜드디자인 하시는구나?"


아아...이게 브랜드디자인이구나?... 이렇게 허접하게 시작했더랬죠. 그러니까 처음에 제가 접한 브랜딩은 거의 잡일에 가까웠어요. 거창한 키비쥬얼부터 직원들 이름표, 심지어 창고에 걸어놓을 재고목록대장까지 만들어야 했죠. 그러다 궁금해진 거에요. 아니 원래 브랜딩이 뭐 이런거야? 그래서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본 건 홍성태 교수님의 나음보다 다름이었어요. 깊은 감명을 받았죠. 그 다음엔 우승우/차상우대표님의 창업가의 브랜딩에 흠뻑 빠졌고, 배민다움에서 박수 세번,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디스 이스 브랜딩, 디자이닝 브랜드 아이덴티티,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 캐서린 슬레이드브루킹의 '브랜드디자인' 등등... 평대에 올라와 있는 브랜딩 책들은 신간 나올 때마다 읽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 대충 브랜딩이란 것이 이러이러한 것이구나. 라는 개념은 잡았어요. 마치 수학의 정석 첫 표지에 우리 딸에게 고맙고, 이 책은 어찌어찌해서 만들게 되었고... 이런 프롤로그 정도를 읽은 셈이죠.


근데 매일매일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졸라 심화문제였어요.

직원A와 직원B는 서로 오조육억만큼 사이가 안좋다, 이 때 대표님은 직원A에게 브랜딩을 맡겼고 그것을 직원B와 협업해서 진행하라고 했다면 다음 날 이 둘이 울고불고 싸울 확률을 구하시오(5점).

이런 식의 문제였죠. 책엔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와 브랜딩의 정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잘 나와있었지만...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간세상 요지경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어요.


전 생각했죠. 결국 그냥 내가 알아서 해야하는 거구나. 그래서 알아서 해봤어요. 어떻게 됐게요? 그렇죠. 아주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대표와 실세사이에서 개털리기도 하고, 다 해놨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기도 했고, 하다보니 개떡같은 결과물들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결국 멱살을 잡자, 너가 영장류냐 이 퇴보의 산물같은 녀석아 등의 감정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죠.




잘하는 친구는 퇴사해서 자기 사업체를 차렸고, 일 못하는 친구들은 끈덕지게 자리를 지키며 회사를 곪아가게 했어요. 대표님은 미래를 보며 피칭 다니느라 바빴고, 새로 뽑힌 신입사원들은 라인 타느라 바빴죠. 돈을 들여야 뭐가 만들어질텐데 회사엔 돈이 없었어요.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껴서 디자이너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고, 마케터는 힙한 콘텐츠를 베끼기에 바빴어요. 이사님이 그런걸 좋아했거든요.


에이 설마 이런일이 진짜로 있었겠어? 싶겠지만...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의외의 문제들이 생겨요. 모두가 스타벅스, 나이키, 쿠팡이 되고 싶지만 그들의 환상적인 성공담은 생각보다 편협했어요.


브랜딩이란 단어가 생긴지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아무도 몰라요. 누구도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지 못하죠. 왜냐면 그건 상황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회사를 왜 만들었어요? 취업이 안되었거나, 꿈이 있었거나, 돈을 긁어모으고 싶었거나, 가업을 물려받았거나,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고 싶었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거나, 삘이 꽂혔거나, 떠밀렸거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죠. 브랜드란 게 세상에 탄생한 목적은 제각각이고 그 목적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선 각자의 방법이 필요해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정답이다! 라고 얘기하긴 참 어렵죠. 결국 두루뭉실한 얘기가 돼요.


소비자의 무의식과 우리의 행동 어쩌고..뭐 이런 것들말이에요.


실무자들에게 이런 얘기는 독서모임할 때 뭔가 배운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해요. 인사이트라는 단어를 우리는 참 좋아하는데... 어디서 보고들은 걸로 무릎을 치는 건 인사이트가 아니에요. 그건 그냥 삘받은거죠. 독서모임이 끝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막막해져요. 그래서 무의식 어쩌고 하는 건 알겠는데 진정성도 있는데...


기획안을 어떻게 써야 하냔 말이죠.

예산은 어떻게 편성해야 해요?

우리 브랜드에 맞는 대관장소는 어디에 있어요?

광고채널은 어디에 해야 좋아요?

마케팅 메시지는 어떻게 작성해요?

브랜드와 잘 어울리는 컬러는?

성과가 안나오면 어떻게 설득해야 해요?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ROI가 안나오면 계속해야해요?



구글닥스를 열고, 포토샵을 켜고, PPT를 열고 당장 브랜드 페르소나를 짜야하는데. 어떻게 짜야하는 지 과정을

몰라요. 일이란 건 프로세스가 중요해요. 일단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지. 그리고 결과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가 그려져야 해요. 근데 우린 스토리만 알고있지 업무를 몰라요. 스타벅스가 테이크아웃 고객과 매장 고객의 동선을 따로 분리했대요. 그래서 좋은 고객경험을 만들었대요.


동선은 어떻게 파악해요? 데이터는 누구한테 구하지? 분석을 어떻게 해야하지?...그것보다 먼저 이 프로젝트를 하려면 얼마가 들고 얼마나 걸리는거지? 대표님이 허락안해주면 어떻해요? 더 본질적으론.... 그렇게 하는게 우리에게 맞긴 해요?


막막하잖아요. 제가 현장에서 쥐어터지면서 브랜딩에 대해 느꼈던 건 한가지였어요.


"존나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는거"


이런저런 공부와 지식, 데이터와 레퍼런스는 거들 뿐. 결국 선택은 대표님이 해요. 실무자가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예산집행권한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실무자는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는데 책임이란 건 결과물로 보여주는 거에요. 결국 일이란 얘기죠.


브랜딩이 멋져보여요? 여러분 종이봉투에 포스터넣고 풀칠하는 거 멋져요? 찌라시 돌리고 배너만들고 의자나르는 거 멋져요? 야근은 기본일거고, 마음도 다칠거에요. 우린 멋진 거 하는거 아니에요. 의지를 지키기 위해 끙끙대는거에요. 그게 매출로도 이어져야 하니까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하구요.


우린 고슴도치처럼 브랜딩을 해야해.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제가 사업5년차 정도된 지금 시점에서... 한 번 경험들을 정리해봐야 겠다 싶었어요. 마침 브런치북에서 상도 탔고, 브랜딩얘기를 한다고 해서... 가급적 추상적인 이야기들 말고, 컴퓨터 앞에서 해야 할 것들을 좀 정리해봐야 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책이 나왔죠.


책의 시작은 당연히 브랜딩이 어쩌고..하는 뻔한 저만의 정의로 시작할 거에요. 일단 기준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런 게 있어야 독서모임가서도 뭔가 소감도 말할 수 있고.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제 실수와 쥐어터진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해요. 제가 했던 방법들이 정답은 아니지만, 아씨 그 때 이렇게 안했으면 좀 나았을걸! 싶은 것들을 적어봤어요.


이 책은 7회 브런치북 대상작이에요. 제 브런치에도 관련 글이 있겠죠? 아니에요. 없어요. 왜냐면 우리 미래의창 에디터님이 아주 빨간펜으로 도배를 하셔서, 그냥 다 지우고 백지에서 다시 썼거든요. 브런치 글처럼 드립과 짤, 킥킥댐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하실 거에요. 좀 딱딱하고 진지해요. 약간 비장하게 썼달까.


그러니 제 브런치북을 이미 읽으셨던 분들이 읽어도 괜찮아요. 완전 다른 내용이니까.


원래 이런 콘텐츠는 뭐 도움될 만한 거 하나 얘기해주고 밑에 책광고 넣어서 '와씨 광고..' 를 만드는 게 정석이지만, 이번 책은 좀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밑밥을 던지지 않았어요. 꼭 사서 읽어보세요. 도움이 되실 거에요. 특히 대표님의 생각이 자주 바뀌는 분들에겐 더더욱 :)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입니다.

구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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